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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미성 Apr 16. 2016

미슐랭 가이드의 어제와 오늘

미슐랭 가이드에 품는 의문 (2)  : 간략한 역사

미슐랭 가이드는 1900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를 계기로 탄생했다. 타이어 제조 회사인 미슐랭은 당시 박람회에 참가했던 자동차 소유자들, 잠정적 타이어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관광 가이드북을 배포했는데, 반응이 좋았는지 이 무료 가이드북 제작은 그 후 1차 대전 직전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무료였던 가이드가 유료가 된 계기는 전쟁 직후의 어느 날 우연히 발생했다고 한다. 미슐랭 타이어의 대표였던 두 미슐랭 형제가 어느 차량 정비소에 갔다가 이 미슐랭 가이드들이 대량으로 쌓여 차축을 고정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슐랭 가이드는 유료화가 된다. 

1900년도 첫 미슐랭 가이드. "운전자들에게 무료로 제공" 이라고 씌여있다. 

미슐랭 가이드의 목적은 처음부터 확실했다. 자동차 운전자들로 하여금 자동차 바퀴를 더 더 더 굴리게 하는 것. 그렇게 바퀴를 더 소비하게 하는 것. 

이를 위한 미슐랭의 전략은 탁월했고 시대를 앞서갔다.  단순한 숙박정보, 여행정보를 넘어 여행의 직접적인 동기가 될 수도 있는 레스토랑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독자들의 제보와 « 비밀 탐사단 »에 의해 선택된 레스토랑들을 선별해 별 한 개부터 세 개까지의 등급으로 나누는 시스템도 이때부터 체계화되었다. 그런 중에 2차 대전을 맞고 가이드의 발행은 중단된다. 


황금기

2차 대전이 끝난 후 30년 동안은 미슐랭 가이드의 전성기였다.

한잔 할 시간! 미슐랭 타이어가 모든 장애물을 다 마셔버리겠소! 

 매 해 3월, 미슐랭 가이드가 발행되는 시기가 오면 자동차 미식 여행이 붐을 이룰 만큼, 사람들은 그 해의 식당들을 맛보기 위해 시동을 걸었고, 미슐랭 가이드는 그렇게 프랑스 요리의 대표적인 리퍼런스가 된다. 판매부수는 50만을 넘었고, 매 해 미슐랭 가이드가 공개되는 날은 전 세계 미디어가 집중적인 조명을 하는 하나의 축제가 되었다. 자동차 운전자의 즐거운 여행, 아니 타이어 소비촉진이 목적이었던 초기의 기획의도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어 이제 미슐랭은 세계 타이어 시장의 리더가 되었다. 

덩달아 프랑스 요리의 위상도 높아졌고, 미슐랭이 선정하는 식당들의 가격도 올라갔으며, 이를 보도하는 방송들의 시청률도 올랐다. 점점 미슐랭의 한마디 한마디는 요식업계의« 신의 목소리 »가 되었다. 



몇 가지 사건 


엄청난 자본으로 움직이는이 요식업계에서 절대적인 권력이 된 가이드 북을 향해 조금씩 터져나오던 의심이 증폭된 데에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우선, 2003년 발생해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한 셰프의 자살사건이다. 

베르나르 루아조 (BernardLoiseau)는 부르고뉴 지방의 셰프로 1991년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세 개를 받고 촉망받는 스타 셰프로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다. 폴 보퀴즈, 조엘 로부숑, 알랭 뒤카스, 마크 베라 등 프랑스 최고의 셰프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파리에 새로운 식당을 두 개나 더 내고 호텔, 식품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시키면서 전성기를 누리던, 겉으로 보기엔 성공한 셰프의 모델이었다. 

  비극은 2003년의 어느 날 일어났다. 부르고뉴에 있는 그의 식당을 방문 한한 평론가가 그에게 충격적인 소문을 전해준다. 그때까지 유지하고 있던 미슐랭 별 세 개 중 하나를 곧 잃게 될 거라는 소문이었다. 이미 다른 요식 가이드에서 평년보다 낮은 점수를 받고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있던 루아조 셰프는 그 길로 자살을 택했다. 그 후 셰프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평소에도 미슐랭의 별을 잃게 될까봐 늘 불안해했고, 우울증까지 앓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미슐랭 측에서도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미디어에 너무 자주 등장하는 그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것도 사실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과도해진 미슐랭의 권력, 특히 별점과 매출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미슐랭의  « 자발적인 노예 »가 되는 셰프들의 상황을 조명하는 계기가 된다. 

또 한 번의 논란은 2005년, 한 유명 셰프가 미슐랭의 별을 거부하면서 일어났다. 

이미 미슐랭으로부터 별 세 개를 받았던 거장 알랑 상데랑(Alain Senderens)은 일반인들의 일상에서 점점 멀어지는 자신의 요리에 회의를 느끼고 « 이제 더 이상 400유로 이상의 식탁은 차리지 않겠다 »라고 선언하며 미슐랭 거부 선언을 했다.  이를 시작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유명 셰프들의 미슐랭 스타 거부 선언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 미슐랭의 선택 »과 상관없이 본인의 개성으로 저렴한 식당을 차리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젊은 셰프들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거장 셰프에게 훈련을 받고 나온 요즘의 젊은 셰프들은 미슐랭과 관계없이 빠르게 새로운 경향을 창조하며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파리에서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식당들, 파리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셰프들은 미슐랭 리스트에서는 이제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젠 그 문제의 핵심을 파헤쳐보자. 프랑스 요리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음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여전히 국외적으로는 요식업계의 절대적 권력이라는 "신의 목소리" 미슐랭 가이드인데,  왜 프랑스 국내에서 점점 외면받고 있는지.

평론가들, 셰프들, 기자들, 업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또 의심하고 있는 미슐랭 가이드의 문제는 무엇인지.  어쩌다 이렇게  "has-been"으로 취급받고 있는 건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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