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나는 유혹에 아주 취약했다. 유혹이라던지 중독이라던지 그런 민감하고도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것들을 끊어낼 수 없었고 조절이라는 것도 사실 잘 못했다. 그런 것에 노출이 된 상태에서 고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거나 노력이란 것을 하지 않았었다. 그때는 그것만이 하루하루를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하게 그런 것들을 하면서 꾸역꾸역 버텼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제는 어느 정도 유혹이나 중독을 핸들링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왔다. 나에게 가장 큰 문제라고 삼았던 것은 다름 아닌 술이다. 술을 끊어낼 수 없었고 내 의지로 끊을 수 없었다. 유혹이 가장 컸던 것도, 중독성이 가장 짙었던 것도 술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술을 조절하면서 기분 좋을 때 한 잔 걸치는 것이 제일 좋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불과 2-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피폐한 삶을 살았고 내가 삶을 사는 것인지 삶이 나를 조종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허우적대며 살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1년 전, 1년 후로 가장 크게 변화되었던 것 같다. 뭐, 전이나 후나 술에 빠져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한 것도 맞긴 하지만. 아빠의 건강이 급격히 망가지고 온 몸으로 퍼지는 순간부터 나도 함께 스트레스를 안고 살았다. 집에서는 치료랍시고 기도를 하거나 영적 치료를 한다는 명분으로 아빠를 쉴 새 없이 괴롭혔고 그 모습을 보면서 저것만이 최선일까 싶은 생각을 되뇌면서 또 스트레스를 받고 술로 이어졌다. 여담이지만 힘든 날들이 지난 후 물어보니 그때 당시에는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지 몰랐고 너무나도 무서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병을 낫게 해주고 싶었고 떠나보내기 싫었다고 한다.
밤낮없이 술을 마셔댔고 눈을 뜨면 술을 마시고 컴퓨터를 켜놓고 멍하니 술에 취해 헤롱헤롱 거리다 책상에서 잠들었던 적도 많았고 의자에서 기절해서 엄마가 발견했던 적도 적잖다. 내 욕구는 정확히 말하자면 술일 지도 모르겠지만 술을 마시는,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근사한 음악들을 틀어두고 조명을 조절하고 가지런하게 책들을 정리하는 그런 모습들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해가 뜨고 술에 취해 내 곁엔 아무도 없어라고 생각을 항상 해왔고 외로움을 누구보다도 온몸으로 느꼈던 것 같다.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술이 좋긴 하다. 그런데 이전과 가장 다른 점은 술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술을 마셔야 한다는 강박에 못 이겨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되는데 억지로 먹어댔지만 이제는 굳이 먹어도 되지 않는다면 먹지 않게 됐다. 점차적으로 소주에서 맥주, 맥주에서 와인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지금은 논스라는 회사에서 대표님과 매니저님과 내기를 했다. 대표님은 오마카세를, 매니저님은 한우 꼬치였나 사케였나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여하튼 비싼 것을 내기로 걸었다. 한 달 동안 술을 마시지 않으면 받을 수 있는 리워드 개념으로. 하지만 대표님은 원천적으로 술을 끊는 것이 목표라며 술을 마시면 해고한다고 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족쇄가 채워지는 것이 죽도록 싫었다. 나는 서른한 살이 되어서야 내 앞으로 되어있는 대출이나 빚을 청산했다. 물론 내가 청산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됐던 내 앞으로 묶인 것이 모두 사라지고 0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밥을 먹지 않아도 괜히 뿌듯했고 기뻤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것이 다시 족쇄로 다가온다는 것이 괜한 불안감과 스트레스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친밀감이 쌓인 사람들과 하나 둘 거래를 하기 시작했고 술을 마시지 않는 조건으로 나에게 맥북 노트북과 300만 원 정도의 데스크톱을 걸었다. 블록체인 용어로 비유를 해줬는데 까먹었다. 나와 조건을 걸고 물건을 걸고 내가 그 술을 마시는 행동을 했을 시, 모두 사라지는 그런 도박 같은 것이었는데 단어가 뭐였더라.
이런 것이 마냥 좋을 수는 없지만 불안하기도 하다. 그들이 나를 믿고 술 마시지 않는 것을 담보(?)로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빌려주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들 덕분에 조금이라도 내가 바뀌어가는 것이 감사하다. 족쇄는 불안하고 짜증 나지만 어찌 됐던 지금까지 잘 버텨왔고 나의 의지도, 그들의 도움도 모두 다 더하여 술이라는 것을 조절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랴. 족쇄만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5월 15일을 기다린다. 그날이 되면 나는 족쇄가 풀릴 거다. 하지만 또다시 언제 족쇄가 풀릴지 모르겠다.
족쇄의 느낌이,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있어서 아직까진 온전히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