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에 위치한 칠궁이 50년 만에 개방 되었다. 문화원 회원들과 칠궁으로 유적탐방을 가면서 그저 후궁들의 신위가 모셔진 곳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잠시 뒤 나의 우매함이 들어나고 말았다. 이곳에 잠든 영혼들은 그냥 어머니들의 가벼운 얘기가 아니다. 가슴 아픈 모정의 역사가 숨 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齋室) 마당에 모여 칠궁에 대해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데 왠지 모를 숙연함이 느껴진다. 빛바랜 사당의 건물은 세월의 무게를 말해준다.
마당 가운데는 ‘ㄴ’모양의 돌 하나가 있는데 ‘하마석’下馬石이라 한다. 아무리 왕이라도 예의를 갖추기 위해 사당으로 들어가기 전 말에서 내렸는데 그 때 쓰였던 발판이라고 한다.
칠궁이라는 이름은 근래에 와서 붙여진 명칭으로 조선시대 후궁의 신분으로 왕의 어머니가 된 일곱 분의 신주가 모셔진 왕실 사당이다. 이곳은 원래 영조가 생모인 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으로 숙빈 묘라 하였다가 후에 승격하여 육상궁이 되었다. 조선후기 도성 안에는 왕의 어머니 사당이 여럿 있었는데 고종 때 그 분들의 신주를 옮겨왔다.
특이한 점은 저경궁(儲慶宮), 대빈궁(大嬪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 덕안궁(德安宮), 육상궁(毓祥宮), 연호궁(延祜宮), 이렇게 일곱 분의 신주를 모셨지만 사당은 다섯이다.
추존 왕이 된 사도세자(장조)의 어머니 신주를 모신 선희궁과 순조의 어머니이자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의 신주를 모신 경우궁이 한 사당 안에 있다. 그러니까 시 할머니와 손주 며느리가 함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사도세자는 비운의 왕세자이다. 이런 아들을 둔 어머니 영빈 이씨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아버지인 영조의 눈 밖에 난 아들이 뒤주에 갇혀 죽는 모습을 끝내 보고야 말았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데, 한 많은 삶을 살다가 아들의 3년 상을 마치는 날 어머니의 서러움도 죽음으로 끝이 났다.
또한 육상궁과 연호궁도 한 사당 안에 있는데 언뜻 보면 모르고 지나치기가 쉽다. 이 두 사당에는 현판이 안쪽에 하나가 더 있다. 지위가 높은 분을 안쪽에 모시는 것이 예법이라고 한다.
육상궁에 모셔진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설명을 들을 때는 드라마의 영향이 있어서 그런지 더 생생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무수리 신분의 어머니와 그 아들이 왕이 되기까지 모자가 얼마나 살얼음판 걷는 삶을 살았을까. 모진 풍상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조는 재위 기간 동안 육상궁을 이백 여 차례나 찾아와 냉천정(冷泉亭)에 머물며 휴식을 하고 제사도 지냈다. 내부에는 자신의 어진을 걸어놓아 늘 어머니가 볼 수 있게 했다. 이 모든 것은 살아생전 하지 못했던 효도를 이렇게나마 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노구(老軀)의 왕이 냉천정에 앉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연호궁에는 추존왕인 진종(효장세자)의 어머니이며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이는 정조가 효장세자의 아들로 양자가 되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 사당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희빈”이라는 제목으로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희빈 장씨의 신주는 대빈궁에 모셔져 있는데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어머니이다. 다른 분들의 사당은 사각 기둥인데 대빈궁은 궁궐과 같이 둥근기둥이다. 사당을 오르는 돌계단도 다른 분들은 세단인데 비해 대빈궁은 네 개의 단으로 되어있다. 이는 희빈 장씨가 5년간의 왕비였던 것을 예우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 분은 치열한 삶을 살았다. 낳은 아들이 원자가 되고 자신은 후궁의 신분으로 왕비가 되는 광영을 입었다. 이는 유래가 없는 일이다.
다음은 저경궁인데 추존왕인 원종의 어머니이자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마지막으로 덕안궁에 모셔진 분은 영친왕의 어머니이며 고종의 후궁인 순헌 귀비 엄씨이다. 이 분은 일제 강점기를 살았다. 애처로운 것은 마흔이 넘어 낳은 귀한 아들을 일본이 볼모로 끌고 갔다. 11살 때의 일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모자의 애틋한 정이 끊어진 것이다. 이 또한 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58세에 죽는 날 까지 아들을 보지 못했다고 하니 눈인들 제대로 감았을까. 하지만 이 분은 교육에 뜻이 있어 자신의 내탕금으로 양정의숙을 비롯한 숙명, 진명 여학교를 세웠다. 교육비를 무료로 하여 궁녀들을 교육시켰다니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는 분임이 분명하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사당 곳곳을 돌아보는데 많은 생각이 든다. 이 곳 칠궁에 잠든 왕의 어머니들은 후궁의 신분이기에 왕과 왕비처럼 종묘에 들어 갈 수 없었다. 마음 놓고 어머니 노릇도 하지 못 했다. 오히려 비천한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 왕이 된 탓에 숨죽여 살아야 했다. 왕이 된 아들 또한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제대로 불러보지도 못했음을 짐작한다. 인고의 삶을 살아낸 위대한 어머니들이 이제야 세상에 나온 것이다. 해설사의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죽어서야 후손들에게 ‘내가 왕의 어머니였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