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흔히 보는 고둥 중에도 멸종 위기종이 있다. 대표적인 녀석이 대추귀고둥이다. 생김새가 이름처럼 대추와 귀를 닮았다. 주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어릴 적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갯벌에 사는 다양한 고둥을 봤다. 갈고둥, 총알고둥 등 이름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모르는 녀석들까지 아주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 대추귀고둥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당시에도 개체 수가 없었거나, 아니면 원래부터 개체 수가 적은 종이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나이가 들어 대추귀고둥을 찾기 위해 순천만을 찾았다. 하지만 녀석들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겨우 대추귀고둥 껍데기만 발견할 수 있었다. 장소를 옮겨 이번에는 내가 태어난 전남 강진 갯벌을 찾았다. 태어난 마을부터 시작해 해안가를 따라 건넛마을까지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녀석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추귀고둥은 의외의 곳에 살고 있었다. 주로 사람들이 인위적인 개발을 하지 않은 곳이었다. 비슷한 환경일지라도 사람 손이 닿은 곳에는 녀석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번 녀석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니, 이후에는 가는 곳마다 녀석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멸종 위기종이 맞는가 싶은 정도로 자주 보였다. 전남 강진, 함평, 무안에 이르는 갯벌에서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대추귀고둥이 사는 곳에는 거의 100% 흰발농게가 서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흰발농게는 대추귀고둥과 마찬가지로 멸종 위기종 2급으로 지정된 생물이다. 두 종이 함께 서식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두 종의 서식 조건이 비슷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 갯벌의 건강 상태가 매우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면에 흰발농게가 살고 있다고 해서, 대추귀고둥이 함께 사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멸종 위기종이라 할지라도 대추귀고둥의 서식 조건이 흰발농게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것으로 보인다.
바닷가 갯벌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반평생을 대추귀고둥을 모르고 지냈다. 이것만큼 대추귀고둥이 처한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는 건 없을 것 같다.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 대추귀고둥을 언제까지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