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서 여자로
살면서 꽃 한 송이가 아닌 꽃다발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적지 않았다.
입학식, 졸업식, 기념일, 졸업 연주회, 지금은 불가능 하지만 스승의 날 등 감사하게도 꽃다발을 받을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값지고 의미 있었던 꽃다발을 곰곰이 떠올려보니 기억 저편에 있던 14살의 내가 필름처럼 지나간다.
2001년 8월,
청양에 있는 교회 수련원을 가서 당시 교회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인 ‘천로역정’에 참여했었다.
예수님의 길을 따르자는 좋은 프로그램이었으나 해병대 출신의 여러 선생님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다시 말해 단체 기합이 섞인 훈련이었다.
하루는 산속에서 훈련을 받던 중 장대비가 쏟아졌다.
단순 소나기가 아닌 것 같았다.
오두막에 비를 피하려고 했지만 모두들 옷이 젖기 시작했다. 비가 그칠 줄 모르고 점점 강하게 내리니 진행이 잠시 중단됐었다.
그때 선생님들의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뉘었다.
아무 생각 없던 나는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중년의 선생님들께서는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거나 아플까 봐 이만 실내로 들어갈 것을 권유하였고,
해병대 선생님 중 리더였던 분은 “아니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갑니까?” 라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때, 20대 여자 선생님께서 여자아이들만 불러 조용히 물으셨다. “얘들아, 부끄러워하지 말고 꼭 얘기해 줘. 혹시 생리하는 친구들 있니?”
그 얘기를 듣고 조를 짜서 교대로 화장실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당시 생리를 하지 않던 내가 갑자기 생리를 시작한 것이다.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고 비에 젖은 터라 스스로도 내 상태를 잘 모르고 있었다.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화장실 바깥에 있던 고등학생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 언니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훈련에서 열외가 되었다.
3일간의 수련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수련회는 청소년, 일반 교인 수련회가 동시에 진행됐었고, 부모님께서도 수련회에 참여하셨기에 잘 알고 계셨다.
수련회에서 딸내미의 초경이 시작된 것을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정예배라는 걸 드렸었다.
저녁밥을 먹기 전 가족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빠가 케이크와 꽃다발을 꺼내셨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딸의 초경을 축하한다며 소녀에서 여자가 됨을 축복하는 기도를 해주셨다.
14살의 어린 나였지만 그것이 부끄럽거나 당혹스럽지 않았고, 좋음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정확히 안다.
41살이었던 부모님께서는 바쁜 와중에도 딸아이의 초경을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과 케이크를 준비하셨고, 초경을 챙겨주실 정도로 얼마나 사랑이 많고 훌륭하며 대단한 분들이었는지를 말이다.
2001년 14살. 잊지 못할 내 생애 최고의 꽃다발이었다. 2025년 38살. 이제는 내가 부모님께 생애 최고의 꽃다발을 안겨드릴 차례다.
바쁜 일상에 치이며 점점 무뎌지는 요즘이지만, 부모님께 큰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