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취향과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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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지지향이라는 곳에 와 있다. 파주출판도시 안에 있고 출판도시문화재단이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이다. 책을 테마로 한 공간인데,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역시 지혜의 숲이라는 커다란 서재가 있다는 것이다. 공공 도서관처럼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고, 커다란 서가들에 책이 가득 꽂혀 있다. 1박 2일 계획으로 이곳에 왔다. 목적은 글쓰기. 이 책을 만들기로 해놓고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날 잡아서 작정하고 글을 쓰기로 하고 온 것이다. 제주도의 미로객잔에 갈까 기차를 타고 강릉에 갔다 오며 기차에서 글을 쓸까 서울 시내의 호텔에서 1박을 할까 하다가 결국 이곳에 왔다. 막상 와보니 정말 좋고 딱 우리의 목적에 부합하는 공간이다. 어제 지혜의 숲에 앉아서 글 한 편을 완성했고 이렇게 새로 한 편을 시작했다. 혹시라도 우리와 비슷한 목적으로 며칠 머물면서 작업할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이곳이 우리의 여행 목적에 맞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평소 우리의 취향과도 잘 맞는다. 최근 들어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배송비도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같이 제주도도 가고 강릉도 가고 도쿄도 가봤는데 뭐 재미야 있지만 사실 엄청 재밌는지도 잘 모르겠고, 코스와 일정을 적절히 계획하는 능력도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금세 힘들어지고 집에 가고 싶고 그렇다. 좀 추운 계절에 다녀서 더 그랬던 것도 같다. 우리는 또 추위에 몹시 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아, 지혜의 숲의 또다른 장점, 냉방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 신혼여행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가기로 했는데 그냥 남들이 좋다니까 가는거고 사실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비행기표만 끊어 놓고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있다. 배송비 주변 사람들은 우리의 입국, 출국 날짜를 듣고는 ‘왜 그렇게 짧게 다녀오냐’고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별 생각이 없다. 막상 갔다 돌아올 때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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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비는 카페와 서점을 좋아한다. 나는 원래 별로 카페-서점 인간이 아니었는데 배송비랑 같이 지내다 보니 카페와 서점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원래 카페와 서점을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산책과 공원도 좋아한다. 인간의 손이 많이 닿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보다는 정돈된 자연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배송비의 중요한 매력 중 하나는 그가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취향이 있는 사람을 없는 사람보다 좋아하는데, 그게 꼭 나랑 아주 비슷할 필요도 없고 엄청 세련되고 정교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취향이 있다는 건 세상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관심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냥 일상적인 관심보다 조금 더 특별한 관심 말이다. 그리고 취향을 기르기 위해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려준다. 취향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의 취향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별로 ‘실질적인’ 쓸모가 없는 것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걸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송비는 취향이 있고, 취향을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이다. 요즘은 사실 취향을 기르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인 것 같다. 집에 누워서 유튜브만 켜도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컨텐츠가 막 쏟아져 나온다. 음악도 배송비와 나는 본격적인 불법 다운로드의 시대에 한참 음악을 듣기 시작하는 청소년기를 보냈고, 지금은 음악 생산자들에 대한 합법적인 착취인 스트리밍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배송비는 음반을 산다. 한달에 적어도 두 장 이상은 사는 것 같다. 작은 서점들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가면 꼭 뭐라도 사가지고 나온다. 커피값을 아끼지 않고, 시간이 나면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가고 싶어한다. 배송비의 이런(힙스터 지향적인??) 삶의 태도의 결정체는 역시 마포구민이 되고 싶어하는 강력한 열망일 것이다. 우리가 만약 연애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마 배송비는 마포구 어딘가에 혼자(혹은 한두 마리의 고양이와) 살면서 매일 교통지옥에 시달리며 판교로 출퇴근하고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별로 납득이 되지 않는 삶의 방식이다. 매일 몇 시간 머물지도 않는 집을 위해 적지 않은 월세 혹은 대출이자를 지불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시간과 돈을 길에 버리는 것. 그런데 어느새 나도 전염이 되어서 서울로 이사 가자, 서울 언제 가지? 무슨 동네로 가지? 라는 대화를 주고 받고 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서점에서 독립출판물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커피는 집에서도 마실 수 있고, 책은 빌려 볼 수 있고, 안 봐도 그만이다. 특히 커피값은 많은 사람들이 아까워하고 틈만 나면 트집을 잡으려고 드는 비용이다. 그 돈을 아끼면 뭘 할 수 있다느니 하면서. 카페에서 우리는 책을 보거나 일기를 쓴다. 