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따뜻한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친절이라는 점, 선의라는 별

by 빈정원

김멜라의 에세이, <멜라지는 마음>을 펼쳤다.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좋은 이유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마음을 되새기는 게 좋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나에게 ‘마땅히 좋아할 만하다’라고 말하며 그 마음을 지지해주고 싶다.”

예전부터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취향을 공유할 줄 아는 사람. 취향이 있는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의 취향을 기억하게 됐다.

“과장님, 오이 못 드시죠? 사장님, 여기 샌드위치에 오이 들어가나요?”

“여전히 떡볶이를 좋아하는구나. 결혼식 뷔페에서도 떡볶이를 담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구나 싶어 반가웠어.”

이런 별것 없는 말은 나를 조금은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원래 다정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고, 단지 취향을 가진 그들이 멋져 보여서 기억한 것뿐인데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못 본 지 오래된 사람들의 취향도 내겐 그들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유독 계절이 바뀔 때나, 취향에 관해 생각할 때 떠오르는 분이 있다. ‘스타벅스의 뜨거운 블랙커피를 한 김 식혀서 마실 때가 좋더라.’ 말했던 S 차장님이다. 생각만 해도 고소한 커피를 한 모금 삼킨 듯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분은 나에게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인턴 시절, 엑셀의 브이룩업부터 친절히 가르쳐 주고, 현실성 없는 과제를 야근까지 감수하며 도와주신 분. 자신의 시간을 양껏 내어주는 것과 대충 넘어가지 않고 상대방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확히 짚어 주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는 안다. 그렇기에 그분의 약간 쉰 듯한 목소리와 존경스러운 집중력, 따님 이야기를 하실 때 짓던 미소가 쉽지만은 않던 직장 생활 속 따뜻한 한 구석으로 남았다. 닮고 싶은 어른이었다. 그래서 인턴 마지막 날, 편지에 이렇게 적어 건네기도 했다.

“저는 따뜻한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차장님은 제가 사회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따뜻한 분이셨어요.”

스타벅스의 블랙커피와 더불어 S 차장님을 떠올리게 하는 건 SNS에서 꽤 자주 보이는 박웅현의 <여덟 단어> 추천 글을 볼 때다. 책 또한 누군가의 취향을 함뿍 담고 있기에, 책을 추천 받게 되면 그 책을 볼 때마다 추천해 준 얼굴이 떠오른다. S 차장님이 지나가듯 추천했던 이 책을 읽게 된 건, 아쉽게도 그가 이미 7년가량 몸을 담았던 회사를 떠난 후였다. 눈물이 없는 편인 나도 그날은 배웅하고 돌아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몰래 울고 말았다. 회사도 힘든 사정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무정하고 안목 없는 회사라고 욕도 많이 했다.

그분을 떠올리게 하는 책, <여덟 단어>에는 ‘자존’에 관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열심히 살다 보면 인생에 어떤 점들이 뿌려질 것이고,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점들이 어느 순간 연결돼서 별이 되는 거예요. 정해진 빛을 따르려 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오직 각자의 점과 각자의 별이 있을 뿐입니다.”

정말 내가 남긴 점들이 언젠가는 별이 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애써 남긴 선의와 친절함이 다른 누군가에겐 빛나는 별이 된다는 건 직접 경험했다.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이들은 어두웠던 시기의 별과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고 싶고, 친절한 사람이고 싶고, 이로 말미암아 강한 사람이고 싶다. 냉소와 비관은 너무 쉽고 게으른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따뜻한 사람이 좋다. 사회에서 버티는 사람들은 각자의 무기가 있다. 누군가는 나르시시즘, 누군가는 눈치, 누군가는 정치.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나를 둘러싼 무기가 냉소가 아니었으면 한다. 선의와 친절, 그리고 유머는 버티기에 꽤나 강력할 무기일 뿐만 아니라 주변도 따뜻하게 데워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따뜻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하는 마음을 되새겼나 보다. 이건 분명, 누구나 마땅히 좋아할 만한 취향이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따뜻한 사람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득 지지해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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