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맑음 ⁴
나의 동경이 병들었다. 내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이자 존경이자 동경이었던 아빠는 하루하루 병들어갔다. 수술이 잘 되었는지 아닌지를 알 방도는 없었다. 나의 동경은 항암치료를 지속하지 않는 대신 술과 담배를 지속했다. 똥주머니를 차고 인간 같지도 않은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느냐며 울부짖던 이따금의 괴로운 한탄은 하루에서 이틀. 이틀에서 나흘. 일주일. 어느새 매일. 그렇게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퇴원 후부터는 죽음을 피한 대가를 아빠는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그렇게 맨몸으로 견디고 있었다.
'장루는 외과수술에 의해 생긴 장출구로 변을 내보내기 위한 우회로입니다. 장루는 신체의 일부분인데 이것은 소장이나, 대장의 일부를 복벽 밖으로 빼내어 피부와 함께 봉합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복벽 바깥으로 1~2cm 돌출되어 있으며 처음에는 매우 붉은색을 띄고 부풀어 있습니다.'
국가암정보센터의 장루에 대한 설명 일부이다. 쉽게 말하자면 인공항문이다. 수술로 항문을 배 위로 꺼낸 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장루가 위치한 배 위에 장루판이라는 것을 붙이고 그 판과 부착하는 장루 주머니를 연결시킨다. 말 그대로 배변이 담기는 주머니가 배 위에 항시 달려있게 된다. 장루판과 장루 주머니는 주에 1~2회 교체해야 한다. 아빠가 처음 수술을 거부했던 이유. 인간답게 살고 싶다던 고통의 이유.
수술을 결정하던 날 병원 비상계단에는 죽음을 상대로 한 창과 방패의 대화가 쓰고 텁텁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목숨 앞에서 자존심이 문제냐는 선배의 말에, 아빠는 내가 죽을지 안 죽을지 어떻게 아느냐 반문했다. 얼마 못 살고 죽더라도 사람처럼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포효했다. 젖은 한숨이 섞여있던 대화 속에는 빠지지 않고 계속해서 어린 딸인 내가 등장했다. 그날부터 나는 죄인이었다. 아무도 내게 네 탓이라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다 내 탓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나 때문이다. 아빠가 저렇게 괴로운 건 내 탓이다. 나의 동경이 병들어가는 것은, 자유로운 미래 대신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퇴원이 가까워졌을 즈음. 장루판과 장루 주머니를 어떻게 부착하고 사용하고 관리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 담당자가 병실로 찾아왔다. 교복을 입고 병원을 드나드는 나를 보고, 혹시 보호자가 나밖에 없느냐 물었다. 대답도 하지 않는 아빠를 대신해 그렇다고 대답한 내게 담당자는 말없이 웃어주었다. 담당자는 중요 사항들을 설명하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다. 이건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혼자서 할 땐 이런 방법으로 하면 됩니다. 혼자 하는 분들도 많아요. 아버님이 설명을 잘 들으셔야 해요. 이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힘주어 말했던 담당자의 말을, 아빠는 끝까지 듣지 않았다.
아빠의 퇴원 후의 나는 학교가 끝나면 무조건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친구들하고 조금 이야기라도 하려면 금세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지금 씻을 거야."
앞뒤 없이 딱 한 마디와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익숙했다. 몇 달을 지속했으니 익숙해졌다.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와서 장루판과 장루 주머니를 교체하라는 뜻이다. 아빠는 죽을 때까지 내 손으로 하지 않겠다 했다. 그러니 평생 네가 하라고. 너 때문에 내가 이러고 살고 있지 않느냐는 무언의 압박이 계속해서 내 목을 졸랐다. 언제나 반가웠던 핸드폰 액정 위의 아빠라는 이름이 공포가 되는 데에는 고작 한 달이면 충분했다.
아빠의 단골 가게는 동네 어귀의 작은 삼겹살집이었다. 회사 동료들과 그 가게에서 늘 술을 마셨다. 밥은 안 먹어도 술은 마셨다. 그러지 말라고 울어도 보고 화도 내봤지만 열일곱 살 먹은 딸의 말을 들을 정도로 아빠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빠의 성격은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안다. 더 건드리면 곧 터질 시한폭탄과도 같은 아빠를 건드릴 자신도 없었고, 그 자격이 나한테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괴로운 건 전부 내가 원인이니까.
"네가 아빠 술도 못 마시게 하고 담배도 못 피우게 하고 그래야지. 딸이 뭘 하는 거야."
가끔 만나는 아빠의 회사 동료들은 교복을 입고 아빠를 데리러 온 내게 종종 그렇게 말했다.
"야야, 아빠가 너 때문에 사는데 네가 잘해야지."
너 때문인데. 너희 아빠가 그 큰 수술을 하고 저러고 살고 있는 건 다 네 탓인데. 너는 왜 고작 그 술·담배도 못막느냐. 화장실에 가느라 아빠가 자리를 비우면,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들을 비수로 만들어 내게 무자비하게 꽂아댔다. 이것도 내가 받아내야 할 대가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이 무엇을 안다고.
아빠의 정상적이지 못 한 포효를 매일 받아내는 나는 그것들을 풀 곳이 없어 곪아갔고, 그 고름을 짜내기 위해서는 그들이라도 원망해야 했다. 그들에게라도 화를 내야 했다. 당신들이 뭘 아느냐고, 내 힘듦은 누가 알아주느냐고. 그런데 나보다 더 힘든 건 아빠라는 걸 아는 죄인인 나는 결국 울면서 숨을 죽였다. 도로 제자리였다. 아무도 원망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화를 낼 수 없는. 숨죽인 죄인.
죽음을 피한 대가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했다. 옥죄던 죽음을 피하면 다시 웃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웃음을 앗아간 대가는 나의 동경을 망가트렸고,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모르던 동경의 자식은 매일 울며 빌었다. 제발 우리 아빠를 돌려달라고. 나의 동경을 더 이상 앗아가지 말아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