좋은 카페에는 커피가, 나처럼 뭔가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책을 보는 사람들이, 적당한 볼륨의 거슬리지 않는 음악이 있고 초록색이 많이 보이는 창이 있다. 그리고 나는 좀더 준비된 상태가 된다. 집에선 영 손에 잡히지 않는 일도 카페에 가면 좀 더 할만해진다. 쓰다 보니 자꾸 변명같다. 뭔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걸 납득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냥 나는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하고 그래서 카페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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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활의 많은 부분이 소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어떨 땐 돈을 쓰는지 안 쓰는지, 어디에 돈을 쓰는지가 우리를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고등학교 때는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모아 한두 달에 한 장 씩이라도 음반을 사서 모으는 게 큰 낙이었다. 성인이 되고 난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지만 이전보다 음반은 오히려 덜 사는 사람이 되었다. 때로 진지하게 왜 나는 그 때보다 돈이 많으면서 지금은 음반을 사지 않는지 자문해 보기도 했다. 돈은 많지만 음반 살 돈은 없다. 내 안에서 애정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내 또 잊어버리고 그냥 산다. 항상 돈이 없다고 느끼고, 돈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취직을 해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그런 모순이 더 심해졌다. 사회 극초년생 시절에는 사실 취미생활을 하며 취향을 기르는 데 돈을 쓸 시간이 아예 없었다. 그 때 나는 ‘시발비용’이라는 걸 정말 말 그대로 ‘피부로’ 체험하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대형 병원의 1층에 마치 강남역에서 하듯 피부관리실 영업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나처럼 어리버리하고 월급다운 월급을 받기 시작한지 얼마 안된 병원의 여성 노동자들이 지나가면 붙잡고 관리 받으라며 영업을 했고, 그 다음은 뭐 뻔한 시나리오다. 결국 난 그 곳에서 꽤 큰 돈을 썼는데, 없는 시간을 쪼개서 1-2주에 한 번씩 그곳에 가서 관리사 분의 손에 내 얼굴과 맨살을 맡기고 누워 있는 게 그렇게 편안하고 위안이 될 수가 없었다. 그 때는 스트레스 많이 받으니까, 돈 버니까 나를 위해서 이 정도 돈은 써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병원에서 그렇게 힘들게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지 않았다면 쓰지 않아도 되었을 돈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그 돈이 아주 많이 아깝지는 않다. 그냥 돈 번다고 힘들게 일하면 또 그만큼 돈을 쓰게 된다는 교훈을 얻었고 돈을 위해서 내 능력 이상으로 무리해서는 안되겠구나 생각하고 있다.
이야기가 좀 샜는데 아무튼 그렇게 괴롭게 빡세게 일하면서 결국 정신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게 되었다. 어느 날은 병원을 가서 약을 타오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스스로 나를 즐겁게 하는 방법, 나를 즐겁게 하는 소비를 잘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 그냥 이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이 돈을 좋아하는 것에 쓰고 그렇게 살면 더 건강하게 지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졌다. 꼭 돈을 아끼겠다고 그렇게 일만 하고 안 논 건 아니긴 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돈 쓸 데가 있다면 사는 게 더 즐겁고 힘든 것도 더 견딜 만하지 않을까. 주변에 그나마 나보다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그렇게 사면서(buy) 사는(live)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악기를 사려고 돈을 모은다거나 좋아하는 배우의 뮤지컬을 몇 회차씩 찍는다거나. 나한테도 그런 게 있었다면 이렇게 어디가 고장나 버려서 복구한다고 또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돈을 벌면서는 생활비를 쓰고도 돈이 남으니까 정말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뭔가 쓸데없는 소비를 한 것처럼 느껴지면 죄책감이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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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비를 만나면서 우리가 제일 다르다고 느꼈던 점이 소비 성향이었다. 사실 내가 썩 검소한 편은 아니다. 나도 돈 쓰는 거 좋아하고 쓸데없는 돈도 많이 쓰는 편이다. 특히 사지도 않을 물건들을 보는 걸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돈 쓸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거, 그래서 소비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 배송비랑 많이 다른 것 같다. 이렇게 돈 쓰고 싶은 거 참고, 나의 만족을 고려하지 않고 지내다 보면 오히려 몇 푼 아끼겠다고 맘에 들지 않는 걸 사거나 나중에 후회할 충동구매를 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다. 돈 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부분적으로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나는 이런 걸 누릴 자격이 없어’라는 생각에서 나오기도 하는 것 같다. 배송비는 그런 면에서 좀 편안하달까 관대한 게 있다. 옆에서 보면 삶의 질을 높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에게 만족을 주는 것들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다. 돈으로 편안함을 사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한다. 마음에 여유가 있고, 자신과 남을 적당히 대접한다. 이게 좋은지 안 좋은지, 나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 해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시도에 드는 돈을 크게 아까워하지 않는다. 물론 기본적인 태도가 그렇다는 거고, 모든 영역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비싼 옷을 사는 건 아까워하고 택시도 잘 안탄다.
