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시작이었다.
2012년 봄, 나는 나와 남편이 소유했던 작은 아파트를 정리하기 위해 뉴욕 맨해튼에 도착하였다. 그 아파트는 우리가 뉴욕을 떠난 후 세를 놓고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 아파트(세입자) 관리하기가 힘들었고 또 이미 떠나 온 곳을 자꾸 뒤 돌아보는 것이 마땅치 않아 아파트를 팔고 새롭게 시작한 생활에 전념하기로 결정을 본 것이었다. 머리 아프고 짜증 나는 사연 끝에 아파트는 팔렸고 나는 4개월의 뉴욕 생활에 점을 찍으며 빌카밤바로 돌아갈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도시의 여름, 특히 맨해튼의 여름은 숨이 막힌다. 물론 근처에 센츄럴 파크를 포함한 크고 작은 공원들도 있고 어딜 가든 에어컨이 팡팡 돌아간다. 하지만 잘 가꿔진 공원도 에어컨이 돌아가는 커피숍도 내 숨통을 시원히 열어 주진 못하였다. 나는 앞이 시원히 열린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부는 바람이 그리웠다. 그래서 에콰도르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갈망은 더 컸다.
에콰도르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할 날을 4 일 남겨두고 내 몸은 이상했다. 저녁 8시 정도가 되면 으슬으슬 한기를 느끼다 밤 11시 정도가 되면 그 한기는 나를 완전 점령하고 내 몸은 사시나무 떨 듯 그렇게 대책 없이 떨기 시작하며 밤새도록 고열에 시달렸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면 그 모든 증상은 사라지고 다시 정상이 된다. 똑같은 증상은 사흘 밤 계속되었고 내 몸은 기진맥진하였다.
뉴욕에서 마지막 밤, 다음 날 이른 새벽 공항으로 나가야 하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 걱정이 되었다. 만약 지난 며칠과 똑같은 반응이 내 몸에 일어난다면 난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갈 수 조차 없을 것이다. 항공사에 전화를 해서 날짜를 바꾸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내 몸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괜찮을 거야” 이었다.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내 몸은 그저 추었고 뜨거웠다. 있는 이불 모두를 몸에 덮고 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옆으로 누워있듯이 나는 그렇게 웅크린 체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분명 나는 너무나 추었고 오들 거리며 떨리는 몸을 어찌할 바 몰라 그저 그렇게 몸을 말고 있었기에 내가 잠이 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내 몸은 누에고치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곳은 마치 눈나라처럼 온통 하얗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그리고 똑같은 정도로 추웠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내 몸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이상스럽게 그런 내 몸을 나는 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내 귀에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내 옆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진 않았지만 하얀 한복을 입은 몇 분의 할머니들과 느낌상으로 나의 할아버지로 짐작되는 노인이 내 침대 옆에 서서 그들끼리 이야기하고 있는 그림이 내 머릿속에는 그려졌고 나는 그들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에 대해, 나의 몸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귀로 들은 것은 그저 소리였던 것 같다. 한참 후 할머니들은 뒤로 물러서고 할아버지는 나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화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노인의 마지막 몇 마디는 “자, 그럼 이제 가야지? 준비되었나?” 이었고 나의 대답은 “네‘ 이었다.
나는 서서히 일어나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몸은 그냥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천천히 일어나고, 무거운 짐 가방들을 하나씩 하나씩, 한 계단 한 계단을 5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 아파트 현관문 앞에 내려두고 또 계단을 오르고 또 내리 고를 다섯 차례 땀을 비 오듯 쏟으며 그렇게 천천히 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진공상태 속의 시간 같았다고 해야 하나…….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몸은 아주 천천히 움직였지만 그 움직임의 느낌도 느낄 수 없었고 내 몸엔 단지 땀 만 흐르고 있었다. 아파트 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오며 입고 있었던 티셔츠를 벗어 땀을 짜냈다. 땀의 양은 물에서 막 건저 낸 빨래를 빨랫줄에 걸기 직전 짜내는 물의 양 이었다. 땀에 젖은 티셔츠를 가방 한켠에 넣고 마른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오니 미리 약속해 놓은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내 모습은 정상인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택시 기사는 나를 보자마자 급하게 문을 열고 나와 “괜찮으세요?” 하며 나를 택시 안으로 앉히고 나의 짐 가방들을 트렁크에 실었다. 뉴욕 JFK 공항까지 가는 도중 그는 계속적으로 나의 상태를 체크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다시 짐을 택시로부터 빼내는데 공항 직원이 얼른 달려오며 “도움이 필요하세요?” 한다. 그는 나의 모든 짐을 카터에 싣고 내가 체크인을 해야 할 항공사 카운터까지 나를 인도했다. 항공사 카운터에 당도했을 때 그곳엔 아주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줄의 맨 뒤로 서기 위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다음 순간 그 긴 줄의 저 앞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던 항공사 직원이 나를 보았다. 그녀는 급하게 내게 다가왔다. 그녀 또한 “괜찮으세요?”라고 내게 묻는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줄의 맨 앞으로 데려갔고 기계를 통해 체킹인을 하는 모든 과정을 도와주었으며 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비행기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도도 제시해 주었다. 어딘가에서 계속적으로 나타나 나를 도운 그들 모두는 마치 내가 그곳에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듯 그렇게 나를 도와주었다.
그렇게 나는 에쿠아도르의 수도 키토에 도착했다. 빌카밤바까지 가기 위해서 로하행 비행기를 다음 날 이른 아침에 타야 했다. 내 몸은 물에 젖은 솜이었고 머리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도 기적 같은 도움을 사람들로부터 받고 하루 밤 묵을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밤이었고 내 몸은 다시 추워지고 떨렸다. 방에 있던 여분의 이불로도 모자라 숙소 카운터에 두 개의 이불을 더 부탁했다.
