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전시 리뷰, 현대미술
데미안 허스트의 이름은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과 함께 현대미술사에 굵은 글씨로 기록된다.
스팟 페인팅 속 무수한 점들처럼, 그의 작업을 둘러싼 해석과 논쟁 역시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끝없이 증식한다. 상어, 나비, 해골, 수술 도구를 활용한 설치 작업부터 점 회화에 이르기까지—그의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서 조망하는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MMCA)에서 열리고 있다. (2026.03.20–06.28)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교 재학 시절, 그는 1988년 전시 《Freeze》를 기획했다. 이 전시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은 이후 ‘Young British Artists(YBAs)’로 불리며, 1990년대 현대미술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아이디어를 작품의 핵심으로 본 이들은 죽은 동물, 성적 이미지, 일상의 폐기물까지 거리낌 없이 작업에 끌어들였고, 전통적인 미학의 기준을 과감히 해체했다. 죽음, 신체, 욕망, 소비사회는 이들의 주요 테마였으며, 비평가들이 ‘충격 요법(Shock Tactics)’이라 부른 전략을 통해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흐름은 미술을 엘리트의 취향에서 대중적 담론의 장으로 이동시키며, 전시를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데미안 허스트는 이 YBA 운동의 핵심 인물로서, 그의 작업은 1990년대 영국 현대미술이 국제적으로 확장되던 흐름 속에서 전개되었다.
때로는 선을 넘어봐야 경계가 어딘지 알 수 있다.
— Damien Hirst
\ 합판에 가정용 유광페인트 143.7 x 83cm, 1986
제1전시실에서는 스팟 페인팅의 출발점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 작업에는 색채에 대한 그의 관심과 함께, 채도와 명도의 미묘한 조절을 통한 색의 배치가 두드러진다.
그의 후기작이 반복과 질서를 통해 일종의 강박적 구조를 엿볼 수 있다면, 이 시기의 작업은 오히려 즉흥성과 어린아이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유희성을 지닌다. 화면을 가득 채운 점들은 여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가벼운 리듬과 시각적 경쾌함을 만들어낸다.
\ 채색된 MDF, 철제 구조물, 칼, 송풍기, 2000
중앙에 설치된 송풍기의 바람이 잠시라도 약해지는 순간, 공중에 떠 있는 비치볼은 바닥의 날카로운 칼날에 부딪히는 상황이다. 관람자는 비치볼의 운명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무중력 상태로 부유하는 비치볼을 ‘사랑’에 비유한 설정은 인상적이다. 위태롭게 떠 있는 그 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며, 관람자는 긴장의 시선을 거둘 수 없다.
\ 유리, 채색된 철, 실리콘, 모노 필라멘트, 상어, 포름알데히드 수용액, 217 x 542 x 180cm, 1991
푸른 바다를 유영하는 듯 보이는 상어는 사실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담긴 수조에 보존된 사체이다. 고정된 죽음이, 커다랗게 입을 벌린 채 관객 앞에 놓여 있다.
제목이 말하듯, 누구도 죽음을 직접 알거나 경험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추상적인 개념은 이 작품 안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을, 적어도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이 작품을 통해 마주하게 된다.
그의 ‘자연사(Natural History)’ 시리즈에는 상어, 양, 소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이 작업들에는 허스트 특유의 뒤틀린 유머가 스며 있다.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죽음을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부패하지 않는 용액 속에 보존해 ‘영원히 보이게’ 만들겠다는 태도—그를 ‘악동’이라 부르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유리, 철, 실리콘 고무, 채색된 MDF, 전기 해충퇴치기, 소 머리, 피, 파리, 금속 접시, 솜, 설탕, 물, 207.5 x 400 x 215cm, 1990
직사각형의 유리 구조물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한쪽에는 피가 흥건한 소의 머리가 바닥에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전기 해충 제거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정육면체 구조물 안에서 파리가 부화한다.
부화한 파리들은 반대편으로 이동하지만, 그 과정에서 살충기에 닿는 순간 즉시 죽음을 맞는다. 생명의 탄생과 생존을 향한 본능, 그리고 우연적 죽음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순환하며, 가시적인 장치로 우리를 설득한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왜 이런 노골적인 장면을 통해 우리는 삶과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가.
충격으로 감각이 흔들리고 거부감이 생겨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관념은 감각으로 전환된다. 적나라한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직시한다.
