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유병기 (有病記)
어느 보호자의 소회(所懷)
밀가루를 먹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들었지만 아이와 어머니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계란과 밀가루 식이제한을 하고 있어도 피검사에서 밀가루 알레르기 수치가 나온다면, 식이제한은 계속 진행해야 했다. 나는 밀가루를 먹지 않으면 밀가루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음식 알레르기는 완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완치는 노력으로 되는 일도 아니었다. 이번에 밀가루 알레르기 반응이 나온다면 또 1년의 식이제한을 한 후 다시 검사를 한다고 했다. 노력을 해서 결과가 나오는 부분이라면 노력이라도 해볼 텐데, 이 불확실한 희망을 이야기했다가 실망하게 될까 봐 남편과 나는 말을 아꼈다. 그래서인지 나는 기계적으로 아이의 식이제한을 진행하고 있었다. 끝나긴 하는 걸까, 식이제한은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니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세상에는 이것보다 훨씬 힘들고 까다로운 치료를 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초반의 걱정도, 힘듦도 적응할 수 있었다.
식이제한을 시작해도 케이크만큼은 포기하질 못했다. 아이도, 나도 케이크를 좋아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정말 케이크에 진심이었다. 생일,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먹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건 생각만 해도 짠했다. 한두 번쯤은 안 먹고 지나갈 수도 있는 건데, 안 먹는 게 아니고 못 먹는다고 하니 어떻게든 먹으려고 애를 썼다.
계란과 밀가루 식이 제한을 하던 중, 유치원에서 아이의 생일파티를 한다고 했다. 원래 유치원에 엄마들이 간식을 보내는 건 자제해 달라고 했었지만 유치원에서 사는 케이크를 아이가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이의 생일파티 케이크를 아이가 먹지 못하는 상황이 안쓰러워진 나는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케이크를 따로 준비해도 될지 물어보았다. 원래는 안 되는 상황이지만 유치원에서는 고맙게도 아이의 상황을 이해해 주었다. 대신 케이크를 사서 보내는 건 아이도 몰랐으면 하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말했다. 케이크로 생색을 낼 생각은 없었다. 지난번 먹었던 케이크 가게에서 다른 디자인의 케이크를 주문해서 몰래 전달했다. 생각보다 케이크가 컸지만 무사히 전달할 수 있었다. 그날 유치원에서 케이크의 인기는 엄청났다고 한다. 모든 아이들이 이 케이크를 어디서 샀냐고 물어볼 정도였고, 아이도 집에서 그 케이크를 또 먹고 싶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병원에 갈 때마다 채혈을 했지만 혈액 종양 진료와 소화기 영양 진료를 병행하면서 매번 채혈을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오늘은 채혈을 하는 날일까 하는 새로운 긴장감이 생긴 듯했다. 아이는 병원에 갈 때마다 오늘은 채혈을 하냐고 물었고, 우리는 진료비 수납을 해야 알 수 있다 말했다. 아이는 진료비 계산서가 나오자마자 우측 하단에 가야 할 곳에 채혈실이 있는지 살피곤 했다. 혈액종양 진료를 위한 채혈날, 아이는 사탕을 준다는 한 마디에 순순히 팔을 내주었다. 앞으로 이렇게 채혈을 하면 되겠구나, 아이도 사탕이 있으면 다음에도 용감하게 채혈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작 사탕으로 꼬셔볼걸, 괜히 먼 길을 돌아왔다는 느낌도 들었다. 아직 아이인데, 보상 없이 채혈을 하라고 하는 게 욕심이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날이 혈액종양내과에서의 마지막 채혈이었다. 아이도 이제 채혈을 자주 안 해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사탕을 못 먹는다는 사실에 조금은 아쉬운 기색이었다. 이 날, 마지막 진료에서 혈색소 12.2g/dL, 저장철 20.1, 혈청철 119/376 수치를 확인했다. 11번의 진료 끝에 나타난 정상 수치였다.
밀가루 식이 제한 여부가 결정되는 진료 날도 다행히 모든 검사 결과가 좋아 아이는 밀가루를 시도할 수 있었다. 1개월 후 다시 진료를 볼 때도 결과에 문제가 없었다. 밀가루가 종료된 지 10개월 후, 계란 식이제한을 시도한 지 1년 정도 되던 때 채혈을 한 차례 진행했는데 아이의 저장철이 낮아져 철분제를 처방받았다. 하지만 다시 혈액종양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의 계란 식이제한도 종료되었다. 하지만 아이의 알레르기 염증 수치는 여전히 있었고, 아이가 알레르기 체질이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알레르기 호흡기과의 진료를 잡아주었다. 하지만 내용 전달이 잘 되지 않았는지 알레르기 호흡기 초진에서는 아이의 예전 진료 내용을 알지 못했고, 증상이 없으니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소화기 영양도 식이 알레르기 반응이 없으니 진료가 종료되었다. 조금은 찜찜한 마음이 들지만 가까운 내과에서 주기적으로 피검사를 해보면 되겠지 싶어 다음 진료를 잡아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유치원에 아이가 이제 계란을 먹을 수 있음을 알렸다. 처음에는 노른자의 4분의 1 크기, 그다음 절반, 이렇게 점차 양을 늘려나가면서 아이가 잘 받아들이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유치원에서 계란을 먹는 아이를 보면서 같은 반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OO이, 이거 먹어도 돼요?' 물으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기뻤을까? 뿌듯했을까? 아이는 이제 모든 음식을 다 먹을 수 있다.
2021년 2월 5일부터 응급실 내원을 시작으로 2023년 10월 23일까지 2년 8개월이 넘게 병원을 다녔다. 아이의 수치에 비해 증상은 없어 비교적 덤덤하게 넘어간 편이었지만 병명을 알게 된 날이나 대장 내시경, 검사 결과가 안 좋다는 얘기를 들은 날에는 덤덤할 수 없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진단명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도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까. 치료가 끝나고 기뻐하던 순간은 잠시였다. 평소에는 아이의 병명을 의식하지 않다가도 갑자기 입술색을 살피며 불안해하기도 하고, 불현듯 장상피화생 진단이 생각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한다. 언제 다시 철분 수치가 내려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처음부터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치료는 끝났어도 마냥 안심이 되지는 않는다.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이렇게 내 마음이 불안해질 때면 내가 상황에 비해 너무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투병하는 환자나 그들의 보호자가 보기에는 너무 같잖겠지. 언젠가는 이 불안의 빈도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치료는) 끝났지만 (병이) 끝난 게 아닌 한 아이의 유병기는 여기서 마친다. 아이의 유병생활을 지내면서 아픈 건 정말 운이 나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이들이 아픈 경우가 그랬다. 왜 아이에게 이 병이 생겼죠?라는 물음에 명쾌하게 원인을 말해주는 의사가 있을까.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생활을 해도 누군가는 병이 생긴다. 모든 게 다 운일뿐, 아이의 잘못도, 부모의 잘못도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정신승리를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