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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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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전문 병원에 가서 약을 탈 때까지만 해도 술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방문했지만 내 문제는 알코올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병원에서 받아온 약은 일주일치였다. 그리고 그 약을 다 먹고 난 이후에 엄마가 일 하다가 다치셔서 집에서 두 시간이나 걸리는 병원을 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집 근처의 병원으로 다시 알아봤다.


난 상담할 생각은 없었고 그저 알코올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알아봤는데 집에서 2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병원이었다. 예약을 하고 바로 방문을 했다. 왜인지 병원 인테리어가 아주 깔끔했다. 그리고 검사실에서 일반적인 설문조사를 하고 검사를 했다. 그 검사들을 하면서 든 생각은 '여기 왜인지 익숙한데'라는 느낌이었다.


설문조사를 끝내고 간호사 선생님에게 여기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병원이 얼마나 됐나요? 물어보니 4년 정도 됐다고 했다. 내 설문조사지와 개인정보를 가져가신 뒤 다시 찾아오셔서 4년 전에 방문해서 진료를 받은 이력이 있다고 했다. 그때는 알코올이 문제가 아니었고 그저 우울증 목적으로 상담을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금 원장 선생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고 뇌파검사를 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스트레스 지수가 굉장히 높다고 했고 주파에 따른 수치도 정상범주에 속하지는 않는다고 했고 그 이후의 검사 결과를 말씀해 주셨다. 결과적으로 우울증과 불안도가 굉장히 높다는 말이었다. 이전에 국립 정신건강 센터에 방문했을 때 "이 정도면 심각한 거 아니고 더 심각한 사람 많아요"라고 말을 들었는데 그때보다 확실히 더 심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원장 선생님도 굉장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셨고 대답을 빨리 재촉하거나 하지 않았다. 말을 더듬고 말이 횡설수설 해도 차분히 고개만 끄덕여주시고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동안 힘드셨겠어요 라는 말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저희가 도와드릴게요-라고 말씀해 주신 게 너무 감사했고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 상담 치료까지는 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검사 결과를 보더니 알코올 치료를 위한 약물과 상담 치료를 병행해서 하면 좋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주 2회 방문해서 상담받자고 하셨지만 결국 돌고 돌아 비용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에 고민을 했다. 일단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을 하고 늘려나가기로 했다.


아직 이렇다 할 약물을 처방해 주신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는 선생님을 처음 만나봐서 그런지 느낌이 이상했다. 물론 세상에 좋은 의사 선생님들은 많겠지만 그렇지 못한 선생님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다양한 선생님들에게 상처 아닌 상처를 받은 나로서는 새로운 병원을 찾아가는 것도, 새로운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너무나도 큰 부담이었고 불안했다. 또 선생님이 내 병은 심하지 않다고 치부해버리거나 이야기를 재촉하거나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고 말을 하게 되면 난 또다시 마음이 닫혀서 병원을 가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번에 선생님이랑 상담을 받고 든 생각은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나를 미친 듯이 쫓아다니는 불안과 우울을 조금이나마 떨쳐내고 싶다는 생각. 돈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지 않을까?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선생님은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신기했다. 물론 앞으로 얼마나 비용이 들지 모르겠지만 일단 조금이라도 해봐야지. 선생님이 답답하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에서 같이 도와주겠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이라도 더 고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을지도 모르겠다.


치료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돈에 허덕이고 있어서 엄마는 또 바로 일을 다니게 될 것이고 나도 뭐라도 해야 할 텐데 부담이 많다. 왜 이렇게 목에 칼을 겨누는 것처럼 삶이 공포스러워진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렇게 큰 부담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목을 조르는 듯한 이 느낌이 너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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