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끼질 en axor Oct 29. 2024

오랜만에 쓰는 글

오랫동안 이곳에 글을 쓰지 않았다. 얼마 동안은 글을 못 쓸 만큼 상태가 나빴기 때문이지만, 최근에는 반대로 꽤 오랫동안 상태가 괜찮았던 덕분이다. 글로 풀어내야 할 만큼 맘속에 끈적한 응어리가 생기지 않았던, 그럭저럭 살만한 삶.


그랬던 내가 다시 오랜만에 글을 쓴다. 어떤 기분인지 솔직히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는 빙빙 도는데, 그래서 술을 마셨던 건지, 아니면 술을 마셔서 그런 건지 잘 구분이 안된다. 어쨌든 술은 주말에만 마시자는 결심을 오랜만에 깼고, 지금 약간 후회하는 중이다. 우울할 때 마시는 술은 독이라는 걸 알면서 왜 우울할 땐 더더욱 술을 찾게 되는 걸까. 이것도 일종의 자기파괴인가.


그렇지만 나름 노력은 했다. 우울증 3년째, 우울감이 밀려오는 징조가 느껴지면 휩쓸리지 않기 위해 나름의 조치를 취하는 게 일상이 됐다. 일단 일은 미뤄둔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므로, 업무에 대한 건 미래의 멀쩡한 나에게 맡기기로. 대신 강아지와 함께 산책도 멀리 다녀왔고, 소소하지만 사치스럽게 다이소 쇼핑도 무려 18,000원 어치나 해버렸고, 이럴 때를 대비해서 얼려둔 삼겹살 2인분도 모두 구워먹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이 모든 노력들이 실패했다. 결국 나는 GG를 선언하고, 아직 해가 지려면 먼 시간이지만 결국 침대에 쓰러지고 만다. 매트리스가 푹 꺼지고 몸이 진흙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 그 상태에서 눈을 감으면 곧 잠이 든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몽롱한 상태.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눈 떠보니 창밖은 어두워졌고, 허기를 느낀 나는 결국 술 한 병을 따고 말았다.


기분이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괜찮다. 투병생활(?)을 3년이나 했더니 이제 너무나 잘 알겠거든. 이건 그냥 길을 가다가 우산 없이 소나기를 맞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늘따라 운이 없었던 것뿐.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니고, 사건사고가 벌어진 것도 아니고, 그냥 내 호르몬이 또 변덕을 부린 것뿐.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못 피했으니 어쩔 수 없이 쫄딱 젖은 채 비가 그치기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컨디션이 엉망이 됐지만 뭐 어쩔 수 있나. 비가 그치면 깨끗이 씻고, 옷을 빨아 멀리고, 감기에 걸려서 오래 가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수밖에.







작가의 이전글 잠 못드는 밤,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