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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룰 수 없는 꿈,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원한다고 꿈을 이룰 수는 없다

by 여백

2004년, 17살의 겨울방학.

고등학교 2학년 진학을 앞두고 매일 고민이 가득했다.

진로를 정하지 않은 채로 마냥 공부만 하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피아노 학원에서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고 하여 개인 레슨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클래식 피아노 연습은 귀찮고 재미없었다. CCM 연습을 30분 하고, 클래식 연습은 단 5분으로 레슨을 준비하니 실력이 늘 리가 없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연습해서는 음악을 전공할 수 없다고 하셨고, 결국 레슨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 음악은 더이상 없다고 다짐했다.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음악 선생님이었는데,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이유로 반주자가 되었다.

선생님은 음악 시간에 반주하는 내 모습을 보시고, 저학년임에도 불구하고 기악부 반주를 맡기셨다.

나의 재능을 알아보신 선생님께서는 예고 진학을 권유했지만, 나는 이미 음악을 포기했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러나 기악부 반주와 교회 중창단, 찬양단, 성가대 반주를 하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음악을 놓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17살 겨울방학에 갑자기 작곡을 꿈꾸게 되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장 즐겁고 행복감을 느끼는 건 음악이다"라며 부모님을 설득하였고, 결국 작곡 레슨을 받게 되었다.


18살 겨울방학,

서울로 전학을 가며 서울대 대학생에게 작곡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작곡 선생님의 소개로 피아노도 따로 배우게 되었다. 그간 살았던 곳에서 작곡, 화성학, 피아노, 시창청음을 한 선생님에게, 그것도 두 시간만에 끝내는 레슨을 받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기가막힐 노릇이다.


19살 여름방학,

작곡 선생님의 소개로 유명 강사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게 되었고, 진중하면서도 열정적인 선생님 덕분에 입시 위주의 음악이 아닌 깊이 있는 음악을 배우게 되었다. 교회 반주를 오래한 탓에 피아노가 속을 썩이긴 했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모두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칭찬을 많이 들었던 나.. 너무 자만했던 탓일까? 입시 결과는 나, 다군 모두 떨어졌고, 가군에서 겨우 예비번호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단 2명이 빠지지 않아 결국 재수를 하게 되었다.


20살 10월,

열심히 준비했던 한예종 시험에 떨어지면서 앞날이 캄캄했다. 실기 점수는 높았지만 면접 점수는 19살에 연습 삼아 봤을 때보다 훨씬 낮았다.

나중에 무얼하고 싶냐는 질문에 작곡가가 아닌 교수가 되고 싶다는, 지금 생각해도 근거 없이 허무맹랑한 답변을 했었다. 그때 면접관이었던 교수님에게 바로 호되게 혼이 났었고 당황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까지도 간절함이 없던 것 같다.


합격 발표 후, 음악대학과 사범대학을 두고 끝없이 고민하며 어느 대학에 등록해야 할지 저녁마다 기도했다. 결국 사범대 진학을 결정했다.


대학에서 처음 만난 교수님은 레슨을 15분 정도만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이렇다 할 의미 있는 피드백은 없던 것 같다. 그리고 교수님이 안식년을 보내시며 다른 강사분께 레슨을 받게 되었는데, 교수님께는 죄송하지만 너무도 달랐다. 그 분은 입시 때 선생님만큼, 아니 사실은 훨씬 더 열정적이셨고 심지어 나와 음악 스타일도 잘 맞았다. 1시간 레슨은 기본이고 거의 2시간까지 진행되기도 했다.


대학교에서도 나는 곡을 잘 쓰는 편에 속했다. 교수님은 내가 작곡을 계속 하길 바라셨지만, 교생 실습을 마친 후 나는 임용고시를 보겠다고 결심했다. 음악을 꾸준히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생 실습 후 몇 달 동안 졸업 연주곡을 준비하며, 동시에 졸업곡을 콩쿨에 제출하기로 했다. 교사를 하기로 다짐을 하였음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던 것 같다.


콩쿨을 동시에 준비한 곡이다보니 연주자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다들 한번씩 연습을 해보고는 곡이 너무 어려워 연주를 못하겠다고 했다. 결국 수소문 끝에 1학년 후배들로만 연주자를 구성하게 되었다.

(사실 실기는 갓 입시를 마친 1학년이 우수하다. 심지어 모두 메이저 예고 출신들이라 실력이 매우 출중했다.)

후배들의 출중한 연주 실력과 선생님의 열정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멋진 연주를 완성하게 되었고, 졸업 연주 또한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연주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지 곡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며 집중력이 떨어진 탓인지, 아니면 재능이 부족했던 탓인지 곡의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부분이 생겼다.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간, 그 마의 구간을 넘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곡을 제출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교수님들이 깜짝 놀라며 의자에서 등을 떼었다고 하셨는데 그 마의 구간에서 표정이 달라지며 실망한 기색을 보이셨다고 했다. 물론 콩쿨에도 낙방했다.


유학 생활로 나의 졸업연주에 오지 못했던 지인이 있었다.

19살 한예종 시험때 알게 된 그 지인은 한예종과 서울대에 모두 붙어 서울대에 진학했고, 석사 과정에서 해외 콩쿨에도 다수 입상하였으며 현재는 3대 예고라 불리는 서울, 선화, 계원예고에서 작곡 강사를 하고 있다.

난 그 지인과 나와의 차이를 분명히 안다. 그 사람은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 실력이 한참 뛰어났었고, 음악에 대한 순수함과 열정이 돋보였으며, 같은 모티브로 곡을 썼을 때도 곡을 끌어가는 힘이나 상상력이 남달랐었다.


가끔 그 지인을 만날때마다 평상시 할 수 없는 대화들, 음악과 관련된 깊이 있는 대화를 많이 한다.

이제 나와는 아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 사람을 보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아 저런사람이 음악을 하는거구나” 생각한다.


한때는 작곡가를 꿈꾸며 실력이 부족해보이는 음악 교사나 사범대 출신을 무시했던 나는,

현재 11년 차 음악 교사로서 나름대로 발버둥치며 열심히 살고 있다.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괜찮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원한다고 꿈을 이룰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노력하면 된다. 대다수는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꿈은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제적인 부분은 물론 재능, 열정, 운. 이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그리고 세 가지가 충족되지 않음을 직시했을 때는 새로운 꿈을 향해 방향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지인을 통해 대리만족하며 가지 못한 길을 상상해본다.

하지만 실패한 삶은 아니다.

19살, 20살에 꾸었던 그때의 꿈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훌륭한 교사'라는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정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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