\ MDF, 알약, 264.2 x 477.6 x 10.2cm, 1998
선반 위, 정교하게 배열된 수많은 알약이 하나의 액자처럼 놓여 있다. 질서로 짜인 이 구조물은 질병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시각화한다. 이 작품은 ‘알약 캐비닛(Pill Cabinets)’ 시리즈 중 하나다. 달콤한 사탕처럼 보이는 알약들은 이면의 고통과 불안을 은폐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과학과 의학을 신앙처럼 받아들이는 현대인의 태도를 지적한다.
“과학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미한 희망을 제공한다.” - 데미안 허스트
‘무한(Infinity)’이라는 제목은 죽음을 넘어 영원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약물이 제공하는 희망이 일시적일 뿐이며 결국 고통과 소멸을 유예하는 데 그친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빈 약 상자들을 배열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후 ‘알약 캐비닛’ 시리즈에 이르러 수천 개의 알약을 사용하여 시각적 밀도를 더해가며 개념을 확장하였다.
의학과 과학은 우리를 치유하는가,
오히려 예술에 그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그의 작업은 이 질문의 되풀이다. 그 반복 속에서, 예술이 우리에게 건네는 하나의 ‘처방’—혹은 끝내 붙잡을 수 없는 환상—을 상기하게 된다.
\ 캔버스에 라텍스 페인트, 294.6 x 335.3, 1993
아름다운 원형의 점들이 정교하게 배열된 스팟 페인팅 시리즈다. 감정이 배제된 엄격한 규칙성은 마치 기계가 채색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시스템화된 질서는 역설적으로 감각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색채가 만들어내는 리듬은 산뜻하고 생기 있게 진동하지만, 끝없이 지속되는 구조는 어딘가 강박적인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2012년 Gagosian Gallery는 전 세계 11개 공간에서 300점이 넘는 스팟 페인팅을 동시에 전시하며, 이 시리즈가 지닌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의 제목은 다소 섬뜩하다. Amphotericin B는 항진균제로, 세포막에 구멍을 만들어 세포를 ‘뚫어’ 제거하는 약이다. 그 작동 방식은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효과적이며, 작품은 치료와 파괴가 맞닿아 있는 모순을 환기한다.
이 시리즈는 작가의 조수들에 의해 제작되며, 이로 인해 예술이 아닌 공장식 생산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작가성과 창작의 개념을 흔들며, 예술이 어디까지 개인의 표현이고 어디서부터 시스템의 산물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 백금, 다이아몬드, 인간의 치아, 17.1x 12.7 x 19cm, 2007
인간 두개골을 본떠 백금으로 주조한 뒤, 약 8,600여 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작품이다. 치아는 18세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실제 인간 해골에서 가져온 것이다. 제작비는 약 1,600만 파운드(약 270억 원)에 달하며, 2007년 첫 공개 당시에는 약 5,000만 파운드(약 990억 원)에 이르는 가격으로 제시되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전도서 1장 2절
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모든 것이 헛되다(Vanitas vanitatum)”라는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한 17세기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는 물질적 삶의 허망함을 환기하기 위해 탄생했다. 해골, 책, 시든 꽃, 모래시계, 골동품과 같은 오브제들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상기시키며, 덧없는 세속적 욕망의 무가치함을 함축한다.
고전적 모티프인 ‘해골’은 현대미술 속에서 다시 호출된다. 이 작품에서 해골은 여전히 존재의 유한성을 상징하지만, 그 위를 뒤덮은 다이아몬드는 영원성과 불멸을 암시한다. 유한과 영원, 소멸과 가치가 하나의 표면 위에서 겹쳐지며 기묘한 역설을 만들어낸다.
이 작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명명될 수 있다. 소비되는 죽음, 공허한 자본주의, 혹은—죽음조차 아름다울 수 있다는 불편한 가능성.
그러나 보다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이 죽음을 하나의 ‘가치’로 치환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가피한 소멸을 눈부신 물질로 덮어내는 이 과정은 죽음을 부정하기보다 그것을 미화하고 견디려는 태도이며, 어쩌면 현대 사회가 구축한 또 하나의 신앙 체계에 가깝다.
이 작품은 수많은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음악·게임·애니메이션·문학 속에서 패러디되며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그 결과 For the Love of God은 더 이상 하나의 조각에 머물지 않고, ‘죽음과 욕망’을 상징하는 현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업에서 삶과 죽음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몸으로 감각되는 현실로 다가온다. 그는 그 경계를 흐리며, 우리가 붙잡고 있던 확신들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드러낸다.
노골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인 방식으로 그는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되묻는다.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불편함과 매혹, 충격과 아름다움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수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술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가라는 점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데미안 허스트 - 대척점에서 접점으로 © 2026 by Yoori Kim is licensed under CC BY-NC-ND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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