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적이지만 나는 조용한 것을 싫어했다. 침묵조차 싫어했다. 누군가와 싸우는 순간이 오면 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게 mbti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 무언가를 표현하거나 말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대학에서의 전공이 아니라고 생각과 확신이 들고난 이후부터는 남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나의 mbti는 infp이다. 나무 위키에 가장 길게 서술되어 있다고 본 것 같다.
아무튼, 소개팅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에도 침묵이 죽도록 싫었다. 조용한 것이 싫어서 마구잡이로 생각나는 것을 이야기하고 실없는 이야기를 무턱대고 털어놓았다. 그것을 좋아한 사람들도 있었고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침묵이 싫었던 것은 다르게 보면 사회성이 좋게 투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생각하는 것이 너무 늦긴 했지만 그때는 어쩜 그렇게 말이 많았을까, 실없는 이야기를 어쩜 그렇게 무수히 뱉어낼 수 있을까 싶다. 지금은 너무나도 신중한 사람이 되어버려서 한 마디의 말의 무게도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굉장히 무겁다고 생각한다.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가볍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다툼이 있거나 대화나 토론을 해야 할 때면 아무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정답이 되었던 적이 없었고 나의 의견이 채택된다거나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던 적은 없었다. 그것은 친구관계에서도 그랬고 사회생활에서는 더더욱 심했다. 나의 의견은 매번 거절당했고 그 정도는 안다는 식으로 묵살당한 적이 많다. 그래서 더 눈치를 보고 더 말을 못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의견이 묵살된다고 하더라도 별 생각이 없다. 만약 그것이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단순 애사심이 떨어질 뿐이고 회사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는 그저 나에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게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나 역시도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최대한 조용하려고 하고 가능하면 내 의견을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바라보는 것과 다른 팀원들이 바라보는 회사의 방향성은 다를 수밖에 없고 애증의 척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의견 제시를 하지 않는다고 회사를 향한 나의 애정이 식었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대한 회사의 방향성에 브레이크를 걸고 싶지 않은 생각에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내 입으로 이런 상황으로 저는 의견 제시를 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니 내 스탠스는 제시하지 않지만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습니다 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
요즘은 침묵이 좋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서 오는 불안감이나 초조함이 이전보다 꽤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나는 침묵을 유지할 수 있는 관계들이 없다. 친구랄 것이 없기 때문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도 꽤나 오래되었고 또 그런 관계들이 하나 둘 자라난다면 나는 또 침묵이 무서워질 수도 있다. 괜한 조용함이 나를 옥죄어올 수도 있고 또다시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관계나 친구가 없는 것이 좋기도 하다. 쓸데없는 감정소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원치 않는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나의 감정을 타인이 해친다는 것을 예상하며 늘 행동하는 내가 더 많은 리소스를 할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혼자 있어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인 것 같다.
친구가 한창 있었을 때는 그들에게 맞추고 체력을 소비하고 돈을 소비하고 감정을 소비하는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당연히 친구들과 놀고먹고 마셔야 하니 조율하고 돈을 쓰고 늦게까지 놀고 친구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친구들을 잃는다는 생각에 단칼에 쳐내지 못했었다. 이 친구들을 잃으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까, 친구가 없는 삶이 너무 무섭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두려워하며 싫은데도 맞추어가면서 적당한 텐션을 가지고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친구랄 것은 선택의 여부이다. 있어서 나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있어도 되겠지만 굳이 내가 부단한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친구라면 없어도 되는 것 같다. 물론 적당한 사람 사이의 텐션과 결을 맞추는 노력은 하지만 그 이상의 문제가 타협되지 않는다면 '굳이'라는 단어만이 남을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침묵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삶을 살다 보니 침묵이 자연스러워졌다. 매번 시끄럽고 자극적으로만 놀아야 인생인 줄 알았던 나는 어느새 조용한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침묵 자체가 좋은 것도 있겠지만 침묵이 가져다주는 그 차분한 분위기와 감정, 차가운 온도가 좋다. 아니, 그런 온도들이 좋아졌다. 차분한 하늘, 차분한 음악, 차분한 새벽시간, 차분한 산책. 그런 차분함이 난 좋다.
서른한 살이 되고 나서야 예민함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무뎌져 가는 것 같다. 평생을 예민한 고슴도치로 살아갈 것 같았던 나의 삶은 조금씩 아주 서서히 가시를 구부러뜨리고 있다. 1년에 하나의 가시 정도를 부러뜨리고 몸속에서 없애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몸에 돋친 가시를 나의 손으로 빼내려고 하고 있다. 이 모든 노력이 어떻게 되는 걸까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기대는 안 한다. 내 손으로 가시를 빼내려는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면 몸에서 빼려고 노력했던 것보다 더 깊숙이 나의 몸속에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다. 확신하고 싶지 않다. 늘 여지를 남겨두어야만 한다.
내가 글이 길어지는 이유도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에 하염없이 늘어지기만 한다. 그렇게 좋았던 주말은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나에게 주말은 외로운 날들이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외로운 날이다. 평일에 가면을 쓰고 나름대로 부단히 살았던 나를 내려놓는 시간인 것 같다.
이래도 될까 싶지만, 이러지 않으면 어떡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