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결혼에 대한 생각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길어져 버렸다

결혼에 대한 단상

by 윤신




내겐 ' 결혼했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어떤 이는 내가 건넨 청첩장을 만우절의 거짓말처럼 취급하기도 했다. 언뜻 생각하면 어디 비꼼의 미학이라도 숨어있나 싶지만 나름대로는 ‘마냥 자유롭게 혼자 살 것 같던 니가 웬일로 결혼을 다했냐'의 의미로 순화해 해석한다. 그 편이 내 정신 건강에 좋기 때문이고 질문의 이유를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 평생 나의 의지에 기반해(무의식적인 선택은 무시하기로 하자) 있는 힘껏, 정말 있는 힘을 다해 하고 싶은 대로 살던 사람이었다. 대학교마저 누구와의 상담 없이 과와 학교를 정하고 원서를 냈다. 심지어 엄마에겐 대학을 합격하고 나서야 얘기했다.

"나 대학교 붙었어."

"어디? 무슨 과 냈는데?"

"동국대 연극영화과(가지 않았습니다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내 자유로운 삶은 그렇게 맘껏 살게 내버려 두고 믿어준 엄마 덕이다. 난 엄마의 자갈길 같은 인생 위에서 썰매를 탄 철딱서니 없는 딸이면서 엄마의 자유방임주의 들판에서 뛰어다닌 망아지다. 대학을 휴학하거나 일본으로 유학 갈 때도, 호주에 가거나 결혼을 할 때도 엄만 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얘기했다. 물론 그전에 내게 수많은 권유와 버럭을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으니 엄마로선 그 말만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은 찹쌀떡 군이 말했다.

"아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그렇게 아쉬워하면 안 돼. 누구보다 인생 즐기며 산 사람이 그러면 안 돼."

결혼하고 나서 생기는 여러 제약(특히 이사에 관련한)에 아쉬워하는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 주 week까지도 부산으로 안동으로 여행을 다니던 나였으니 그는 옳은 말을 한 셈이지만 그땐 정말이지 아쉬웠다. 결혼이 내 모든 자유의지를 뺏는 건 아니지만 약간의 선택과 자유는 포기해야 하지 않은가.

뭐, 물론 어차피 그 선택과 자유의 폭은 내 나이에 반비례로 줄어들곤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결혼이 두려웠다.

어느 정도의 구속이 불가피한 결혼이라는 제도에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평생 다른 삶을 살던 가족을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을까. 심지어 내 가족과도 삐걱대는 시간이 많은데 말이지.

언젠가 이효리가 티비에서 한 말에도 극히 공감하기도 했다. '결혼하면 내가 바람피울까 봐 걱정했었다'라는 문장을 나 역시 몇 번이고 친구들에게 전한 것이다.

어떻게 한 사람만 보고 살 수 있을까. 에이, 결혼하면 내가 바람피우는 거 아냐?

상대의 바람보다 나의 바람을 걱정한 셈이다.



그럼에도 내가 결혼한 이유를 생각한다.

한때 내 머릿속에서 결혼의 연장선상에 서서 두려움을 좀먹게 만들던 존재인 '아기'옆에 누워서 말이다.

정작 결혼해 보니 결혼도 아기도 결국 자전거 타기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전하기도 전에 미리 까질 무릎팍과 들이받을 전봇대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몇 번 넘어지다 한 발씩 페달을 밟다 보면 그 오묘한 발란스가 주는 힘의 절제, 그리고 무엇보다 걸을 땐 느낄 수 없는 바람의 소리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또 문장 속을 헤맨다.

내가 결혼한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난 주기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만 했다. 혼자서 있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사람을 통해 얻는 힘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우울한 기운도 사람들 속에서 있다 보면 금세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들의 존재와 열정, 긍정적인 바이브에서 오는 힘이 내게도 전해졌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 속에 서있었다. (어쩌면 또 그게 타인의 시선에선 '결혼하지 못할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갈 용기와 힘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서.



그런데 찹쌀떡 군을 만나고 나선 무언가가 변했다.

한 사람을 별 다른 일 없이 매일 만나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위로와 용기를 얻는 데는 그 한 사람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를 만나고 알게 된 것이다. 어쩌면 예전에 느꼈으나 스치고 만 감정을 이젠 올바로 바라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조금은 성숙해진 까닭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과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것도 이젠 안다. 역시나 성숙해진 까닭이다.



이리저리 빙 둘러 이 문장까지 왔지만 결론은 이것이다. 난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고 느낀 '그 사람'과 결혼을 했다. 그리고 이젠 그런 사람이 한 사람(몸뚱이는 반 사람) 더 늘었다.

아, 이 얼마나 감사한 인생인가.



아가 옆에 누워 든 생각 하나가 줄줄이 비엔나처럼 이어져 밤 자락까지 왔다. 새벽이 오기 전 이제 그만 끊어야겠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찹쌀떡 군에게 한 마디 남겨본다.

"난 2017년의 5월보다 지금 당신을 더 사랑해.

내일은 오늘만큼 좋을 거야. 고마워. 내 하루들에 함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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