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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May 16. 2024

하고 싶은 건 확실히 있는 것 같은데

중학생 때부터 진로를 고민했다. 혼자 공책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서 쭉 나열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앉아있던 짝은 안경을 쓰고 키가 작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였다. 웃음이 많은 아이였고 남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그런 착한 친구였다. 보통 이런 친구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잘 당하긴 하는데 그 친구와 나랑 비슷한 느낌이어서 그런지 잘 통하기도 했다.


그 친구와 같이 뭘 하면 좋을지 쭉 나열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웹툰이나 그림을 그리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다른 선택지는 바라보지도 않았었다. 그에 비해 나는 형사부터 시작해서 경찰, 소방관, 자전거 엔지니어 혹은 자동차 엔지니어, 수리공 등 기술직을 많이 적어냈다. 현실적으로 노래만 파서 노래로만 성공할 수 있는 외모도 아니고 실력도 아니고 집안이 그런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집안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작부터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1학년을 보내고 난 후 내 선택지는 당연히 문과, 이과가 아니라 예체능이었고 그 2년 동안 정말 힘들었다.


예체능이다 보니 재능이 있는 줄 알고 덤빈 일진들부터 학교에서 이름깨나 날린 놈들이 예체능으로 하나 둘 집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학년 1학기를 시작했지만 그 시작부터 후회감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예체능을 한 반으로 구성했지만 음악과 미술 각각 인원이 모자랐기 때문에 두 과목을 한 반으로 합쳤고 그로 인해 소위 말하는 일진들이 더욱더 많아진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2년 동안 따돌림 아닌 따돌림, 왕따 아닌 왕따, 괴롭힘 아닌 괴롭힘을 꾸준하게 당하고 졸업을 하고서 진로를 선택해야 했지만 쉽사리 음악을 선택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나의 선택은 변함이 없었고 흔들림이 없었다. 음악이라는 과목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음악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었기 때문에 음악 말고는 다른 선택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입시를 위해 유명하다는 분을 찾다가 교회 지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로 한 전도사님의 학원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6개월가량 수련 아닌 수련을 하고 대학 실습을 진행했는데 정말 미친 듯이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실기 테스트를 했다.


내 실력으로는 당연히 대기번호를 받게 되었고 내 앞에 4명인가 2명인가 있었는데 그들의 배려(?) 덕분에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원하는 것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2년은 참으로도 고통스러웠고 지옥이었다.


그때 음악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어야만 했는데 하는 후회가 아직까지도 남는다. 물론 졸업장을 취득하긴 했지만 그것을 써먹을 곳도 없고 돈을 벌 수도 없다. 세월이 흘러 유튜브에서 학과 동기들이 보컬 트레이닝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데뷔를 했다가 망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나는 이제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자각할 수 있다. 나는 사진을 찍는 스킬이 남들보다는 조금 더 뛰어난 것 같고 글을 쓰는 스킬이 뛰어난 것 같다. 하지만 이 감성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는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요즘 시대에는 짧은 동영상이 먹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본 여행 유튜버처럼 여행을 하면서 영상을 올리고 싶기도 하지만 그럴 깜냥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게임도 없는 사람이 애매하게 게임 영상을 편집해서 올리기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결국 내 선에서 다 포기하게 된다. 뭐라도 해봐야 할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으려나. 정말 이러다가 인생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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