돈에 대해 관대한 편인 배송비는 시간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시간은 기회비용의 개념에 포함되니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가 취향을 기르기고 교양을 쌓기 어려운 것은 그런 쪽에 투자할 돈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생활에 여가 시간이라는 게 없던 시절에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건 꿈도 못 꾸고 지내고, 새로운 음악도 안 들으면서 지냈다. 본 것도 들은 것도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한 일 년 정도만 읽고 싶은 책 읽고 공연이며 전시를 보러 다니며 살 수 없을까 꿈꾼 적도 많다. 항상 상상에서 그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실제로 실행할 여력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쓸모없다는 느낌을 견디기 어렵고, 주변 사람들 눈치가 보이고, 실제로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내가 그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없어서 그렇게 못했다. 쓰고 보니 이것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배송비와 함께 지내게 되며 처음 나에게 그런 시간을 허락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만히 놔두면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들며,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가치 있게 쓰고 있다. 가끔 직장에 계속 다녔더라면 벌 수 있었을 돈에 대해서 생각하고, 미래를 불안해하기도 하지만, 배송비는 항상 그래도 된다고, 잘 하고 있다고 안심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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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배송비와 영화 소공녀를 보러 갔었다. 주인공 미소는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단칸방에 살다가 월세와 담뱃값이 오르자 방을 뺀다. 그리고 보증금을 모을 때까지 친구들의 집을 전전한다. 주인공 미소의 삶에 대한 태도가 나름 잔잔하게 화제가 되었던 것 같다. 미소는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남자친구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담배와 위스키는 기호의 영역에 속한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어쨌든 생존에 지장은 없는 그런 소비재이다. 남자친구는 좀 애매하지만, 영화에서 미소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얻을 수 있는 '안정'의 가능성을 제시하니 담배랑 위스키와 비슷하게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미소는 ‘집은 없지만, 생각과 취향은 있어’라고 말한다. 영화는 미소의 선택을 긍정하는 시선에서 만들어져 있고, 나는 영화가 설득력이 있다고 느꼈다. 나를 지키며 사는 것은 취향을 지키며 사는 것이고 취향을 찾고 기르는 데는 돈이 든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안정이라는 걸 포기하고 나의 취향을 지키는 쪽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을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비현실적이고 이상주의적이고, 철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소에 공감할지 생각한다. 배송비와 나는 여러 면에서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와 비슷한 사람은 극히 소수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트위터 여론으로만 보면 거의 기호 8번의 녹색당 신지예 후보가 서울시장 당선인데, 과연 선거일에 득표율이 얼마나 나올지 미지수다. 아파트 청약이라거나, 주식이라거나 부동산 P2P 같은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의 삶의 방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까봐,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주변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봐 걱정한다. 이렇게 살아도 되니까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이렇게 사는 거면 어떡하지? 가끔 가난한 미래를 상상하기도 한다. 충분한 수입이 없이 돈의 압박에 시달리며 지내는 그 미래에는 ‘소공녀’를 다시 생각하는 내가 있다. 미래의 나는 미소에 공감하는 30대의 나를 몹시 비난할 것이다. 그땐 내가 철딱서니가 없었지, ‘쓸데없는’ 지출을 아껴 착실하게 미래를 대비했더라면 지금 이러고 살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이런 건 그저 잠시 스쳐가는 생각일 뿐 내 마음은 왠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고, 망하지 않을 것이다. 망하더라도, 우리가 꾸준히 공들여 좋아하는 것들이, 여유롭게 지내는 마음의 습관이 우리를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