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의 마지막 옆에서.
나는 항상 경험이 우선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낙관적으로 웃어넘기거나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뭐, 언제 또 이런 걸 겪어 보겠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왔다.
열여섯 살, 가장 좋아하던 과목은 영어였다. 사교육을 하진 않았지만 그 치열한 학교 분위기 속에서 홀로 힘을 쏟아봤었다. 때는 고사 이틀째, 정확히 영어와 과학 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새벽 다섯 시까지 영어 공부를 하던 나는 밤을 새지 못 하고 꼬박 잠들어버렸다. 나가시던 엄마는 일곱 시에 날 깨워주었지만 어째서인지 피곤함을 못 이겨 이불 덮고 잤다가 오후 한 시가 훌쩍 지나고서야 깼다. 푸욱 자다 눈 뜨고 휴대폰을 보니 시험이 끝나고도 한참 지난 시간. 그리고 몇십 통의 부재중 기록. 내가 먼저 담임에게 문자를 했던가? 전화가 와서 받았다. 너무 푹 잔 나머지 목소리가 다 잠겨 여보세요도 하지 못했다. 우리 담임은 영어 교사였는데 다음 날 학교에 가서 방과 후에 길게 혼났다. 당시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시험 망친 건 난데 나보다 더 속상해하는 담임을.
카톡으로 친구에게 시험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노트에 답을 다 적어보고 추후에 정답을 매겨보니 시험 못 본 게 아까웠다. 솔직히 속이 상했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언제 학교 시험을 땡땡이 쳐보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 시험을 땡땡이 칠 경우는 전혀 없을 예정이었다. 나는 스스로 그렇게 다짐을 했었고, 아직까진 지킨 것 같다. 그래서 그 경험이 아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자인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항상 상대방이 느낄 감정을 중요시한다. 그게 바로 경험이기에. 무언가를 경험할 때 느낀 감정의 기억은 소중하다. 그래서 경험 디자인 BX나 브랜딩을 아주 좋아한다.
솔직히 말하면 2020은 실패가 많았다. 수없이 깨지고, 혼나고, 까이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나름 단단해졌다. 아마도 전보다 눈물이 줄었다. 아무것도 안 할 바에야 실패하고 말지를 외치는 주의다. 먹어 봐야 맛을 안다.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수도 없이 실패하고 다치겠지.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안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을 다 이겨낼 각오를 다질 만큼 하고자 하는 게 있다. 이상하게도 자신은 없지만 자신이 있다. 2021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희망이 있길. 희망이 있는 곳엔 반드시 시련이 있고,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방탄소년단이 말했다. 나아가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너의 수고는 너만 알면 됐고, 너 참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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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뱉는 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 나의 말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 본다. 나는. 2021년에.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더 행복할 것이다. 행복과 고난이 비례하진 않으니, 고난이 오더라도 행복할 수 있도록.
솔직하게 살자. 내년의 목표는 역시나 나 잃지 말기, 나를 더 받아들이고 사랑 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