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photograph
이번 글에선 밤에 찍은 사진이 많다. (흐릿한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
누군가 내게 파리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을 물었을 때 이곳 퐁네프를 꼽았었다.
몇 년 전 레오 까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푹 빠져 그의 온갖 영화를 찾아보며 탐닉하던 때가 생각난다.
물론 지금도 고다르 다음으로 좋아하는 감독이긴 하지만.
작년이었나. '퐁네프의 연인들'이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큰 화면으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영화관으로 달려가기도 했었지.
저기에 앉았을 때 속으로 얼마나 기쁘고 두근거렸는지 몰라.
아아아
오-! 샹젤리제
사람들은 멈춰있으려 하지 않지. 그들은 계속해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간다.
이날 샹젤리제 거리 끝에 있던 개선문에부터 에펠탑까지 걸어가는 건 거의 미친 짓이었지.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바람은 더욱 차가워져서 옷깃을 붙잡고 빠르게 걸어야 했으니까.
꽤 늦은 저녁 무렵이었기에 어둡고 인적이 드문 골목 사이를 거닐어야 했는데,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산도 가지고 나오지 않아서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걷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걸은 끝에 드디어 에펠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감격스러웠다.
만화영화 '개구리 왕눈이'가 생각났다.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아쉽게도 기념사진을 남기지는 못했다. J를 찍어주고 있는데 핸드폰이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또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와중에 지친 J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사진을 찍어달라 하는 게 미안하기도 했고.
에펠탑에 다다랐는데 생각보다 장사꾼들이 많이 없었다. 날씨 때문에 대부분 일을 접고 이곳을 떠난 것 같았다. 그래도 남아있던 흑인, 아랍계 장사꾼들이 있긴 했다. 그들은 꽤 쉽게 포기하고 곁을 떠났다. 물건을 팔고자 끈질기게 따라붙는 사람에겐 'non!'을 외쳤다. 그랬더니 그는 웃으며 물러섰다. 날씨에 질려서 전투 의지를 잃은 것 같았다. 어떤 아랍계 남자가 장갑이 떨어졌다며 불러 세우기도 했는데 내것은 아니었다.
"기왕 온 거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자!" "좋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파리의 도심 한가운데 있던 에펠탑. 이왕 왔으니 꼭대기에 올라가 보자. 올라가서 파리의 야경을 만끽해 보자. 우리는 결심했지.
고민되기도 했다. 비가 와서 제대로 아경을 볼 수 있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요금이 저렴한 편도 아니었고. 그렇지만 이곳에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올라가 보기로 했다. 그나마 좋았던 건 학생증을 보여주니 할인이 되었다는 점.
우리는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요금을 지불하고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구간에 따라 요금이 다르게 적용된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니 탁 트인 난간이 있는 공간이 나왔다. 파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많이 찍어두려 했는데 비바람이 몰아쳤다. 높은 곳에 올라오니 아래에서보다 훨씬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결국 사진을 포기했다. 눈으로 담아두자고 마음먹었다.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난간을 따라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열심히 돌았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매서운 추위에 질려서 문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떠나는 게 아쉬워 파리 도심을 하염없이 내다보고 있었는데 J가 다가왔다.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비바람에 두 손 두발 다 들고 이만 내려가기로 했다.
리프트에 탔는데 안내원이 이건 올라가는 리프트라고 말해서 당황해하는데, 같이 타있던 모델처럼 멋진 두 명의 흑인 중 한 명이 내게 "농담일 뿐이야."라고 말해주었다.
바르셀로나로 넘어가는 날의 아침.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맑은 날의 파리는 한 달 뒤에나 볼 수 있었지.
이건 흔들렸을 거라고 미리 예상했던 사진인데도 좀 아깝다.
전날 밤, 우리는 곧바로 파리를 떠나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기로 했었다. 일어나자마자 대충 준비를 하고 조금 멀리까지 약 두 시간 정도 걸어 다니며 시내 곳곳을 구경한 뒤에야 돌아와 체크아웃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