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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먹어서 하루가 반 밖에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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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때문에 오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겨우 시간을 내서 병원을 갔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지하철과 버스를 포함해서 1시간 30분이 넘는 시간이나 걸리는 대장정의 길이었다. 물론 서울에 다른 병원들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눈에 들어오는 곳을 먼저 갔다. 다행히도 후기가 나쁘지 않았기도 했었고.


약을 저번주 월요일 날 받아왔으니 벌써 6일이나 지났다. 약을 제대로 제 때 먹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아침저녁 약은 술 때문에 기억력 저하나 다른 의욕이 사라지는 부분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약을 써서 하루에 두 번만 먹으라고 했는데 내 생활패턴이 이미 너무 박살이 나버린 탓에 언제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해가 뜨고 나서야 잠을 자기 시작하니까 그때 아침 약을 먹고 잠깐 일어나서 점심 약을 먹고 늦은 오후, 해가 떨어지는 시간에 저녁 약을 먹으면 될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그렇게 하려고 계획은 했지만 해가 뜨고 아침 약을 먹고 자면 꽤 오랜 시간 잠에서 일어나질 못한다. 그렇게 오후 두 시나 세시 가까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려서 깨면 그때 밥을 대충이라도 먹고 점심 약을 먹곤 한다. 점심 약에는 졸린 약이 없는데도 밥을 먹고 약을 먹고 tv를 조금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곤 한다. 그렇게 졸다가 불편해서 소파에 누워서 잠을 청하면 그때부터는 정말 계속 잠만 잔다. 오늘은 그렇게 해서 잠을 잤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불안했던 걸까 tv로 음악을 틀어주는 채널을 틀어두고 잠을 잤다.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렇게 한 4-5시간을 낮잠을 잔 것 같은데 기억이 절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일어나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밥 생각은 없고 속도 그렇게 나쁘지 않아서 계속해서 버티고 있었지만 밤 10시가 지나기 시작해서야 배가 조금씩 고파지기 시작해지니 뭐라도 밥을 먹었어야만 했다. 그 시간에 먹지 않으면 새벽에 정말 폭주할 걸 알았으니까.


그렇게 시간을 보낸 지가 5-6일이 되었다는 소리인데 확실히 술 생각은 많이 나지 않는다. 근데 정말 기적적으로 술! 저리 가! 이런 생각을 만들어주는 약은 아니고 모든 부분에서의 의욕을 낮추는 느낌을 받았다. 술뿐만 아니라 집을 나가서 외출을 한다거나 화장실에 가서 씻는다거나 하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 의욕을 반감시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오히려 불안감은 더 높아졌다. 초조함과 불안감은 조금 더 높아진 것 같은 느낌이라 결국 약을 먹더라도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고 대신 가장 좋은 점은 술을 마시기 전에 약을 먹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약기운이 올라와서 슬슬 졸음이 오기 시작하는데 그 타이밍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술을 더 많이, 오버해서 마시지는 않는 것 같다.


예전에 혼자 살 때는 페트병으로 소주를 마셨을 때 가장 많이 마셨던 때는 페트병으로 4개 조금 안 되는 양을 마신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약을 먹고 술을 마시면 중간중간 도움(?) 때문인지 한 병에서 크게 범주가 넓어지지는 않는다. 많이 마셔도 두 병을 다 못 마시는 걸 보니 약이 정말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술 때문에 밤낮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약 때문에 밤낮이 바뀐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빈 속에 6-7개의 알약을 한 번에 삼키려니 그것도 일이지만 그걸 먹어서 그 뒤의 계획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도 무섭긴 하다. 그리고 금방 몸무게를 쟀는데 항상 80kg 근처에만 살던 내가 3kg나 줄었다.


그 숫자를 본 직후의 생각은 '아빠도 돌아가시기 전에는 살이 급격하게 빠지셨는데'였다.

정말 나도 아빠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라면 컴퓨터나 노트북, 카메라를 하루빨리 처리하는 게 좋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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