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력이 좋다는 말로 포장된 예민함
나는 굉장히 예민하다.
예민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예민하다. 나와 같은 남자들 사이에서는 나의 예민함을 쫓아올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예민하다. 지금도 그렇다. 대개 남자들은 예민하기보단 곰과 같이 둔하거나 무딘 경우가 더 많다. 어떤 사고가 벌어져도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면서 훌훌 털어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와 같이 모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어야만 하는 성격처럼 예민함이 끝도 없이 날로 예민해진다. 매일매일 칼 날을 갈고닦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나는 현재 사람들이 매우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 사람들 덕분에 브런치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겨났고 이 집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과는 관점과 초점이 다른 이곳에서 나는 나름대로 잘 적응을 해 나가고 있다. 예민한 내가 잘 버티고 있다.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 해왔던 일들, 그리고 겪어왔던 사회들을 차례대로 나열해보자면 내가 살아왔던 삶은 늘 어두웠고 어두컴컴했고 늘 터널이었다.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 끝도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이었다. 그 터널은 구멍이 뚫리지도 않았는데 비가 주룩주룩 바닥으로 떨어지며 바닥에 떨어지는 찰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온은 몹시 차다. 내가 생각하는 그동안 갇혀있던 터널의 느낌은 그렇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지만 굳이 방향 전환을 하지 않고 터덜터덜 걷기만 해도 부딪히지 않고 세월아 네월아 걸을 수 있는 그런 곳. 터널을 걸었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아마 20대 중후반부터 서른한 살을 맞이하기 전까지의 삶을 뜻할 수 있겠다. 해왔던 일들과 겪어왔던 일들은 너무나도 많고 다양하다. 그게 경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흔적이라도 남기고파 주저리주저리 오늘도 시끄럽게 떠들다 가야겠다.
나의 지식수준은 중학생 혹은 고등학교의 시절에서 머물러있고 끝이었다. 공부를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아서 허송세월 보내듯 했지만 그 기간들이 너무 아깝지 않았다. 공부하기를 바랐던 부모님도 아니었고 주변의 치맛바람으로 인해 내가 영향받는 일은 없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공부를 못해도 착하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정말 착하고 건강하게만 자랐다. 뭐, 어려서부터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에게 효도를 했다거나 집안일을 잘해서 칭찬을 받는다거나 수준 높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거나 기술이 있어서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착하고 건강하게 자랐지만 결국 나도 부모님의 속을 매일같이 상하게 했고 잘한 것 하나 없는 사람이지만 17살 고등학교 진입을 하고 2학년 때 진로를 결정하는 무언가의 행사에서 나는 문과/이과/예체능이라고 표시되어있는 종이에 자신만만하게 예체능에 체크를 하고 제출했다. 그때부터 소박하지만 음악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전문적으로 육성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닌, 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예체능이라는 과목을 친근하게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이유였던 것 같다. 뭐, 어찌 됐던 내가 그렇게 예체능을 가서 결국 실용음악과로 대학을 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여하튼 무사히 졸업까지는 했는데 학점이 형편없었어서 그것을 기반으로 취업을 한다거나 다른 대학교 입시 준비를 한다거나 하는 수준이 되지 못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케팅이나 내가 할 수 있는 쪽으로 알아보다가 정말 오랜 시간 유리방황했던 것 같다. 그나마 관심이 생기는 일을 하려고 막상 출근을 해서 부딪혀보면 회사와 결이 맞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니었던 걸까 싶을 정도로 금방 그만두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9개월이 전부였다. 1년을 넘겨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내가 이곳에서는 아직까지 잘 적응을 하고 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진 것이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 같다.
이곳이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선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선한 마을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집단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본래 무기력한 사람이었다. 무기력한 사람이 이렇게 목적의식을 가지고 방향성을 설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군가에게 토로하지 않아도 나 자신이 더 잘 안다. 그래서 더 신기하고 더 복잡하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는 이렇게까지 목적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살아오던 사람이 아니라 매일을 집에서 혼자 울고 나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히고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거나 나의 구원자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나 자신을 깎아내리면서까지 그를 붙잡아두려고 했었던 내가 이렇게까지 변한 것이 느낌이 정말 찜찜하다. 찜찜하다 못해 의심스럽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변하게 되었는지, 정말 환경이라는 것은 사람을 바꾸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이었을까 싶다. 어린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곳의 목표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선한 사람들이 모여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만드는 곳이다.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로. 하나의 마을이 되고 하나의 지표가 되고 하나의 옳고 그름을 기준하는데 앞장설 수 있는 곳이 될 것만 같다.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극 내향 주의자였던 내가 외향 주의자로 점차 발전되어가는 것 같다. 그걸 내가 매일 느낀다. 그렇다고 내가 일하는 곳이 다단계라거나 불법적인 일을, 사람을 불러 모으는 피라미드 같은 곳은 절대 아니다. 절대 아니라고 확언,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다단계에 직접적으로 당해봤던 사람이고 3 금융권에서 600만 원이라는 돈을 빌려 거진 5년 이상을 고통스럽게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이곳은 그런 곳이 아니고 그런 느낌조차 들지 않는 곳이다. 각자가 너무나도 열심히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고 그 외의 시간을 따로 또 같이 함께하고 있다. 그러면서 좋은 시너지가 계속해서 발현된다. 그것이 이곳의 시작이자 끝이다.
a라는 나의 경험을 가감 없이 글로써 적어 내려갈 것이다. b라는 이곳의 경험을 내가 느낀 감정에 빗대어 적어 내려갈 것이다. c라는 이곳의 공동체를 적어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b, c에서 만나고 가까워진 인물을 적어 내려갈 것이다.
그것이 내 브런치의 목차이자 단계 그리고 성장 기록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