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의 마지막 여름을 보내며
나의 결혼생활에 관해 마음속에서 반란이 시작된 건 이미 오래전이다. 그동안은 어찌어찌해서 그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이번엔 “결혼 이란 게 다 그런 거지” 하며 다시 주저앉는다면 결국 ‘나‘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끌고 가는 것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이냐. 더 이상 성장 없이 말라가는 화초를 뽑아내지 못하고 마른 화초를 그대로 화분에 담아 두는 것은 화초에 대한 모욕이다. 부부로 산다는 것 또한 그럴 것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의 결혼서약에 얽매여 이래도 눌러앉고 저래도 눌러앉는다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남편과 근 10 여일만에 통화를 했다.
아파트 관련 문제들에 대해 서로 얘기를 주고받았고 지오(우리의 개)가 밖에 나돌아 다니다 포이즌을 먹었지만 지금은 위험한 순간을 넘기고 다시 밥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통화 끝에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는 '이제 돌아 올 시간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뭐라 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 '나도 너를 사랑해' 했다.
그건 사실이다. 그도 나도 서로를 사랑한다...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 어떤 사랑도 그것이 가장 눈부신 종류의 사랑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모든 종류의 사랑들은 서로 다른 빛으로 아름다움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내게 줄 수 있는 사랑 안에서 서로가 안주하길 바란다.
나를 무척 혼란스럽게 만드는 그의 사랑은 나를 '떠남'이라는 곳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떠남' 이란 걸 시작한 지 몇 해가 되어간다.
처음 시작은 며칠, 며칠에서 십여 일, 십 여일에서 한 달, 한 달에서 두세 달을 혼자 떠났다 다시 돌아가고, 반복의 연속이다. 하지만 아직 세 달 이상 그를 떠나 본 적은 없다.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책, 같은 페이지를 읽고 있지 않다.
아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같은 책, 같은 페이지를 읽고 있는 중이다.
단지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에 있어 그 사이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느 쪽에도 옳고 그름은 없다.
나는 이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할 것이다.
오묘히 갈팡질팡 움직이는 마음의 고삐를 잡을 수 없는 날들이었다. 일찍 잠을 청해 보겠다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직도 낮의 열기가 가시지 않는 뉴욕 시내의 조그만 아파트 안은 시끄러운 내 마음만큼이나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밤을 향해 아파트를 나섰다. 몇 블록 걷다가 발길이 멈춘 곳은 가끔 친구 테드와 같이 진 앤 토닉을 마시던 그 바(Bar)였다.
자연스레 진 앤 토닉 한 잔을 시키며 카운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 전『나를 브루클린이라 불러다오』라는 소설을 읽었다. 그 책의 등장인물들은 주로 ‘오클랜드’라는 바(Bar)로 저녁이 되면 유령처럼 모여드는데 그것은 그곳이 그들의 크고 작은 상처를 핥아주고 안아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그들의 상처를 안아주고 핥아주는 대신 그들이 끝내 더 이상 빛을 볼 수 없게 어둠 속에 꼭꼭 묶어 두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 나의 심정이 그렇다. 한쪽의 나는 “더 이상 이 어두운 빛을 견딜 수가 없어” 하고 또 다른 한쪽은 “적당히 어두운 게 편안하잖아” 한다. 그래 지금 나는 ‘오클랜드’에 앉아 적당히 어둠침침한 불빛 아래서 보드카를 마시는 그들과 같다.
나는 이 도시에 미련이 있는가? 없다. 남겨두었기에 미안한 것도 또 남겨두었기에 내게 아픔이 되는 것도 뉴욕엔 없다. 열정으로 뉴욕을 사랑하였다. 그 사랑을 이곳 뉴욕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나는 뉴욕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에콰도르로 돌아가 탁 트인 자연에서 시원히 지나는 바람을 맞으면 내 길의 방향을 잡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