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람 Dec 10. 2019

'콩깍지 씌었다'는 표현

일기

'콩깍지 씌었다'는 표현이 있다. 이 비유는 콩깍지라는 표면 속에 그것의 알맹이에 해당하는 콩이 있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가정/강조한다. 나는 은연 중에 강조하는 뉘앙스 자체가 표현이나 비유가 전달하는 의미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콩은 '본질'이고 콩깍지는 '현상'에 해당하는가? 플라톤은 이데아가 본질이고 현상(현실)은 이 본질에 대한 1차 모방이라고 보았다. 예술은 다시 현상에 대한 모방이므로 2차 모방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의 눈에 비친 현실은 단지 허구일 뿐이다(물론 그것은 육체의 필멸성으로부터 진리를 보호하기 위한 형이상학자의 안간힘이었다). 동양의 장자도 그 유명한 '호접몽'에 빗대어 현실은 꿈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나 장주는 그러한 표현이야말로 일종의 비유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자신들이 사용한 언어라는 도구 자체가 일종의 비유이고 허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니체는 언어가 은유와 환유로 이뤄진 기동대라고 표현한 바 있다. 언어의 지시적 기능과 수사법에 해당하는 미적 기능(은유와 환유)이 사실은 동일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불립문자'에 대한 니체식의 해석일까? 실재는 언어화될 수 없고, 말해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제 또한 이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소쉬르에 의해 폭로된 기표(글자)와 기의(의미)의 자의성이 바로 그것이다. 기표는 필연적인 그러한 방식으로 기의를 지시하지 않는다. 기의는 기표에 선험적으로 내재한 것이 아니라 한 기표와 다른 기표들 사이의 차이에서 사후적으로,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약 200년  전에 언어가 대상을 살해한다고 말한 헤겔에게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결국 "콩깍지가 씌었다"가 의미하는 본의는 이러하다. 처음에 우리는 이 표현에서 콩깍지(현상)가 콩(본질)을 가리고 있다는 뉘앙스를 전달받는다. 그러나 콩깍지(현상) 가리는 것은 콩(본질)이 아니라 콩(본질)의 없음 자체다. 콩은 말할 수 없는 본질에 대한 비유로써 출현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본질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로 그것이 가려져야만 한다. '형식'적인 면에서 본질은 반드시 현상을 기반으로 해서 출현할 수밖에 없다. 은폐야말로 본질의 형식이다. 본질은 이 정도로 무력한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일종의 무이다. 또는 우리는 거꾸로 현상이 본질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언어 자체가 일종의 허구이고, 이 허구는 형식적인 면에서 현상과 본질, 참과 거짓, 선과 악을 형식적인 면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자신의 허구성 자체를 은폐하기 때문이다(모든 형식은 분리된 것, 형식 자체에 내속한 구성요소들 간의 분리를 필요로 한다. 또한 형식은, 그러한 분리를 시도한 최초의 일자 자체의 상실을 요청하고, 이 선험적인 일자(기원)를 사후적으로 은폐함으로써, 처음부터 존재해왔던 것처럼 스스로를 위장한다). G.K. 체스터턴의 소설 「부러진 검의 의미」에는 한 구의 시체를 숨기기 위해서 아군 수천 명을, 적의 함정에 빠뜨려서 죽게 하는 미치광이 장군이 나온다. 그는 부하 병사를 실수로 죽인 자신의 살인죄를 감추기 위해서 시체산을 만든 것이다. 같은 것이 언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언어는 언어 자체의 허구성을 가리기 위해서 진실과 허구를 콩과 콩깍지로 구분했다. 콩의 비-존재(무)가 콩깍지라는 허구를 만들었고, 이 허구를 통해서 무는 그 자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연기/ 위장할 수 있었다. 여기서 언어는 그 자신이 콩(본질)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까지 믿는다. 하지만 실은 언어야말로 콩깍지인 것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언어가 지닌 믿음의 차원을 강화시킬 수 밖에 없다. 언어가 콩(본질)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기 위해서, 인간은 수천 개의 콩깍지를 만들었다. 언어가 콩깍지가 될 때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 또한 콩깍지가 되고 마는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작가의 이전글 독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