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랫동서가 “형님과 어머니는 실과 바늘 같다”고 한 적이 있었다. 좀 당황스러운 말이다. 실과 바늘 같다는 말은 부부나 연인에게 주로 쓰이는데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이 말이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동서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안다. 그만큼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서다. 영화나 음악회 등 문화생활도 어머니와 함께 한다. 쇼핑도 어머니와 많이 다니는 편이다. 이렇듯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다니고 싶어 하신다. 거기에 나는 군소리 없이 따라 다닌다. 친구들은 이상한 고부 관계라고 한다.
어머니는 90이 넘은 연세에도 복지관이나 문화센터에 다니셨다. 여러 가지를 배우셨는데 그 중에서 오카리나는 수준급이다. 펜데믹 때 복지관이 문을 닫게 되자 그렇게 좋아하시던 오카리나도 손을 놓으셨다. 갑자기 바깥 활동 없이 집에만 갇혀 지내는 어머니가 부쩍 늙어 보인다. 무표정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는데 딱히 텔레비전을 보기위해 켜놓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맥이 다 풀린 사람처럼 깜박깜박 졸기도 하신다.
나도 무기력하게 늘어지는 일상이 한여름 엿가락 같은데 당신은 오죽할까 싶다. 꼿꼿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분이었는데 세월의 힘 앞에 꺾이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어머니를 모시고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연의 신선함인지 정말 상쾌했다. 꽃피고 새순 돋는 4월의 싱그러움이 문턱을 넘었는데 공원 안은 한산한 것이 적막하기까지 하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온 꽃들에게 미안한 감마저 든다. 나무 사이사이에 있는 벤치는 온 몸이 묶여 있는 것이 마치 죄인 같다. 언제쯤이면 저 벤치들이 무죄가 증명될까.
서울 토박이이신 어머니는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를 무척 좋아 하신다. 어머니를 모시고 여고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았던 안국동을 몇 번이나 가보기도 했다. 아마 지금으로 생각하면 그 시절 학생들에게 핫 플레이스였던 것 같다. 특히 자신이 교사로 재직했던 재동초등학교를 둘러 볼 때는 감회에 젖는 모습이다. 이러한 일들이 가끔은 힘이 들 때도 있지만 어머니는 나를 편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때로는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복잡해진다. 친정엄마와는 특별한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할수록 한없이 죄송하고 목이 메인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친정 엄마와 산 세월 보다 어느새 시어머니와 살아온 세월이 훨씬 많다.
수십 년을 시어머니와 같은 집에서 동고동락하며 살았는데도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을 보면 친정엄마와는 다른 점이 있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내가 딸이 아니라서 가슴으로 느껴지는 애틋함이 없는 것은 아닐까. 딸이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사소한 것들이 며느리에게는 문제가 되고, 친정엄마라면 웃으며 넘길 일도 상처가 되고 서운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제 서로의 마음을 알고도 남을 세월이 흐른 만큼 의무감이 아니라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잘 섬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