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례 할머니

by 원은미


목사님을 모시고 할머니 댁에 심방을 갔다. 할머니는 우리의 방문을 무척 황송해 하며 연신 허리를 굽히셨다. 이 모습에 얼마나 민망하고 죄송했는지 모른다. 할머니는 방 가운데 겨우 세 사람이 앉을 만큼 자리를 마련해 놓고 계셨다. 처음 신방이라 긴장하신 듯하다. 할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누추해서 어쩔까를 반복하며 냉장고 문을 여신다. 대접할 게 없다며 요구르트 2개를 꺼내 목사님과 내 앞에 놓는다. 할머니와 만남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가끔씩 할머니 집을 방문했다. 할머니는 매번 바쁠텐데 뭐 하러 오느냐 하신다. 반가움의 표시를 이렇게 하는 것을 나는 안다. 친척도 지인도 없이 혼자 사는 터라 누군가가 찾아오는 일이 없는 것 같다. 할머니는 내가 가면 뭐라도 주고 싶어 하신다. 방구석에 잘 싸매 놓았던 할머니의 주전부리를 먹어보라며 마치 귀한 손님 대접하듯 하신다. 그리고 나를 볼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다. 자신이 살아 온 기막힌 얘기를 해맑게 하시는 거다.


할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가 밖에서 낳아온 아들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없다. 그리고 자신은 아들 하나에 딸 둘을 두었는데 아들 둘이 40대에 병으로 떠났다 한다. 할머니는 딸이 둘 있어도 어렵게 사는 처지라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려 장사를 하며 온갖 고생을 다 하신 것 같다. 이것도 내 생각이지 할머니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고생 얘기도 남 얘기하듯 웃으며 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할머니는 그저 주어진 삶에 욕심 없이 사신 것 같다.


나와 한참을 얘기하다가도 어서 가서 시어머니 밥해드리라고 재촉 한다. 때로는 장아찌나 매실 엑기스를 담았다며 내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할머니의 적적함을 달래주는 말동무가 있었다. 나를 보면 날뛰는 것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하얀 털을 가진 강아지다. 모처럼 할머니의 집이 사람 사는 것 같은 시끄러운 때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더위가 극에 달했던 8월에 돌아가셨다. 후회스럽고 자책이 되는 것은 이 무더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 해 여름은 뭐가 그리 바쁜지 할머니를 챙기지 못했다. 주일이면 늘 뵙던 할머니가 몇 주 보이지 않았는데도 전화를 하지 못했다. 내일해야지 내일해야지 하며 시간만 보냈다. 이러다 정신 차리고 할머니께 전화를 했을 때 없는 번호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하며 할머니의 딸에게 전화를 했다. 딸의 목소리를 듣는데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간다. 죄책감에 휩싸였다. 할머니의 딸은 내 전화번호를 몰라서 연락을 못했단다. 엄마는 편안하게 가셨다며 교회와 구역장한테 감사했다고 꼭 전해달라고 하셨단다. 그동안 엄마에게 잘해줘서 고마웠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할머니는 여름만 되면 폭염과 싸우셨다. 헉헉대며 더운 바람을 내보내는 선풍기 앞에서 부채를 손에 쥐고 맥없이 앉아 있기도 했다. 이 땅의 무더위를 피해 급히 천국으로 가신 것일까.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할머니와 할머니의 반 지하 방이 생각난다. 방이라 해야 물건들이 반은 차지하고 겨우 한 사람 누울 정도였다. 할머니와 함께 했을 퇴색한 물건들은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었다. 볕을 보지 못한 물건들이 풍기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도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사람처럼 언제나 평온하다. 아무리 둘러봐도 번듯한 물건하나 없는데 할머니는 부족한 것 없이 산다고 말한다. 생활에 필요한 것은 나라에서 다 해주니 걱정 없다고 말이다.


할머니가 해주신 매실 엑기스에 얼음을 넣어 음료수를 만들어 마시며 무더위를 이겼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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