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최은영 읽기
<쇼코의 미소> 는 작가의 등단작이며 젊은 작가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2023)를 필두로 나는 최은영 읽기를 시작했다.
의도 없는 것이 의도인
첫 번째 소설집인 <쇼코의 미소>를 읽었을 때의 생소한 울림을 기억한다. 미온하면서 긴 여운이었다. 잔잔하다기엔 어딘가 충격적이었는데 그건 소설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그저 이야기 안에 스며있었기 때문이었다.
담담한 목소리를 따라가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는 (작가가 배치한) 질문들은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벽지 앞 화병이나, 액자 속 사진처럼 기교 없이 놓여있다.
진실하게 서술하지만 강조하지 않는 글. 의도 없는 것이 의도인 양,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곳곳에서 조용히 깜박이고 있었다.
줄거리
일곱 편의 짧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중단편 <쇼코의 미소>의 줄거리를 잠시 소개한다.
여고생 소유는 외할아버지와 엄마와 함께 산다. 고1 때 자매 학교인 일본의 여학교에서 견학 학생이 몇몇 오는데 그중 한 명이 쇼코다. 그녀는 소유의 집에서 일주일간 머문다. 쇼코는 일본의 변두리 마을에서 고모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쇼코가 머문 일주일 동안 소유의 집에 활력이 생긴다. 유일하게 일본어를 할 줄 아는 할아버지는 ‘미스터 킴’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평소의 퉁명스러움이 온데간데없는 모습으로 쇼코와 대화를 나눈다. 소유의 엄마는 한국어로 말을 건네면서 "낯설고 우스꽝스러운" 환대를 한다. 소유와 쇼코는 영화를 보거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추억을 쌓는다.
쇼코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자신의 근황을 편지로 알린다. 할아버지에겐 일본어로, 소유에겐 영어로 편지를 보내온다. 일본어 편지엔 일상의 밝은 이야기를 적고, 영어 편지에는 내면의 이야기를 적어 보낸다. 3년 동안 이어진 서신 교환은 서서히 멈춘다.
쇼코가 같은 주소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된 소유는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쇼코를 찾아간다.
쇼코는 도시의 대학을 포기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의 투석을 도우며 바닷가 마을에 머물러 있었다. 몇 년 만에 만난 그녀는 정신적으로 아픈 상태였다.
소유는 그날 이후 쇼코를 지워간다. 한국에 돌아온 소유는 감독의 꿈을 안고 단편 영화를 찍는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다양한 감정의 겹이 전체적 기분이나 감정을 만든다고 할 때, 작가는 치밀하게 (질리지 않게) 그 겹을 들어 올려 결을 따라 감정이 발생한 곳을 찾는다. 그 이유를 서술하고 형태를 명명한다. 한 겹 한 겹... 작가가 고단함 없이 좇는 치열함이 고맙다.
소유 할아버지의 부고를 들은 쇼코는 한국에 찾아온다.
소유는 할아버지가 보냈던 일본어 편지를 쇼코의 낭독을 통해 전해 들으며 할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
Review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결말 부분) 남겨진 인물을 그려낸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그늘에 내려앉은 볕처럼 따뜻하면서 먹먹했다.
작가가 인물들의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본 후 완성한 문장들은 잘 빚은 조각처럼 단단했다. 그 조각에 가까이 다가가니 동시대 작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생생함이 있었다.
Book Cover
Penguin Books에서 출간한 <쇼코의 미소, Shoko's Smile, 2021> 영문판 표지다.
노란색 바탕의 붉은색과 녹색 찻잔의 선명한 색의 대비가 눈에 띈다.
이 소설이 의도나 문제를 제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쓰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작품의 미묘한 톤 앤 매너가 이 표지에서 전달되는지 의문이 든다.
제목에 사용한 스크립트 폰트의 사용이나 수증기의 곡선은 가벼움을 전달하는데, 이 책은 유머나 풍자를 스타일로 택하지 않았기에 부적절해 보인다.
소설의 어떤 면도 조명하지 못하는 영문판 표지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로 누군가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상상"해보는 공감의 방법을 최은영 작가의 작품을 통해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