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4등을 해야 하는데 그게 나다’ 올림픽에서 4등을 한 독일 선수가 한 말이다. 그 선수인들 왜 1등의 욕심이 없었겠는가.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인 것이겠지. 4등은 조금만 더 힘을 냈으면, 조금만 더 노력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극에 달하는 등수다.
언젠가 tv에서 독립영화 「4등」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큰 기대 없이 보다가 점점 빠져들었다. 수영선수를 꿈꾸는 초등학생 준호는 수영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4등을 하는 아이다. 수영을 좋아하고 재능도 있지만 엄마의 극성에 반 강제적으로 수영을 하다 보니 점점 재미를 잃어간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신감마저 떨어졌다. 엄마는 이런 준호를 각종 대회에 데리고 다니며 ‘메달을 따야한다고’ 다그친다.
엄마는 새로운 코치를 구하는데 그 코치는 낙오자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국가대표 출신이다. 금메달을 목에 걸게 해주겠다며 지나치게 큰 소리를 치는 모양새가 미덥지 못하다. 걱정했던 대로 준호는 매일 소주를 마시며 pc방을 전전하는 코치와 불안한 시간을 보낸다.
얼마 후 준호는 엄마의 기대를 안고 큰 대회에 출전을 한다. 처음에는 1등으로 나가다가 마지막에 역전을 당해 2등으로 골인을 한다. 간발의 차이로 생애 첫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온 가족이 모처럼 식탁에 둘러앉아 화기애애하다. 이때 동생이 ‘형, 정말 맞고 하니까 잘 한 거야? 예전에는 안 맞아서 맨 날 4등을 했던 거야?’ 한다.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를 일시에 정지시킨다. 준호의 은메달은 체벌을 감수하며 혹독하게 훈련을 한 결과다.
이 시대의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1등을 하기 위해 세상으로 내몰린다. 1등, 아이의 행복일까? 부모의 만족일까? 참 어려운 문제이다.
누구나 1등을 하고 싶고, 했을 때 기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명만이 1등의 자리를 차지 할 수 있다. 그럼 나머지는 모두 불행하고 낙오자가 되는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기대했던 쇼트트랙 계주에서 한 선수가 넘어지는 바람에 4등을 했다. 안 그래도 국민들의 기대에 중압감이 있었을 텐데 실수를 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라 계주이니 팀원들에게 미안함을 감당해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고개 숙인 모습이 죄인도 그런 죄인이 없다. 우리는 이들이 다시 뛸 수 있도록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올림픽에 3,4번을 나갔지만 매번 4등을 한 선수들도 꽤 많다 한다. 한 걸음이 모자란 4등, 결코 땀을 덜 흘려서가 아니다. 실패가 아니라 가능성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
사회 분위기는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는다. 반면 메달을 따지 못한 수많은 4등의 선수들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 스포츠를 볼 때 4등을 한 선수에게 눈길이 갈 것 같다. 아무리 결과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이들의 땀과 눈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