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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혼의 도끼질 Oct 29. 2024

잠 못드는 밤,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일기

피곤해 죽겠지만 잠들기는 글른 것 같다. 나는 벌써 시간 반 동안 침대에 누운 채 눈만 깜빡이고 있다. 전두엽이 파사삭 부서져내릴 것 같고 눈알 빠질 것 같이 피곤한데 도대체 잠이 들지 않는다. 짜증나. 나는 우울증이 정말 싫다.


벌써 세 달 가까이 항우울제를 먹지 않고 있데도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다. 오랫동안 먹어온 약이 쌓이고 쌓여서 드디어 효과를 발휘하는 건지, 아니면 돈벌이고 뭐고 다 미뤄둔 채 유유자적 한량으로 지낸 시간들 덕분인지, 그것도 아니면 엄마와 연 끊을 작정으로 싸우면서 지켜낸 내 집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고무적인 일 아닌가. 여전히 가끔은 감정이 이유 없이 불쑥불쑥 끓어오르거나 갑작스런 무기력감 때문에 힘들 때도 있지만, 잘 버텨내고 있는 게 스스로 기특할 지경.


그런데 한 가지, 신경안정제는 아직 끊지를 못했다. 엉망진창 들쭉날쭉 감정변화에 버티는 요령은 어느 정도 생겼지만, 잠을 못 자는 건 그냥 죽을 맛이다. 그래도 약에 의존하 싫어서 스트레칭과 마사지도 하고, 따뜻하게 샤워도 하고, 편안한 음악도 틀어놓은 채 억지로 잠을 청하곤 한다. 운 좋게 통할 때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아닌 듯.


결국 약을 한 알 먹었다. 아마 30분 후면 잠이 들 것이다. 대신 내일 아침엔 머리가 약간 아프고 멍하겠지. 늦잠을 잘 테고, 계획했던 스케줄은 다소 어긋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아예 못 자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눈이 빠질 듯 피곤한데 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감정 상태와 관련이 있겠지.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스트레스가 차오르는 날.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심장에는 이미 불길이 가득 차서 일렁이는 날.


그런 날은 거울 속 내가 유난히 못생겼고, 일은 손에 안 잡히고, 배가 불러도 끊임없이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일에 밀려있는데 하면서도 여전 소파에 늘어져서 꾸역꾸역 뭔가를 먹고 다. 진짜 최악은 그런 내스스로 한심스러우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나. 너무 꼴보기 싫더 큰 우울감에 빠진다. 악순환이다.


그런 날에는 잠들기더욱 쉽지 않다. 온 몸의 세포가 조금씩 뾰족해져 있는 상태라, 피부에 닿는 이불은 물론이도 옷의 감촉까지 불쾌하게 느껴진다. 눈알만 움직여도 뻑뻑한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경험,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모를 거다. 마치 오래된 문짝이 여닫힐 때처럼 쓰윽- 쓰윽- 하는 소리 눈동자를 움직일 때마다 내 귀에 실제로 들린다니까. 정말이라고. 그러니 잠이 제대로 들겠느냐고.


대체 왜 또 감정이 이 지랄을 떠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도 없어서 미치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예전처럼 조급해 하지 않는다는 것. 내 맘대로 조절이 안 되니까 병이지 괜히 병이겠냐. 의사가 괜히 약을 지어주겠어? 이렇게 생각하면 적어도 자괴감은 들지 않는다. 난 아픈 거지 미친 게 아니거든.


어쨌든 약을 먹었으니 나는 곧 잠들 것이다. 그때까지 이렇게 영양가 없는 헛소리를 끼적이기로 한다. 글을 쓴다는 건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적어도 글을 쓰다보면 지금 내 감정 상태를 글로 구체화할 수 있거든. 그러면 조금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고, 잠들기도 조금 수월해진다. 글쎄... 내일 아침 맨정신으로 읽었을 때 흑역사가 하나 더 추가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다음날이다. 중간에 잠이 들어버려서 마무리가 웃겨졌는데 그 부분은 지웠다. 자기검열이 좋은 건 아니지만 누가 봐도 헛소리인 걸 어떡해.


하긴 이 글 자체가 헛소리일지도 모른다. 별다른 이야기꺼리 없이 그냥 잠 안 온다는 푸념이니까. 내용이 이 따위라서 읽으시는 분들께 조금 미안하다. 그렇지만 뭐 어쩌겠어.


작가 설명에 써 놨잖아요, 작정하고 쓰는 일기장이라고. 그러니 뭐라고 하지는 말아 주세요. 여러분도 잠이 안 올 때는 각자의 일기장에 아무거나 편하게 끼적이시고요. 물론 저는 그걸 안 읽을 겁니다. 괜찮아요, 저도 제 일기를 굳이 여러분이 읽어주시길 바라지는 않거든요.


이런 제 태도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환자거든요. 남들 눈치를 보기보다는 제 맘대로 해야만 버틸 수 있는 환자. 그래서 저는 많이 뻔뻔해졌답니다. 근데 이렇게 지내는 게 과거 멀짱했던 시절보다 오히려 편하다는 걸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땐 우울증도 나쁘기만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들 숙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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