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해야 하는 것
고3 담임에게 8,9월은 그저 버텨야 하는 달이다.
끝나지 않는 일. 화남의 연속. 여기에 1학년 수업까지..
폭풍 같은 일주일을 보내고 방전되기 직전이었다.
격하게 쉬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통한 것일까?
상대방의 긴급한 사정으로 금요일 약속이 취소되었다. 피로에 찌들었던 나는 쾌재를 부른 뒤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미뤄둔 넷플릭스와 디즈니를 쭉 보고 난 뒤, 한 주를 버티기 위해 섭취했던 단당류를 떠올리며 오늘은 유산소를 길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느슨해지기 시작하더니
'아 운동 가기 싫다...'라는 생각이 든 순간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새벽 1시였고, 씻고 나니 2시. 너무 피곤했는지 2시 반쯤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결국 연재일을 지키지 못했다.
빗소리를 들으며 느지막이 잠에서 깨어 아점을 챙겨 먹고 예약해 둔 네일케어를 받기 위해 네일숍으로 향했다.
요새는 젤네일을 받지 않고 케어만 받고 있는데, 손을 많이 쓰고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나로서는 케어만 받아도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4시에는 피티다.
오늘은 하체 하는 날이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리고 7시 30분에는 저녁 약속인데, 운동하고 난 뒤의 약속이라 음식을 조심해서 적당히 먹어야 한다.
그 사이 난 카페로 와서 여유롭게 글을 적고 있다.
비도 조금씩 오고 간만에 조용히 글을 쓰고 싶었으나, 옆자리에 앉은 젊은 남자분이 공부하다 말고 통화만 계속하고 있다. 복식호흡을 사용해서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길래 바로 이어폰을 꺼냈다.
이어폰을 꽂자마자 들려오는 곡은 동방신기의 <Rising Sun>. 당시 동방신기의 스타일링이 너무 충격적이긴 했으나, 다시 들어도 정말 명곡이다.
얼마 전, 헬스장에서 동방신기의 <The Way U Are>를 정말 오랜만에 듣고 추억에 빠졌다.
고등학교 1학년, 흔한 여고생이었던 나는 동방신기를 좋아했고, 피아노를 잘 쳤기에 친구들이 매번 동방신기 곡을 쳐달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사실 동방신기를 너무 좋아해서 성적도 떨어졌었다. 물론 당시에 남자친구를 사귄 영향도 있었지만, 그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난 그저 그런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최근 동방신기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유노윤호는 얼마 전 디즈니 플러스 <파인>에서 열연을 펼쳤고, 첫 번째 레슨 짤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강창민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건지 가끔 방송에 나오는 것 같고, 크게 이렇다 할 업적은 없는 것 같았다.
영웅재중은 예능에도 가끔 나오고 얼굴은 이전과 같지만 전보다 더욱 친근한 이미지로 바뀐 것 같았고,
시아준수는 뮤지컬에서 열연하며 예능에 가끔 출연하는 듯했다.
그리고 카시오페아들이 고인..이라고 표현하는 고 믹키유천은 일본에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고등학교 때 시아준수를 정말 좋아했다.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가수인데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췄기 때문이다.
거기다 귀여움이 가미되어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얼굴이 귀여워서 사람들이 간과하지만 기럭지도 어마어마하고 옷빨도 잘 받는 편이다.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잘하지 못하거나, 춤도 엉성하고 오로지 얼굴로만 승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디렉터 입장에서는 팬을 끌기 위한 각자의 포지션이 있기 마련이겠지만, 가수라는 직업의 본질을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수라면 노래를 잘해야 하고,
운동선수라면 운동을 잘해야 하고,
요리사라면 요리를 잘해야 하고,
교사라면 잘 가르쳐야 한다.
물론 가르치는 일 외에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지만
교사의 본질은 잘 가르치고 아이들을 수업에 빠져들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든 일과 중에 난 수업을 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반응이 없어 소통이 잘 되지 않거나 이해력이 느린 반은 분명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나,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확실히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1학기 때 1학년 아이들과 지휘 수업을 할 때는 조용한 반 아이들 입에서 조차 "재밌어"라는 말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
음악은 수능 과목도 아니고 내신 산출이 되지 않는 과목이라 더욱더 수업준비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렇다고 성적에 반영이 아예 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절대 평가라 80점 이상(A)은 받아야 한다.)
어쨌든 아이들의 참여를 이끌고, 다른 과목과 융합하고, 음악을 즐기고 감상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12년 차임에도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3학년은 2학기 수행평가가 거의 마무리되었고,
1학년은 이제 대망의 보이는 라디오 수업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정말 힘들고 손이 많이 가서 매년 후회하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큰 추억으로 남는 활동이고 생활기록부 적어주기도 좋아 6년째 진행하고 있다.
확실히 수업이 점점 업그레이드되어 제법 퀄리티가 높고 아이들의 결과물도 매년 좋아지고 있다.
작년 교무부장님께서 교직생활 10년 차가 넘었으니 평교사로 살건지, 승진할 건지 노선을 정해야 한다고 얘기해 주셨을 때
바로 실천했던 것이 수업 혁신사례 연구대회였다.
전국대회는 미끄러졌지만, 지역 내에서 상도 받았고, 외부 활동도 몇 번 하면서 느꼈던 것은 나는 내 교과목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시작한 교사.
다른 선생님들에 비하면 나는 잘해주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을 많이 줄 수 있는 교사는 아닌 것 같고, 수업에서 정말 많은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당장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버겁기에 나의 미래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열심히 수업하고 또 배우면서 조금씩 전문성을 올리는 활동들을 꾸준히 할 생각이다.
나는 수업을 잘해야 하는 교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