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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Apr 12. 2024

술을 끊을 수 있긴 한 걸까?

언제부터 이렇게 많이 마시게 되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21년 2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많이 마셨으니 4-5년 정도 이렇게 마시게 된 건가 모르겠다. 이제는 계산도 안된다. 언제부터 이 지옥이 시작됐는지도 모르겠고 왜 이렇게까지 된 지도 모르겠다.


분명 예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 충격으로 마신다는 말이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게는 합당한 이유라고 생각해 왔고 그렇게 받아들였지만 최근에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내 의지로 술을 마시지 않았던 적은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마시지 않았던 그날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 그날도 건강검진을 해야 하니까 금식, 금주해야지-가 아니었다. 오전-오후 일을 하고 집에 와서 기절해 버렸다. 중간에 한번 깨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물도 마시고 다시 잤지만 그날따라 잠에서 못 깨어났다. 오히려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새벽 2시, 4시에 한 번씩 깨고 이 시간에 술을 마실까? 아니면 그냥 잘까? 하는 고민을 수십 번 했다.


잠이 완전히 깨지 않아서 다행이지 완벽히 잠에서 깼더라면 그 시간에도 술을 마셨을 것이다. 피검사를 하고 싶기는 했지만 일반 병원에서 하기에는 돈이 부담스러웠다. 내가 든 보험이 내과에서 피검사나 그런 검사를 하는 것까지 지원을 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이 없고 돈을 벌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돈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검사를 한다는 것은 술 마시는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몸이 많이 고장 났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이렇게 술을 매일 마시니 간 기능에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그러면 지금까지 금식했으니 조금만 더 버텼다가 피검사 결과를 듣고 다시 마셔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수도 없이 겹쳐서 결국 그날 새벽에 술을 마시지 않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술을 마시지 않고 푹 오래 잔 게 얼마만이었을까. 그래서 그런가 아침 일찍 눈이 떠졌고 7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깨어나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던 나는 강아지 산책을 시키기로 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산책을 1시간가량 하고 들어왔다. 그날은 참 개운했다. 무언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랄까. 술을 마시지 않고 오랜 시간 잠을 푹 잤으니 이것보다 개운하고 활기찬 느낌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


술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두통이 있지도 않고 멀미가 나지도 않은 깨끗하고 상쾌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이렇게 술을 마시지 않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결국 이번 생에 나는 술을 끊을 수 있을까. 온전한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과 동시에 나의 햇빛 알레르기는 더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손등에는 알레르기가 덜룩덜룩 징그럽게 생기고 있다. 시간을 내서 병원을 가야 하는데 병원 투어를 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을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정신과 비용을 지원해 준다는 글을 보긴 했는데 내 돈 내고 치료를 받고 지원자격이 되지 않아서 돈을 지원받을 수 없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을 것 같다.


술을 완전히 끊어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조절하면서 마시고 싶다. 딱 그 정도면 여한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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