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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Apr 08. 2024

늙어간다, 천천히

늙어가고 있다. 그냥 늙어가는 것도 아니고 몸에 이상신호가 생기면서 같이 늙어간다. 확실히 20대와 30대의 차이는 생각보다 큰 것 같았다. 뭘 먹어도, 뭘 먹지 않아도 2-3일은 거뜬히 버틸 수 있던 20대와 비교하면 참 많이 늙고 추해졌다는 걸 요새 느끼고 있다.


30대 초반인 주제에 벌써부터 늙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20대 때만 하더라도 나는 아픈 곳이 전혀 없었다. 한 번씩 찾아오는 감기 몸살, 비염 때문에 감기약을 달고 살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큰 병을 걸렸던 적이 없었고 정말 멀쩡했다. 멀쩡하다 못해 튼튼했고 잔병이란 것을 느껴보지도 못했고 몸이 아프면 하루 이틀만 지나면 모든 것이 말끔해졌다. 오염이 가득한 옷을 세탁기에 돌려서 뽀송뽀송한 옷을 받은 것처럼 몸이 무척이나 튼튼했다.


그런 20대를 보내고 집안이 무너질 정도로 많은 충격을 받았던 시기랑 30대가 겹쳐서 그런지 간 수치도 많이 안 좋아졌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고 간에 다른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내가 정말 그동안 많이 힘들긴 했었나?라고 생각을 하고 싶지만 나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 밖에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처럼 술을 입에 대지 않고 그렇게나 좋아하는 종교에 모든 신경을 쓸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인 것 같고 누나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회사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술을 조절하면서 마실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과 내 인생을 비교해 보자면 당연히 나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냈겠지만 최근 몇 년간 나의 모습과 나의 일상은 지독하리만큼 괴로웠던 것 같다.


독립해서 살다 보니 침대나 소파,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을 모두 구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충 원룸 방바닥에 얇은 이불 두어 장 깔고 겨우 자는 것이 일상이었고 난방비와 전기세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쓰지 않는 콘센트나 필요 없는 것들을 중고거래로 판매했고 혼자 사니까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근처 편의점에 새벽마다 나오는 폐기를 받아서 종종 끼니를 해결하곤 한다. 폐기라고 하지만 3-4일은 거뜬히 더 먹을 수 있는 기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돈을 절약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지내고 있다.


물론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 그런 것을 가끔씩 먹는다고 하면 엄마가 더 많은 걱정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돈을 절약하고 조금이나마 여유를 찾기 위해서는 그런 방법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나라에서 1년 동안 월세 20만 원을 지원받고 있어서 그나마 조금 생활이 트여있다 뿐이지 그 1년도 4-5개월밖에 남지 않아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거나 독립을 계속해서 유지를 해야 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고정적인 일을 찾아봐야 한다. 지금 총 월세와 관리비로 약 90만 원이라는 돈을 내고 있지만 한 달에 90만 원에 생활비, 교통비 등을 따지면 정말 숨만 쉬어도 돈이 술술 나가는 게 무서울 정도다.


그리고 과일이나 야채값이 폭등해서 밖에서 사 먹는 거나 음식을 배달하는 것은 정말 상상도 못 한다. 이 동네는 이상하게 배달비가 비싸서 기본 4-5천 원을 줘야 배달을 오니까 더더욱 배달은 꿈도 못 꾼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게 되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막막하다. 이 경력으로 어딜 가서 누구 밑에서 일을 새로이 시작한다는 것도 사실상 이미지가 그려지지도 않고 남들처럼 개처럼 고생해서 최저시급을 받을 생각을 하니까 그마저도 막막하다. 내 몸값을 높이지 않은 내 잘못이겠지만 다시 냉정한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월세를 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훨씬 더 공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남들에게 티를 내지는 않지만 정말 막막하다. 이겨낼 자신은 없고 열심히 살아갈 용기도 없고 그저 근근이 먹고살아야 한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날이 오는 것이 무섭다.


다들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사는지 모르겠다.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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