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병원으로 옮긴 후 세 번째 상담을 했다. 수면 관련 약은 뺄 테니 여전히 멍한지 스스로 관찰해 보란다. 다행이다. 하루종일 졸리고 멍한 건 너무 힘들어. 지하철에 서있으면 깜빡깜빡 정신을 잃을 것 같다고.
상담을 할 때마다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어쩌다 엄마와 사이가 틀어졌느냐인데, 여기는 상담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그 유구한 역사를 다 읊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주요 사건만 압축해서, 임팩트 있게, 딱 10분 안에 전달해드렸다. 병원만 네 번째잖아. 역시 뭐든지 하다 보면 늘더라고.
마스크 때문에 의사쌤의 정확한 표정을 알기는 힘들었지만 내 얘기에 좀 놀라는 눈빛이었다. 음.. 왠지 모르게 뿌듯하군. 무슨 변태적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불행이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게 좋더라. 그래야 그걸 극복해온 내 인생이 스스로 대견하다고 느껴지니까. 그렇다고 과장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 스스로 대견할 수가 없잖아. 굳이 과장하지 않아도 이 정도인데 뭘. 후훗.
오늘 이야기 때문인지 다음부턴 상담시간을 좀 늘리자고 하신다. 나야 좋지. 예전 병원들이 기분 나빴던 건 바가지를 씌우는 느낌 때문이었지, 사실 상담 자체는 나쁘지 않았거든.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하지만 막상 내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면 내 얘기가 나만 재밌지 남들은 지겨울 수 있잖아. 물론 몇몇은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아파하며 들어주겠지만, 동시에 내 걱정을 엄청 할 거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그건 아마 반을 남한테 떠넘기기 때문이겠지. 난 내 속 후련해지자고 그러고 싶지는 않아.
물론 난감할 때도 있다. 특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요즘은 감정이 심하게 무뎌지다 보니 특별히 재미있는 일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도 많지 않거든. 사실 이건 좀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감정이 무뎌지는 정도가 좀 비정상적이랄까.
예를 들면, 지난주 지방출장을 가면서 고속도로에서 크게 사고가 날 뻔한 일 같은 거. 급브레이크를 밟아서 간신히 사고는 면했지만, 누가 봐도 정말 죽을 뻔했던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도, 내 심장도 전혀 동요가 없더라. 그냥 "오~ 나 안 죽었네?" 라며 아무렇지 않게 다시 차를 빼서 목적지로 향했고, 아무 일 없이 일정을 잘 소화하고 올라왔다.
엊그제 이태원 사건도 그렇다. 내가 서있던 그 자리에서 백수십 명이 허무하게 죽은 건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 하지만 그건 머리로 생각한 거고, 감정은 크게 동요하지 않더라. 운 좋게 살아났다는 안도감이나 등골 서늘함이 느껴져야 정상 아닌가. 반면 내가 느낀 건 그냥 신기함에 가까운 감정이었다는 거.
다시 말하면, 요즘은 당연히 놀라야 할 때 별로 놀라지를 않는다. 우리 뇌에는 공포나 위험을 감지하는 편도체라는 기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마비가 되기라도 한 건지. 편도체가 쪼그라들면 사이코패스가 될 확률이 높다던데, 설마 나도..?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의사쌤은 혹시나 트라우마가 남을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았는데, 글쎄... 나중에 상태가 좋아지면 어떨지 몰라도, 지금 당장은 죄송할 정도로 멀쩡하다. 오히려 걱정해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괜찮고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일일이 말하는 게 더 귀찮더라는 거. 와.. 써놓고 보니까 나 진짜 사이코패스인가봐.
모든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면 감사할 것도 많지만 속상할 것도 많지. 반대로 모든 것에 둔감해지면 감사할 것도 없지만 속상할 것도 없고. 두 가지 인생 중에 뭐가 더 나으려나. 모르겠다. 어쨌든 예전의 나는 전자였던 것 같은데, 확실히 그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