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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ff the Wall

Afterimage, 안제이 바이다 감독

사회주의에 불응한 한 예술가의 초상

by 유리킴 디자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창작의 순간-예술가의 작업실»이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 8편을 5월 말까지 상영하고 있다. 영화적 서사로 풀어낸 창조의 과정은 표현 형식으로서의 예술이 아닌, 작가의 예술관과 사고의 체계가 어떻게 삶과 작품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미술, 문학, 건축, 무용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애프터이미지 (2016)

안제이 바이다 감독

폴란드의 거장 감독이며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공로상 등을 수상하여 국제적 명성을 쌓은 안제이 바이다 (1926-2016)의 작품이다. 그는 폴란드의 역사와 시대적 변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애프터이미지>는 감독이 80세 후반에 만든 전기 영화다. 1940년대 중후반의 폴란드가 배경인 이 작품에서 감독의 노련하고 독창적인 미장센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인공 스트르제민스키가 공산당의 박해로 결국에 자신을 놓아버리고 무너지는 장면이다. 공중에 놓인 마네킹의 팔, 다리가 천천히 회전하는 초현실적인 화면은 주인공의 심정을 심미적으로 형상화한다.




줄거리

이 영화는 폴란드의 아방가르드 아티스트 스트르제민스키(Wladyslaw Strzeminski)의 전기 영화다. 2차대전 직후 폴란드를 지배한 소련의 당 정신에 맞서며 죽음을 맞이한 그의 말년 인생을 다룬다. 스트제민스키는 폴란드 로츠 국립미술학교의 미술 교수인데 그의 제자들은 그를 따르고 시각 이론을 설명하는 그의 수업도 명성이 있다. 열정 넘치고 긍정적인 (그는 심지어 팔 한쪽과 다리 한쪽을 전쟁 중 잃었다) 한 예술가의 생기 있는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예술은 내용이 아닌 형태(Form)라는 이론을 발전시키고, 예술은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이며 독창적인 형태 안에 예술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프로파간다 아트를 만들라는 당의 요구는 그가 지켜온 모든 가치를 무너뜨리는 강요로 작동한다.


전쟁 후 소련이 폴란드에 공산당 정부를 수립했을 때 스탈린주의 정통에 도전하게 되는 사건이 발발한다. 그는 당의 눈 밖에 나게 되고 당은 가혹하리만큼 그를 옥죄어 온다. 그는 교수직에서 물러나야했고 예술가조합의 회원권이 소멸하여 물감을 구입할 수 없게 되고 급식권조차 받지 못하는 극단적 곤궁에 처해진다.


당의 지속적 압박이 가해진 7년 동안(1945년~1952년)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 저항을 거듭하다가 결국 붕괴하는 한 예술가의 삶을 따라가 보는 일은 안타까움이 증폭되는 경험이였다. 그는 결국 객사 직전에 이송되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기억에 남는 장면

첫 씬에서 언덕 위에 목발을 짚고 서있는 스트르제민스키는 언덕 밑으로 제자를 만나러 가야 한다며 지름길(?)을 보여준다. 몸을 숙여 옆 구르기로 천진난만하게 내려가는 그를 보고 제자들은 모두 구르기를 시도하며 호응한다. '틀어서 벗어난 자유로움'이라는 그의 예술관을 반영하는 장면이다.
크고 붉은 스탈린의 현수막이 작업실의 창을 가린다. 순식간에 붉게 물드는 작업실의 광경에 그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창문을 열어 붉은 천을 목발로 내려 찢는다. 박해를 알리는 신호탄 격인 사건이다. 이데올로기 색으로 번지는 한 공간의 모습으로 폴란드 사회에 불어올 변화를 추측할 수 있다.
아내의 묘지를 찾아갈 때 Parisian Blue 물감에 적신 국화를 들고 조문한다. 아내의 파란 눈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푸른 꽃은 그의 저항 정신을 보여주는 메타포일 것이다.


고집과 신념을 구분해 본다. 또한 정치색을 가져야하는 시대에서 예술가의 똑똑(?)한 행보에 대해서도 자문한다. 이 영화를 감독한 안제이 바아다 감독도 폴란드 인민 공화국에서 국책영화로 프로파간다 영화를 만든 경험이 있다. 전쟁이 끝난 후 감독은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체제의 부패와 모순을 고발하고, 폴란드의 상흔을 마주하며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영화로 그렸다.



애프터이미지는 잔상이라는 뜻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눈을 통해 흡수하는 것이 이미지이며 우리는 자신이 인지하는 것만 본다.

인지능력은 발달할 수 있다. - 스트르제민스키


정치적 상황 속의 예술가를 다시 "보는" 인지력이 내게 돋아났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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