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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미성 Apr 11. 2016

미슐랭은 과연 옳은가?

미슐랭 가이드에 품는 의문 (1) : 미슐랭 식당 체험기

나름 열정적인 식도락가라고 자부하는 우리 부부지만, 정작 미식가의 꿈이라는 미슐랭 식당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일 인당 수 십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도 물론 부담이었고 무엇보다 미슐랭 별은 없어도 새로운 비전으로 즐거움을 안겨주는 식당들이 파리엔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미슐랭의 권위’ 따위에 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식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미슐랭 식당의 위상을 무시하긴 어려웠다.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난 셰프"를 이야기함에 있어 미디어에서는 늘 미슐랭 별을 몇 개 혹은 하나라도 받았는 지를 중요하게 얘기했고, 개인적으로 가장 큰 정보를 주는 요리 관련 종사자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가장 훌륭한 식당은 어디냐는 질문에 그들의 대답은 늘 유명한 미슐랭 식당이었다. 그 "절대적인" 권위 앞에서 새로 발견한 셰프에 대한 나의 호들갑은 자연스레 자신감을 잃었다. 역시 미슐랭 별을 받은 식당들의 수준이 다르긴 한가 보다는 생각에 기회를 엿보던 중이었다. 한 지인으로부터 선물로 미슐랭 식당들 중 한 곳을 방문할 수 있는 식사권을 선물받았다.




미슐랭 별을 받은 레스토랑에 가보다.


한참 인기있는요리 경연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고 있어 일반인들도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유명 셰프의 식당. 시내 중심 대로변에 위치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바깥 세계의 시끄러운 소음은 완전히 단절되고, 커튼을 두번 젖히고 긴 입구를 들어가니 새로운 세계가 등장했다.

나름 가장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을 옷장에서 골라입고 나왔지만  실크 스커트에 드레스, 차르르 흐르는 캐시미어 양복을 입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주고 받는 노신사와 중년의 여성들 앞에서 우선 왠지 위축되는 기분.  안내하는 종업원을 따라 깔끔하게 세탁된 카펫 위를 소리없이 걷는데 나도 모르게 허리와 등이 꼿꼿해진다. 다들 뭘 먹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지만 두리번거리지 말아야지, 처음 온 티는 내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대화들이 너무 가깝게 들려서 식사가 끝날 무렵엔 잘가라고 악수라도 해야 할 것 같은 파리의 일반적인 식당과는 물론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고급스런 가죽으로 덮여 생화로 장식된 커다란 테이블들은 고개를 빼고 보지 않으면 옆 테이블에 누가 있는지도 모를 만큼 널찍하게 놓여있다. 하나같이 미남, 미녀인 종업원들은 속삭이듯 소근거렸고, 세상의 걱정없는 사람들만 모아놓은듯 손님들도 하나같이 나른한 표정으로 조근조근 대화를 했다.


자리에 앉으니 샴페인 병을 가득 채운 커다란 수레를 밀며 소믈리에가 다가온다.

음… 어차피 와인을 마실거니 샴페인은 생각이 없는데…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묻는다, 어떤 샴페인을 마시겠냐고. 로제 ? 블랑 ? 왠지 여기까지 와서 돈생각하느라 즐기지도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블랑을 이야기하자 그는 서로 다른 성격의 블랑 샴페인 몇가지를 소개해준다. 사실 그 선택에 있어 내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가격. 그는 진정 내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모르는 것일까?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나는 결국 그와 같은 놀이를 하기로 하고, 당신이 그리도 칭찬하는 작은 농장의 장인이 만든 샴페인 맛이 정말 궁금하다며 그걸 달라고 한다.

메뉴는 푸아그라, 생굴, 조개관자, 바닷가재, 어린 양, 산비둘기 요리와 같이 무엇을 고르더라도 « 가성비 »가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고급재료들을 모아 두었다. 요리의 이름을 이런 대표 재료로 명명한 것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셰프의 철학과 재료의 품질을 시사하려는 의지겠지.

고민을 하다가 내가 무엇을 먹을지를 온전히 셰프의 선택에 맡기는 « 장님 메뉴 »를 선택하기로 한다. 왠지, 오늘 특별히 자신있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줄 것 같아서.  오늘의 식사를 셰프 당신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하면 왠지 셰프도 더 책임감을 느껴줄 것 같아서.


