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
환기미술관 재개관전, <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을 관람하였다.
1992년에 우규승 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은 북한산이 보이는 부암동 자락에 있다. 김환기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함축적 구성을 건축 언어로 변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품에 나타나는 작가의 서정성은 전시관 안으로 스며드는 자연광으로, 작품의 리듬감은 관객의 동선으로 풀어냈다. 전시관 사이의 마당은 볕이 잘 드는 날엔 특별한 공간 경험으로 남는다.
환기미술관은 단일 작가의 작품만을 전시하는 한국 최초의 개인 미술관이다. 오래된 가옥과 경사지가 많은 부암동에 위화감 없이 서 있는 이 미술관은 틈틈이 방문하여 작품을 보고 부암동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다.
이번 재개관전에는 김환기 작가(1913~1974)의 글을 작품 옆에 적어 놓았다. 전체적으로 시대와 장소별로 나눈 기획이다. 그의 도쿄 유학, 서울 신혼 시절, 파리 아틀리에, 뉴욕 활동 시기를 거쳐 변화하는 그의 사유를 따라가면서 화풍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볼 수 있다.
큐비즘, 초현실주의, 미래파 등 실험적인 미술 사조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시기다. 1934년에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 참여하기도 하고 전위적 미술 단체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위의 작품은 1935년작 <종달새 노래할 때>이다. 작가가 ‘처녀작’으로 부르는 이 작품으로 그는 대회 입선의 영광을 안고 비로소 화가가 된다. 작품을 보면 얼굴이나 배경의 디테일은 생략되었는데 큐비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바구니의 알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현은 지금 보아도 파격적이다.
꽃이 피고 숲이 있고 단풍이 들고 새가 울던 (김환기, 1953)”
서울에서 서정성과 문학성이 짙어지는 시기다. 달, 산, 구름 등 자연의 정취와 백자항아리를 그렸다. 이러한 자연의 소재가 해를 거듭하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 있다. (선의 굵기, 둥근 모양의 변화 등)
작가의 애장품인 삼국시대 불두, 조선의 목재 선반, 백자항아리도 함께 전시한다.
김환기 작가는 백자항아리를 곁에 두고 감상하면서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백자를 통해 한국의 조형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유려한 선을 해석하여 작품에 반영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랑스 파리의 ‘다싸스 아틀리에(Rue d’Assas Atelier)’와 ‘생루이 아틀리에(Île Saint-Louis Atelier)’에서 작업을 이어간다.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뒤로 한 채 도착한 파리에서, 작가는 새소리와 마로니에 나무를 보며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기록한다. 한국적 정서를 그대로 담아내며 추샹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시기다.
조각달이건 만월이건 동창에 달이 뜨면 그만 고국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 보고 싶은 사람이며 그 산천들” (김환기, 1959).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정신(詩精神)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 (김환기, 1959)
록펠러 재단 (Rockefeller Foundation)의 지원으로 셔먼 스튜디오에 입주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 1974년까지 색면, 점화의 추상화 작업을 왕성하게 이어갔다.
캔버스 대신 코튼(면)을 사용하여 마치 화선지에 먹이 번지듯 수십만개의 점이 자연스럽게 번지도록 하였다.
추상(abstract)은 어떤 것으로부터 뽑아낸다는 뜻인데,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추출하고자 했던 것을 잠시 생각해 본다. 점, 선, 면이라는 기하학적 요소로 펼쳐 보이는 경계 없는 자연도 생각한다. 커다란 화폭 안의 무수한 점들은 (비록 같은 색으로 보일지라도) 수없이 다른 유사 톤으로 깊이를 생성한다.
푸른 점들로 가득한 위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작가가 즐겨 쓰는 쪽빛 청색을 '환기 블루'라고 일컬을 정도로 그는 초창기부터 푸른색을 즐겨 썼다. 70년대 초, 전면점화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블루는 다크블루, 블랙과도 섞이며 입체감을 갖는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총애하는 모티프인, 불규칙하며 둥그스름한 점들을 둘러싼 조그만 사각형들을 다루는 그만의 독창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리뷰했다.(1971년)
위의 작품은 132억원(경매 최고가)에 낙찰된 '우주'와, 홍콩 크리스티에서 78억에 낙찰된 ‘9-XII-71다. 국내 회화 경매가 1위~10위는 김환기 작가다.
전시회에서 읽은 다음의 메모로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예술관을 살펴본다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 본다.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1973년 10월 8일 김환기 일기 중
김환기 작가는 수화(樹話)라는 필명으로 문학잡지인 「신천지(新天地)」,「문예」에 수필과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예술적 동지이자 환기미술관을 설립한 김향안(1916~2004) 여사에 대해서도 짧게 소개한다. 본명은 변동림으로 시인 이상의 아내였으며 1937년에 이상과 사별 후, 지인의 소개로 만난 김환기와 1944년 재혼한다. 향안(鄕岸)은 김환기의 호인데 자신의 이름으로 삼는다. 아래의 기사는 김향안의 한 면모를 보여주는 기사이기에 첨부한다. 보그지에서 다룬 김향안 기사도 함께 싣는다.
"도대체 내 예술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얼근히 취한 남편이 말하자 아내는 대답했다.
“나가봐.”
“어떻게?”
“내가 먼저 나가볼게.”
아내는 다음 날 프랑스 영사관을 찾아갔고, 불어를 익혀 1955년 김환기보다 1년 먼저 홀로 현지에 건너가 작업실과 생활 여건을 마련했으며, 대학에서 회화와 미술비평까지 공부했다. 김향안에게 사랑은 “곧 지성(知性)”이었다.
믿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고 “믿는다는 것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지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김환기 아내 김향안 여사 재조명 기사, 조선일보, 2021,6.10
- 보그에서 다룬 기사
전시는 7월까지 연장하여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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