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네가 나오기 전 어느 하루, 2019731
국가 지원 산후 도우미를 신청하기 위해 보건소에 들렀다. 5일(1주), 10일(2주), 15일(3주) 단위로 신청할 수 있는데,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선 자격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국민건강보험 금액.
한 달에 121,518원 (첫째 기준) 이하여야만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맞벌이 부부로서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액수이고, 4월부터 건강보험료가 올라 더 받기 어려운 모양이다. 부양가족(직계 가족, 주민등록등본과 건강보험증에 같이 등록되어야 함)이 있으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 집은 그냥 달랑달랑 두 명이니까.
보건소 해당 부서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나 보험료를 알아보고 팩스를 받는 사이, 의자에 앉아 차곡히 배열된 브로셔를 되작였다.
'어머, 요즘엔 동네 물놀이터도 워터파크처럼 잘 되어 있네,
도서관에서는 이런 교육 프로그램도 있구나.'
무료한 시간을 글자 하나하나 읽으며 넘기는 사이, 한 노인이 허리를 굽히고 천천히, 아주 느리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온다.
두 개의 큰 봉투를 든 모습에 뭔가를 파는 분일까 생각하던 찰나 직원이 말을 건넨다.
"무슨 일 땜에 오셨어요?"
"아.. 그게 와이프 기저귀를 받으려고.."
"아, xx 할아버지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노인은 더더욱 조심스런 몸짓으로 구석 자리에 몸을 묻는다.
"할머니 치매는 괜찮으세요? 집안일이랑 할머니 병간호랑 다 하시려니 힘드시죠?"
"아.. 뭐... 안사람이 손을 못 쓰니까..
다 내가 해야지요."
"에휴, 살이 더 빠지셨어.
할아버지도 잘 챙겨 드셔야죠."
직원은 주섬 테이블 아래에서 체중계를 꺼낸다.
"할아버지, 한번 올라가 보세요."
늙은 노인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체중계 위로 올라간다.
52kg.
170채 되지 않는 키에도 턱없이 부족한 살이며 근육이다. 멋쩍게 웃는 노인은 끼니를 잘 챙겨 먹으라는 소리를 다시 들어야만 했다.
경상도 사투리로 '헤깝하다'는 '가볍다'와 뜻이 비슷하다. 엄마와 7년 이상을 함께 산 노묘老猫, 예삐는 최근 부쩍 살이 빠져 갈비뼈가 만져질 정도다. 이빨도 약해져 송곳니 한두 개마저 빠져버렸다(16살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평소 나와 동생보다 예삐를 알뜰살뜰 아끼는 엄마는 예삐를 들어 안으며 얘기했다.
"아이고, 이래 헤깝해져서 우야노. 참말로."
나이가 들면 헤깝해지는 건 인간이고 짐승이고 같은 건가. 강아지나 고양이도 나이가 들면 흰 털이 부쩍 늘고 거뭇거뭇 검버섯 같은 게 올라온다.
서럽다. 문득 서럽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이 들고 온 큰 두 개의 종이 백에 성인용 기저귀 두 묶음과 에프킬라, 파스 등이 넣어진다.
"할아버지~ 제가 곧 댁에 가서 할머니 건강 봐드릴 테니까 그때 봬요.
근데 이걸 다 어떻게 들고 가셔요? 너무 무거운데. 뭐 타고 오셨어요?"
"버스 타고 왔어요. 자식들은 바쁘다고 해서..
괜찮아요. 그냥 주시는 건데 이것쯤은 들고 갈 수 있어요."
"아니, 그래도. 곧 비도 올 텐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데려다주겠다는 직원의 말을 허허허 뿌리치고 당신의 몸만큼 큰 짐 두 개를 영차, 지고 나선다.
무상으로 받는 기저귀가 미안해 직접 큰 봉투 두 개도 가져왔나 보다.
내가 차를 타고 왔더라면 데려다 드렸을 텐데, 싶지만 타인의 맹목적인 호의는 분명 거절하셨겠지.
심지어 만삭 임신부의 것이라면 더더욱.
힐끔힐끔 노인의 하루의 조각에 관심을 갖는 사이에도 보험료 확인은 되지 않았다. 국민건강보험 사이트 상의 금액과 찹쌀떡 군의 월급명세서에 적힌 금액이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은 집에 돌아가 전화로 통보받기로 한 뒤 보건소를 나섰다.
보건소는 임신하기 전엔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곳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어떻게 이용하는지, 왜 이곳에 오는 지도 당연히 몰랐다. 하지만 요 7-8개월간 보건소를 집 앞처럼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봤다.
태어난 지 3달 된 아기에서부터 허리를 더 이상 꼿꼿이 펼 수 없는 노인까지.
열심히 살아가며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
자연스레 태어나 자연스레 늙어가는 생명들.
오늘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찰떡이를 위해 보건소에 들렀다가 어느 노인의 하루의 조각을 보지 않았던가.
이 작은 건물에 인간의 생이 다 담겨 있구나,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이내 그나저나 건강보험금액이 정부 지원을 받는 기준에 들어야 할 텐데 하고 금세 현실로 돌아왔다. 120만 원에 가까운 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할 텐데 하고 말이다. 만약 지원받지 못하게 된다면 산후 도우미를 2주 불러야 할까? 아니면 1주도 괜찮지 뭐.
잘하지도 못하는 돈 계산을 하며 월 가계부를 떠올려 본다. 1주? 아니면 2주?
인간은 결국 내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네모난 사무실 안에서 나의 시선으로 빚어진 얕은 인간의 연대는 사무실을 걸어 나옴으로 끝났지만 나의 여름은 여전히 뜨겁다.
아니다.
그래도 조금은 내 마음속 진심으로 그 노인과 부인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
두 분의 마음과 몸이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길,
하루의 조각을 같은 곳에서 나눈 사람으로서 조심히 바라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