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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네 Dec 14. 2016

낡은 도시에 산다는 것

삐그덕 삐그덕




"편리함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조금의 불편함도 불평 거리가 되었을 테고, 익숙한 풍경이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닐까. 결국은 결핍이나 부족함이 감사한 마음을 주는구나."









바르셀로나 혹은 파리를 갔을 때 오래된 건축물들 사이로 미로처럼 펼쳐 있는 골목을 둘러보는 것을 유럽여행의 전부처럼 느꼈던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축물들을 보고 조금 놀랐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건물을 지을 때 옆에 붙여서 짓는 규칙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골목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거리에서 다음 사거리까지 빈틈없이 연결된 건물들에 색으로 표시해 놓은 경계선이 전부인 건물들은 러시아 땅 덩어리만큼이나 지나치게 커서 지루한 느낌이었다.









성냥갑 같은 건물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나면  커다란 건물 안에는 중정이 생기게 되는데 대부분 중정으로 통하는 문은 쇠창살 같은 철문으로 단단히 막혀 있다. 가고자 하는 곳에 초인종을 누르거나 열쇠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게 때문에 처음에 저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단단한 철문 안으로 들어가는 용기를 내는 데에는 조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곳의 시간과 언어, 사람들에 익숙해져야 했고 무엇보다 나의 호기심이 더 간절해야 했다. 그것은 아마도 나도 이제 이곳에 적응했다는 뜻일 것이고 이들이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선도 불편하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게 칠해진 건물 안에 두부처럼 도려낸 건물들 사이로 근사한 공간들이 나타났다. 레트로나 빈티지가 트렌드여서 낡은 성수동이나 연남동, 해방촌 같은 곳들에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는 것과는 달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신시가지의 신식 아파트보다 구시가지의 오래된 건물에 거주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부서질 것 같은 엘리베이터 하나 없는 집이 세련되고 편한 집보다 더 비쌌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100년은 넘었을 것 같은 건물에  제대로 된 호수 하나 없는 이 건물은 얼마 전 철거된 정릉 스카이 아파트 마냥 삐그덕 거리지만 인위적으로 흉내 낼 수 없는 낡은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한국에서였다면 저 문을 고쳐주지 않는다며 주인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저 손잡이가 그리고 저 오래된 나무 문이 니스칠 깔끔하게 되어 있는  새것이었다면 난 이곳을 특별하다고 기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오래됨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내 집으로 가기 위해선 정확히 세 번 문을 열어야 한다. 그것도 모두 열쇠로.. 어떤 날은 옆집에 새로 이사한 아가씨가 안쪽에서 중문의 보조키까지 잠가 버리는 바람에 20분을 목놓아 외쳤어야 했고 얼마 전에는 퍽 소리와 함께 인덕션에 불이 들어오지 않더니 집안에 모터가 멈춰버렸다. 싱크대에서는 물이 세고 화장실에서는 물이 역류했다. 명절날 설거지 잔뜩 쌓인 싱크대 앞에 서 있을 때처럼 도망가고 싶던 날이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꾸미지 않은 오래됨이 좋다. 굽이 얇은 하이힐은 신을 수 없지만 마차의 말발굽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길과 집에서 보이는 층마다 다른 창문의 풍경들은 타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우리의 오래된 정미소나 양조장 같은 풍경의 나무문.










얼핏 보면 범죄조직이 나올 것 같은 곳이지만 사람도 도시도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다.














도시와 건물 곳곳에 숨어 있는 위트들은 나와 당신이 알고 있는 러시아의 이미지를 바꾸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했다. 집 아래 도넛 가게 청년은 화폐 모으는 게 취미라며 처음 만난 한국사람을 보며 지나치게 좋아했고, 예쁜 핑크 소금을 파는 청년은 한국의 프로게이머를 얘기하며 반가워했다. 자주 가는 노점의 할머니는 나를 보면 멀리서 "안녕" 하면서 반갑게 인사해 주시고, 앞집의 청년 "미하일"은 위기 상황에 항상 나타나 도움을 준다. 





몇 주동안 해가 없던 날의 연속이었고 도착하고 처음으로 해를 온몸으로 마주한 날 일조량 걱정 없는 한국의 삶이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서울에서도 내가 먼저 인사했다면 옆집의 아이 엄마와 김치 한 조각 나눠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편리함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조금의 불편함도 불평 거리가 되었을 테고, 익숙한 풍경이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닐까. 결국은 결핍이나 부족함이 감사한 마음을 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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