또다시 잠이 들었었을까 아님 반쯤 정신이 없는 상태였을까……. 나는 어딘지 모를 어떤 들판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저만치에 작은 강이 흐르고 그곳에 하얀 옷을 입은 노인 한 분이 서 있는 걸 보았다. 나는 그곳으로 걸어가 할아버지 (그때도 그 할아버지가 내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었다는 느낌이다)에게 인사를 건넸다. 강은 약 3, 4 미터 너비였고 길게 흐르고 있었다. 노인은 가만히 서서 나를 응시하며 들고 있던 하얀 종이를 계속적으로 찢어 강에 던진다. 이상스러웠던 것은 강물은 강둑 높이로 가득 흐르고 있었지만 넘치지는 않았고 또 그 위로 하얀 종이 들이 물 위를 젖지 않은 채 흐르고 있었다. 하도 이상하여 “할아버지, 어째서 종이를 찢어 강에 던지시나요? 그리고 어찌하여 종이가 물에 젖지 않는 걸까요?” 하고 물었다. 하지만 노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나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날 밤 또한 잠을 잤었는지 아님 밤새도록 깨어 있었는지 모른다. 새벽 4시, 다시 공항으로 가기 위해 내 몸은 자동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빌카밤바로 돌아왔고 돌아온 후 3일을 꼼짝없이 자고 또 잤다.
나의 경험이 무엇을 내게 말하는지 몰랐다. 알고 싶었지만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뉴욕에서 돌아온 후 나는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 이란 것에 대해, 삶이란 것에 대해, 산다는 것에 대해, 사람 관계라는 것에 대해, ‘영혼의 자유’라는 것에 대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던졌다. 하지만 답은 애매모호하고 나는 더욱더 미궁으로 빠지는 느낌뿐이었다.
그런 혼란 속에 내 삶에서 첫 번째로 재검토를 해야 했던 것은 나의 결혼생활이었다. 그 시점에서 나와 남편은 더 이상 서로의 성장을 격려하며 다독이질 못했고 오히려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으며 사는 관계가 되어 가고 있었다. 최소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우리는 진정으로 현실을 바라보고자 밤을 새워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또 침묵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럼에도 서로가 진정으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같아 우리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친구관계로 만들어가자는 것에 마음을 모았다.
그해 10월 31일 나는 평소 좋아했던 산 위의 땅을 팔겠다는 사람과 같이 산 정상에 서있었다. 이 날짜와 나의 인연은 이상하다. 15년 전 한국에서 뉴욕으로 떠났던 날도 10월 31일 이었다. 어찌 되었건 그날 멀쩡하든 날씨가 갑자기 변하더니 거의 몇 분 안에 산은 짙은 안개로 덮이고 보일 수도 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도 어떤 말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주변 경관은 익숙하게 편안했고 마음은 울컥했다. 많이 보고 싶었던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느끼는 그런 마음 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땅 주인에게 땅 값을 얼마 받고 싶냐고 물었고 “당신이 원하는 금액은 적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만 한 돈이 없다. 만약 당신이 금액을 이 금액으로만 내려준다면 나는 내일 당장 이 거래를 성사시키고 싶다.”고 각본에도 없었던 말을 자연스럽게 했다. 아니 그것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내 입이 움직였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 일 것이다. 땅 주인 또한 그 보이지 않는 힘의 영향을 받았을까, 그는 순순히 내 형편에 맞게 금액을 낮추어주겠다고 했다. 거래는 성사되었다. 그와 나는 악수를 한 후 산을 내려왔다.
다음 날 이른 새벽, 반쯤은 잠에서 깨고 반쯤은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상태였을까, 나는 벌거벗고 아이처럼 즐겁게 산에서 뛰노는 나 자신을 보았다. 그땐 그것이 내가 앞으로 찾을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하며 기뻤다. 그로부터 2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비전은 나의 지난 산 생활을 다 말해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벌거벗었느니 가볍고 자유로울 것이고, 벌거벗었느니 낮에는 뜨거운 태양에 살갗이 탓을 것이고, 밤에는 차가운 바람에 벗은 몸은 얼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나의 산 위에서 ‘내면의 자유 찾기’ 과정이었고 현재 진형형이다.
우리는 어떤 보이지 않는 길을 내 안에 있는 직감(Intuition)이란 보이지 않는 인도자를 따라 걷는 것 같다. 최소 논리보다 순수 직감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그 길은 때로 서로 얽히기도, 교차되기도, 그리고 헷갈리고 복잡해 설명이 안 되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인도자‘는 아주 정확하게 내가 도착해야 할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처음엔 내가 걷는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하지만 걷다 보면 길의 옅은 흔적이 보이고 그 길은 걸을수록 선명해진다. 요즘 나의 심정이 그렇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길을 걷다가 이제 그 흐릿하기만 보였던 길이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을 것처럼 나 또한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을 잡고 이곳까지 왔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았던 손은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닌 사실은 내 안에 있는 ‘나’이었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감사한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게 나의 손을 잡아 준 그 보이지 않는 인도자 ‘나’에게 감사한다. 나는 ‘나’를 나의 ‘하얀 소’라 부른다.
“고마워, 그리고 반가워 나의 하얀 소야.”
Grid lines: Cows walk in random patterns on the mountains, yet after years of walking this mesh like pattern is visible, it makes onewonder if they are following invisible lines and that this mesh like patternwhich appears afterwards is the actual underlying construct, the ethereal grid.–Romeo Grobbela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