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깃발을 달다
그녀, 깃발을 달다/버지니아(Verginia)와 나의 자유 관계
스튜디오 공사를 다시 시작했다.
마뉴엘과 빅터 그리고 나는 오늘도 열심히, 농담을 해 가며 웃으며 일을 하고 있다.
키 큰 나무의 가지 치기를 꼭 해야 했었고 목재로쓸 나무도 필요해서 반나절 동안 자를 나무는 자르고
가지치기를 했다. 언제나 놀라는 일이지만 이들은 두려움 없이 일 을 한다.
오늘도 바람까지 세차게 부는데 곧 달이 바뀐다고, 오늘 꼭 나무를 잘라야 한다고,
보는 나는 현기증으로 아찔하고 서커스 곡예를 보는 듯 가슴은 조마조마 한데
그는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고 높게 올라 전기톱을 이용해 가지들을 잘라 냈다.
다 끝내고 앞이 더 훤해진 경치를 바라보며
“마야, 혹시 깃발 있어? 한국 국기나 아니면 뭐 다른 거 라도. 저 나무 위에 깃발을 달면 좋겠어.” 한다.
“와,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근데 한국 국기는 없고…음, 그래 바람에 날리면 좋을 만한 뭔가가 있어.”
나는 어딘가에 넣어 두었던 긴 천을 찾았다.
이것은 버지니아가 내게 준 끝에 하트 모양의 장식이 달린 깃발이다.
마뉴엘에게 깃발을 던지며 “이것은 나의 자유를 상징하는 깃발이야.”라고 말하며
나의 자유와 버지니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를 생각했다.
버지니아는 아르젠티나에서 출생했지만 미국에서 평생을 산 아주 지혜로운 여성(WiseWoman)으로
내가 많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이었다.
그녀가 돌아가시기 약 2주 전쯤 그녀는 내 꿈에 나타나 “너랑 같이 갈데가 있다”며 내 손을 잡고
이곳 저곳을 지나면서 마주한 문을 열었다.
처음 그녀가 문을 연 곳은 수로가 길게 흐르는 고대 그리스의 거리쯤으로 보이는 거리였다.
그곳을 지나 우리는 또 다른 문을 마주하였고 열고 보니 그곳은 소 외양간이었다.
그리고 외양간에서 또 다른 문을 열자 앞이 확 트인 자연이 보였다.
그리고 산등성에 넓게 펼쳐진 차 밭도 보였다.
우리는 문 안으로 들어가 차 밭을지나 계속 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우리가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작은 돌멩이 몇 개를 산 아래로 던지기 시작했다.
“왜 돌을 던지세요? 사람들 다쳐요.”나는 놀라서 말하자
“응, 괜찮아. 우리는 지금 보이지 않는 세계(invisible world)에 있어.”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며
아주 신이 나서 어린아이처럼 깔깔거리고 있었다.
꿈을 꾼 그때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곧 다른 세계로 가시지 않을까 생각하였고
실제로 약 두 주 후에 그분은 돌아 가셨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그녀가 돌아가신 후 대략 한 달 뒤, 예상치 않게,
지금 내가 있는 이 산을 보기 위해 나는 산을 찾아왔고 계약은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걸어서 이 산을 오를 때는 꿈에서처럼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산등성 목축지를 지나고(차 밭은 지나지 않지만) 또 자동차를 타고 산을 오를 때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길게이어진 길을 지난다.
“아, 그녀는 그때 몇 달 후 내가 살게 될 곳을 보여 준 것이었다.”
나는 그 꿈을 생각하며 놀라움으로 ‘오싹’하였다.
돌아가시기 전 그녀는 갤러리를 방문하셨고 나의 ‘Old Man’s Dream’ 이란 이미지를
꼭 자신을 보는 듯하다며 너무 좋아해서 그녀에게 그 이미지를 선물하였다.
이미지를 받으며 좋아하셨던 그녀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아마 내가 꾼 그 꿈은 그녀가 내게 준 선물 이었나 보다.
오래전에 받은 선물의 포장을 뒤 늦게 뜯고 내용물을 보는 심정이 이랄까….
지금 그런 심정이다.
“버지니아. 고맙습니다. 그곳에서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