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엄마도 시작은 무섭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by 윤신



The scariest moment is
always just before you start.
Stephen King, On writing

가장 무서운 순간은
항상 글쓰기 바로 전이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비단 글쓰기뿐만이 아니다.

가장 무서운 순간은 모든 동작의 바로 전에 있다. 일상의 예를 들어보자.



첫 운전을 시작하려 엑셀에 발을 올리고 서서히 힘을 주는 순간은 어떨까. 분명 5분 뒤면 미끄러지듯 아스팔트 위를 달릴 것을 알지만 핸들을 잡은 손엔 이미 땀이 촉촉이 배어 있고 심장은 요동친다. 갑자기 시동이 꺼질지도 모르는 불안, 어디선가 낯선 차가 튀어 올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손에 쥔 핸들이 미끄러져 차선을 이탈하는 상상.


지난해 여름의 끝, 아윤이를 낳기 전은 또 어땠던가. 라마즈 호흡과 이런저런 팁을 미리 얻었지만 정작 양수가 터져 입원해 누운 응급실에서는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배를 부여잡았을 뿐이다. 물론 출산의 시작엔 극강의 고통이 동반하니 잘못된 예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다. 출산에도 단계가 있다면 가장 무섭고 두려운 순간은 진통의 시작이라는 것. 겪어보지 못한, 아니면 앞서 겪은 고통을 상상하는 탓이다.



아니 어쩌면 '시작' 이란 단어 자체에 이미 심경과 걱정이 배어있는지 모른다. 알지 못하는 미지를 향해 발을 딛는 두려움과 이미 행하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원리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글쓰기엔 그리 큰 위험부담이 없다. 글 쓰는 도중 갑자기 다른 사람과 부딪힐 일도 없고 쓰던 연필이나 키보드에 공격당하는 일도 없다. 고통을 줄여준다는 라마즈 호흡을 떠올려야 할 일은 더더욱이 없다. 헤밍 웨이도 말하지 않았던가.

'글 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그 문장 바로 뒤에 '타자기 앞에서 피를 흘리기만 할 뿐이다'라고 했지만.

(“There is nothing to writing. All you do is sit down at a typewriter and bleed.”―Ernest Hemingway)



난 항상 내 이름 한 글자가 새겨진 책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영어 공부하기'가 평생의 숙원이 되어버리듯 나의 것도 '뭐, 언젠가는 되겠지' 목표 중 하나로 전락해 버렸다. 글을 쓰기에 햇빛이 너무 좋았던 이유일까(별의별 핑계를 대는 중입니다).

비스듬히 지나는 해를 바라보는 사이 어느샌가 내 청춘도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는 모래알처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하루 몫의 윤회를 살다 문득 고개를 돌려 곁을 바라보니 살아 숨 쉬는 햇볕昀과 그가 있다. 한 번도 상상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보통의 나날들. 그리고 난 그 매일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얼굴을 맞대는 우리의 이야기를.


그러던 이틀 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두 문장이 내게로 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멀기만 하던 일의 쪽문이 열린 기분이다. 하지만 마음 한켠 두려움이 더 크게 자리한다.

'작가'라는 호칭의 무거움과 '기대'라는 단어가 주는 괜한 압박감의 콜라보.

여담이지만 압박이란 단어를 생각하니 멜번에서 이력서를 쓰다 자조하던 란이 떠오른다. 바로 '내 장점' 칸이었는데 거기에 '압박감 속에서 일할 능력 'ability to work under pressure'이라고 쓴 것이다. 뻔뻔하기 그지없다. 사실 이건 '내 단점'칸에 들어가야 할 말이다. 대신 '압박감 속에서 일할 능력 없음 'No ability to work under pressure'이라고 써야겠지만.



기대는 하는 사람 입장에선 달 뜨게 만들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그것보다 부담스러운 게 없다. 물론 내게 온 저 문장은 그저 하는 말, 으레 하는 인사말 격이라 그냥 눈 꾹 감아버리면 그만이지만 이미 말했듯 내겐 그런 초연함과 관련된 능력이 없다. 게다가 호칭은 또 무언가. 아직 책 한 권 내지 않은 작가, 어디 기고하는 글을 쓰지도 않는 작가가 세상천지 어디 있을까. 스스로를 속이는 일 같아 께름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글을 쓰기에 앞서 애꿎은 키보드만 만지작거리고 광고메일만 뒤적인 이유다.



첫 문장으로 돌아온다.

가장 무서운 순간은 모든 동작의 바로 전이다. 지금 쓰는 이 글만 봐도 그렇다. 쓰기 전엔 한숨만 내쉬더니 첫 줄을 시작하곤 이렇게 술술 투정 부리고 있지 않은가. 일단 시작하자. 가장 무서운 감정이 사라지기 위해선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여백의 공백 공포를 화면에서 지우기 위해선 뭐라도 써야 하는 것이다.

지난 수많은 시간처럼 뱉어내고 적어낼 수밖에 없다.



자, 이제 가장 무서운 순간을 깨부수려고 한다.

시작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이 공간에 아윤婀昀이가 태어나고부터 쓰는 일기를 매일 하나씩 올릴 예정입니다 :)

소소하지만 나에겐 인생이라 불릴 만큼 거대하고 별것 아니지만 한 생명에게는 큰 도약인 하루들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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