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육퇴의 시간과 고양이

20200406, 다시 돌아가서

by 윤신




해가 지고 거실 창 너머 점점이 노오란 불빛들이 켜지면 이제 막 팔 개월에 접어든 아가는 잠이 듭니다. 분유를 먹다 까무룩 눈을 감고 자거나, 더 놀고 싶은 마음에 힘껏 칭얼대거나, 내 손가락과 장난치다가 그만 소로록 꿈나라로 향합니다. 잠에 드는 방식은 매일 조금씩 다르지만 일정한 시간이 되면 졸리운 눈을 견디지 못하고 쪽쪽이를 입에 문채 코-하지요. (원래 제 고향에선 '낸네한다'고 말하기에 그리 쓰려했더니 알고 보니 일본어더군요. ねんね라고 쓰고 '넨네'라고 읽습니다. 모르고 썼으면 몰라도 알고 나니 적기가 저어해지네요.)



이럴 때 쓰는 육아 용어가 있습니다.

「육퇴」

'육아 퇴근'의 줄임말로 아이가 잠들고 나서의 자유 시간이란 뜻입니다. 새말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현시대 문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자주 쓰이고 사람들의 큰 공감을 일으켜야만 생기고 또 유지되지요.

아마 아이를 기르는 집이라면 아이가 잠들고 나서의 홀가분함, 그러니까 퇴근을 모를 리 없습니다. 간지러운 등 한복판을 누군가 막 깎은 손톱으로 삭삭 긁어준 뒤의 후련함을 닮았어요.

하지만 이건 아기에 대한 사랑과 상관관계가 없어요. 오히려 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홀가분함이 긴밀한 관계랄까요.



그러니 아무리 육퇴 시간이 늦는다 한들 엄마 아빠는 그 해방감을 놓치지 않습니다. 치맥에 맥주라도 부여잡든, 찹쌀떡 군처럼 화살을 들고 초원을 누비든(게임 속에서 입니다), 책을 읽든, 절대적으로 즐겨야만 하는 시간이지요. 저는 보통 지금처럼 매일 기록을 했습니다.

하루 내내 1+1/2처럼 작은 사람이 제게 붙어 있지만 전 작게 마나 저만의 세상이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사부작 거리며 혼자 뭔가 하길 좋아하기도 하고요. 또 존재의 증명이 무언갈 즐기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별 의미 없는 낙서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알알이 깨어있는 시간이라면요.

아기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글을 매일 쓰진 못했지만 두 손바닥을 펼친 작은 공간에 하루를 적어 내려가는 것이 즐겁습니다. 주절주절 한낱 넋두리가 되더라 해도 말이지요.(읽는 사람의 기분은!!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



육퇴는 오롯한 어른의 시간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니 야릇해 보이지만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실망시켜 죄송합니다). 하루 종일 입에 배어있던 아기 대화용 말투는 사라지고 엄연한 어른의 말을 씁니다. 서로의 안전을 조심할 필요도 없이 제 사정만 살피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셔도 좋습니다. 까까는 서랍에 넣어두고 피데기와 맥주를 꺼낼 시간인 것입니다. 심지어 찹쌀떡 군이 하는 게임 등급도 청소년 이용불가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제게 난감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육퇴 후 육묘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지요.

사실 고양이는 강아지처럼 '기른다'기 보다 '동거'하는 것에 가까운 동물인데 무슨 일인지 요즘 우리 집 작은 고양이 후추가 졸졸 따라다니며 틈만 나면 제 무릎에 앉습니다. 아기가 잠들고 나서인 육퇴 시간엔 더욱 얄짤없습니다. 내 무릎에 앉고 기분 좋은 골골 소리를 내니 밀어내지도 못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을 고양이식으로 하면 ‘골골거리는 고양이에게 침 못 뱉는다’가 될 것입니다.

이제 그만 내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싶은데 저 좀 쓰다듬으라며 내게 머리를 박습니다.

하아. 어쩌겠습니까.

골골거리는 고양이는 당해낼 수 없습니다.



가만 보면 아기와 고양이는 조금 닮았습니다. 간단히 생각나는 대로 적어봅니다.


하나, 비닐봉지를 좋아합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아서인지 촉감이 좋은 건지 사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전 그 둘 다 아니라서요.

둘, 끈이나 손수건으로 낚시 놀이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휙휙 흔들다 보면 고양이고 아기고 신나서 난리입니다. 내 손으로 대체해도 좋습니다.

셋, 안아달라고 엄청 울어댑니다. 사람이고 고양이고 '으앙으앙' '냥냥냥' 안아달라, 안아달라 소리치는 거지요.

넷, 내가 뭘 하든 그것에 관심을 갖고 방해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다섯, 똥을 치워줘야 합니다. 물론 고양이들 엉덩이를 씻겨주진 않지만요. 참 다행입니다.

여섯, 같은 의미지만 식사를 챙겨줘야 합니다. 까까도 포함입니다. 아가에게 "까까먹을까?"하노라면 고양이들이 눈을 반짝이고 신나서 냐옹 거리고 있습니다. 아니야. 너네들 거.

일곱, 낮잠을 잘 잡니다. 차이점은 아가는 재워줘야 합니다.

여덟, 귀엽습니다. 물론 자식의 귀여움을 당할 생명체는 없습니다만.



지금도 후추는 내 무릎에서 밤송이처럼 몸을 말고 있습니다. 따뜻하니 좋긴 하네요.

오늘은 육퇴 시간에 스트레칭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한쪽으로 아가를 안느라 뭉친 왼쪽 어깨도 풀고 아기를 안고 앉았다 일어섰다 종일 반복하느라 지친 다리와 허리도 풀어줘야지요.

좋은 휴식이 좋은 하루를 만들 테니까요.



아, 물론 요 작은 고양이가 일어서고 나면 할 생각입니다. 아마 적어도 삽십분은 지나야겠네요.

책이라도 앞에 둘 걸 그랬습니다만 후회는 다 먹은 까까 봉지와 같지요. 필요가 없어요.

그저 후추처럼 평온히 골골거리며 이 시간을 보내겠습니다.



오늘도

모든 엄마 아빠의 육퇴 후 프리덤,

우리 집 프리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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