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가이드에 품는 의문 (마지막) : 그들의 진짜 문제
미슐랭 가이드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들을 크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매해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이 발표될 때마다 셰프와 평론가들, 기자들은 부여된 별의 개수에 대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하지만 늘 미궁에 빠진다고 한다. 선택의 기준은 물론이고, 별 하나와 두개, 세 개를 받은 식당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조차도 미궁이다. 어느 유명 셰프는 메뉴와 요리팀 등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는데도 별을 잃었고, 이에 한 요리평론가는« 올해의 가장 어이없는 일 »이라는 평을 내기도 했다. 또 별 세 개를 꾸준히 받던 어느 식당은 셰프가 일을 그만두었는데도 변동 없이 별 세 개를 또 받은 사례도 있다. 셰프가 자리를 이동하면 얼마간은 « 지켜보는 기간 »을 갖는 것이 원칙인데도 말이다. 현재의 평론가들 모두가 입을 모아 « 올해의 베스트 »라고 꼽는 셰프가 미슐랭 별 세 개를 달지 못하기도 하고, 이미 별점을 잃었어야 하는 셰프가 계속적으로 영광의 자리에 머물러 있기도 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점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고 에 미요(Gault et Millau)는 « 미슐랭 별점은 현실적인 프랑스가 아닌 공식적인 프랑스, 관례적인 프랑스만을 비추고 있다 »고 썼고, 프랑수아 시몽은 « 미슐랭은 모험하지 않는다. 그러니 새로운 재능도 찾아낼 수가 없다 »라고 비판했다. 프랑스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요리 유학생들과 셰프들이 가득하고, 이들이 가져온 다양한 ‘모태 문화’들은 끊임없이 프랑스 요리와 대화하며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데, 그렇게 발전하는 « 시대의 맛 »은 애써 모른 척 외면하면서 미슐랭은 여전히 캐캐 묵은 귀족 시대의 요리에만 별점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롭고 창조적인 요리엔 점수가 박하고, 새로운 셰프가 미슐랭에 등재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 셰프는 이에 대해 « 미슐랭은 점수는 매길지 모르지만 우리를 이끌지는 못한다 » 며 그 한계를 지적했다.
한 셰프는 « 우리끼리는 미슐랭 가이드를 화장실 가이드라고 부릅니다. 화장실의 디자인이 고급스러울수록 점수도 올라가니까요 »라고 농담할 정도다. 미슐랭은 실제로 식당 주인들에게 화장실에 보다 투자하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포크와 나이프, 식탁보, 그릇 등도 고급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물론 미슐랭의 고전적인 취향에 맞춰서 말이다. 한 예로 어떤 셰프는 식당의 화장실을 공사한 후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되었다고 증언하고, 누군가는 식당을 고성으로 옮긴 후에 별 하나를 더 얻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미슐랭 가이드의 힘은 조사방식의 비밀스러움에서 기인한다. 일반 손님으로 가장한 조사원들이 요리를 맛보고 식당을 둘러본 후 점수를 매긴다는 것인데, 식당 주인들도 미슐랭에서 언제 방문할지 알지 못한다는 부분이 이 가이드의 신빙성을 높여 주었고, 이 원칙은 현재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그 방식에서 지적되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미슐랭의 조사단원들은 미슐랭 타이어에 소속된 직원들이다. 이들 각자는 평균적으로 한 해 2만 5천- 3만 킬로를 이동해야 하고 한 해 약 300번의 점심과 저녁식사를 « 채점 »해야 한다. 미슐랭 측의 설명에 의하면 이 조사원들은 전국의 크고 작은 식당들을 모두 맛보고, 이렇게 방문한 곳들에 대한 « 보고서 »를 작성한다. 이들은 그 어떤 ‘판단’ 도 하지 않는다. 그저 몇 장의 보고서에 정해진 항목들을 채워 넣을 뿐이다. 이들의 보고서가 상부에 몇 단계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살아남은 식당들은 다시 한번 방문의 기회를 얻는 식이다. 문제는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첫 번째 평가가 이렇게 정해진 문답형의 ‘행정서류’처럼 작성되면, 현장의 경험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뉘앙스와 느낌들이 전달될 수 없고 그렇게 여러 가지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공무원과 같은 « 성실성 »혹은 « 엄격함 »은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가스트로노미"라는 예술적인 영역에서는 위험도 크다는 지적이다.
2002년 당시 미슐랭 가이드의 대표였던 데렉 브라운(Derek Brown) 은 « 미슐랭 가이드의 조사원들은 몇 명이고, 조사 기준은 무엇입니까? »라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 약 100여 명의 조사원들이 매해 900여 개의 식당들을 한차례씩 다녀간다 » 고 답한 바 있다. 또한 « 다양한 국적의 조사단원들은 미슐랭에서 수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후, 매 해 겹치지 않는 다양한 지역에 파견된다 »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지금까지 확인된 바도 없고, 회사의 재정상황, 활동비 규모가 어떤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진 바 없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실제 조사원의 수는 이보다 훨씬 적고, 이들이 주장하는 한 해 한차례가 아니라 2년에 한번 같은 식당을 방문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미슐랭 가이드의 판매부수 , 특히 매 해 급격히 줄어드는 그 수치를 보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운영방식은 불가능한 규모라는 이야기다.
물론 이 중 가장 큰 문제는 살인적인 권위다. 이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유지하는데에 대한 압박감으로 자살을 택하는 셰프들이 계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슐랭 가이드에 한번 등재되고 별을 달게 되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홍보가 되고, 이는 평균 30% 이상의 매출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하니 셰프들이 긴장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다른 문제는, 이 때문에 셰프들이 각자의 개성을 창의적으로 발전시키기 힘들다는데 있다. 미슐랭의 보수적인 취향은 이미 확고하고, 변화가 너무 더디게 이뤄지다 보니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미슐랭의 입맛에 맞춰야 하는 거다. 미슐랭의 별 세 개를 획득한 거장 셰프 알랑 파사르 (AlainPassard)에 대한 소문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식당 아르페쥐 (Arpège)에서 채식요리만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2000년인데, 얼마 못 가 결국 다시 육식 요리를 시작한 뒤에는 미슐랭의 압력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
심사위원의 심기를 거스르기가 두려운 셰프들 때문에 비싼 값을 주고서도 매번 창의적이지 않은 요리만 먹어야 한다면 억울한 일이다. 또한 미슐랭은 익숙한 셰프들에게는 너무 후해서 이들에 대한 별점은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매일 매일 요리의 수준이 균일하지 않고, 메뉴에도 수 년째 변화가 없어 다른 프랑스 평론가들에게는 저평가되지만 미슐랭에는 계속 등재되어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식당들이 있다. 저 멀리 해외에서 일생에 몇 번 안 되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프랑스의 미슐랭 식당을 방문한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미슐랭만 믿고 왔다가 거금을 내고 실망하며 돌아갈 수도 있는 거다.
참고서적
Le livre noir de la gastronomie française / Aymeric Mantoux, Emmanuel Rubin/2012
Le repas gastronomique des français / 2015
이미지: 영화 Rataouille, PIXAR,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