하지만 그건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식당의 분위기와 인테리어, 서비스는 내게 "다른 차원"의 경험을 선사해 주었으나, 정작 그 요리에서 만큼은 단 한순간도 나의 미각을 사로잡지 못했다.



우선, 아페리티프를 보자. (공개하게 될 줄 모르고 성의없이 찍은 사진들... 이해바랍니다ㅠㅠ)

비고르 흑돼지 하몽 ( jambon de cochon noir de bigorre)

스페인의 이베리코 흑돼지처럼 자연에 방목되어 길러지는 프랑스 최고 품종 돼지의 하몽이다. 물론 훌륭한 재료지만 이건 재료일 뿐, 요리라고 할 수 없다. 함께 나온 빵은 그 자체로는 따뜻하고 푹신푹신해서 버터와 함께 먹으면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그러나 이런 스폰지 같은 식감은 질기고 짠 하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미슐랭 식당에서 이 정도의 성의라니... 실망.


전식

푸아그라 (Foie gras) 

푸아그라 역시 그 자체로는 훌륭했다. 하지만 이 접시 어디에도 "요리" 라 부를만한 것은 없다.  게다가 사진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푸아그라의 가장자리는 약간 산화된 상태다.  옆에 곁들인 무화과 쨈은 푸아그라와 함께하는 전형적인 재료고 피스타치오 가루는 푸아그라의 강한 맛에 묻혀 존재의 의의를 잃었다.

미슐랭 셰프의 창의성은 어디에 있는가?

사진에는 없지만 이 푸아그라와 함께 나온 빵도 그렇다. 이번에는 토스트한 두꺼운 시골빵이 나와서 푸아그라와 어울릴 수도 있었으나 빵은 너무 오래 토스트를 한 나머지 가장자리가 그을려 있었고 그 탄맛 때문에 푸아그라의 맛이 묻혀버린다. 결국 빵도 없이 푸아그라만 잘라서 먹으며 접시를 비웠다.

고급 식품점에서 품질좋은 푸아그라를 사다가 집에서 먹는것과 다른게 무엇인가!


본식

생 장 드 루즈 지방의 대구와 홍합 (merlu de Saint-jean- de-luz)

셰프의 고향에서 왔다는 대구라고는 하지만, 우선 대구와 홍합은 어쨌거나 그리 고급스러운 재료가 아니다. 조개로 냈다는 국물소스와 곁들여진 야채 회향(fenouil)은 생선요리와 아주 잘 어우러졌다. 소스는 바닷가재처럼 아주 깊은 맛을 냈고, 회향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홍합과 생선의 식감을 아삭하게 살려줬다.  

아주 맛있는 요리. 문제는 이것이 이미 다른 프랑스 레스토랑에서도 숱하게 맛본 요리고 그 다른 식당들은 이곳보다 가격이 세배는 쌌다는 것.


디저트 1

초콜렛 크림, 가나쉬 (ganache)

서로 다른 농도의 여러 겹의 초콜렛 크림, 그 위에 라임으로 낸 단단한 거품이 올려져있다. 여러 겹의 초콜렛 크림은 입안에서 뒤엉켜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아주 묵직한 식감을 냈고, 라임은 매우 시고 매우 달았다. 상큼한 맛을 주어야 할 라임이 그 자체로 강렬한 맛을 내며 따로 노는 이 안타까운 현상!


커피와 함께 디저트 2

라임 마카롱.  저절로 눈이 감기도록 강한 신맛을 내는 라임 크림으로 역시 맛의 균형을 잃었다.


마지막의 디저트 두 가지는 사실 다 먹지도 못했다. 코스 요리는 대부분 본식까지 먹으면 이미 배가 부르기 때문에 디저트가 왠만큼 맛있지 않으면 접시를 다 비우기 힘들다. 그래도 훌륭한 식당이라면 식사를 정리하기에 이상적인, 가볍고 상큼하고 창의적인 디저트를 내놓아 배가 아무리 불러도 다 먹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 두가지 디저트는 초콜렛 크림의 무거움과 라임 무스의 강렬함 때문에 도저히 다 먹기가 힘들었고, 게다가 커피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비워지지 않는 디저트 접시를 본 종업원이 와서 "혹시 다 드신겁니까?" 묻는다. 테이블을 치워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얼른 그렇다고 대답했다. 종업원은 "이걸 그럼 남기는건가요?" 재차 물었다.

어떻게 우리 식당의 음식을 남기고 갈 수 있냐는듯 어이 없어하던 그 눈빛은 내게 그 식당의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미슐랭의 별이 뭐길래, 이들은 이토록 오만하단 말인가?

종업원의 눈빛이 오만하다는건 물론 아니다. 다른 식당들의 몇 배나 되는 가격을 매겨놓고 이토록 게으르고 고민없는 요리를 내놓을 수 있는 그 태도, "그래도 좋다고 할거잖아, 여긴 미슐랭이 인정한 식당이니까" 라는 식의 그 오만함을 가리키고 싶은거다.  

물론, 나 또한 미슐랭의 강렬한 빛줄기를 따라 이 어마무시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몇 주의 예약기간을 거쳐 이곳에 들어온 수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겠지만(물론 내 돈으로 계산한건 샴페인과 커피 정도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별은 내 미각을 멀게 하진 못했다.

커튼을 젖히고 문을 열고 나가보라. 파리시내에는 그 절반의 가격으로 훨씬 창의적이고 가슴 따뜻한 요리를 보여주는 식당들이 널려있고, 밤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내가 미슐랭 가이드에 정말 관심을 가지고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이 경험으로 부터다.  

물론 이 식당의 수준이 보통 이상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 곳 그렇게 평균보다 몇 배는 비싼 값을 지불하고 일종의 "수준 높은 가스트로노미의 경험"으로 삼으며 칭송해야 할 곳이라고는 전혀 생각치 않는다. 이들이 (내게는) 기대 이하인 저 정도의 요리를 그만한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미슐랭의 후광 덕분이다. 미슐랭의 인정을 받았으니 이제 게임 끝이라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미슐랭 가이드를 보고 사람들은 어쨌거나 전 세계에서 밀려올테고, 자리 하나를 못 구해서 안달인 상황인데 도대체 뭐가 아쉽겠는가.



미슐랭의 비밀요원들이 정말로 저 식당의 요리를 비밀스럽게 방문해 맛보고도 별을 준 것이라면 나와 미슐랭의 입맛은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의 취향이 수준 이하인건가?

 우리는 음식을 맛보는 일과 같이 주관적인 활동에서 평론가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가?  우리가 다 맛보고 평가해볼 수는 없으니 정말 "먹어볼만한" 식당을 하나 추천해달라고 맡겨보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의 평가기준은 보다 엄격하고 객관적이어야 하지 않나?

아니면 혹시, 우리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식당을 평가했던 것은 아닐까? 미슐랭은 혹시 접시 안의 일보다 식당 내부의 인테리어, 고급스러움, 화장실의 위치, 식기의 종류를 더 유심히 보았던 것은 아닐까? 그 때문에 우리는 이런 "설비"를 위한 비용을 몇 배의 음식값으로 지불하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미슐랭 가이드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알아보니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전문가들이 프랑스에는 많이 있었다. 미슐랭의 허와 실, 그 한계와 현실을 알아보았다.






**물론 미슐랭 별을 달고 있는 모든 식당이 다 이렇게 실망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미슐랭 별을 받은 식당들의 평균적인 가격대로 볼 때, 우리 서민들에게는 일생에 몇 번 안되는 기회가 될텐데, 그렇다면 그 안의 어떤 식당에 가게 된다해도 수준 이상의 최고의 경험을 제공해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딴지를 걸고 싶은거다.


이 경험 이후 공적인 일로 운좋게 가 볼 수 있었던 미슐랭 별 세개에 빛나는 식당 플라자 아테네(Plaza Athénée)의 요리는 가히 새로운 차원의 비전을 맛보여 주었었다. 최고의 진귀한 기본 재료들은 물론이고, 접시 속 모든 요리들은 조심스럽게 그 하나하나의 맛을 잘 생각해야 해석이 가능하도록 섬세하고 기술적이고 또 예술적이었다. 그 즐거운 탐사의 과정에서 입가엔 늘 미소가 머물렀고 서먹하던 테이블도 금새 화기애애하며 즐거웠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곳은 모두가 인정하는 프랑스 최고의 셰프 알랭 뒤카스의 식당이다. 미슐랭의 별이 있건 없건 그는 이미 전설이 된 셰프니까 패스.


알랭 뒤카스 Alain Duca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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