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건 곧 믿는다는 것

매일이 작은 소풍

by 윤신


집 곁엔 송산이라는 나즈막한 산이 있습니다.
산 주위 커다랗게 둘레길처럼 이어진 길을 거의 매일 아기와 산책하다 보니 나무와 꽃으로 계절을 달月을 날을 알아채지요. 좁은 길 나란히 연분홍 꽃을 피우던 벚꽃과 연보랏빛 라일락이 지고 한참 민들레 씨앗이 날아다니더니 이젠 흰 포도송이 같은 아카시아꽃이 벙글고 있습니다. 저 멀리에서 오뉴월의 냄새가 바람에 묻어옵니다. 집 밖을 나갈 땐 천천히 걸으며 먹고 마실 요량으로 간단한 주전부리를 가방에 넣습니다. 사실 처음엔 아윤이 과자만 챙겼습니다. 산책보다는 '아기 달래기'의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이젠 '둘이 함께' 하는 산책이 즐겁고도 평온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아윤이를 데리고 길 위의 의자가 아닌 어느 가게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란 조금 버겁기도 합니다. 얼마 전 카페에서 바닐라 라테를 주문할 때의 일입니다.


"테이크 아웃이시죠?"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였습니다. 잠시 앉고 싶었던 나는

"아니요, 여기서 마실 거예요."

라고 대답했지요. 그런데도 점원은 테이크 아웃잔(종이컵)에 음료를 담아왔지 뭐예요. 난 여 보란 듯이 2인 테이블에 앉아 여유로이 휴식을 취하는 척 시집 한 권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제 막 한 장 펼치려고 할 때일까, 아윤이는 끼잉낑, 칭얼대다 울음을 터트립니다. 마음은 초조하지만 태연한 척 시집을 집어넣고 음료를 챙겨 빛보다 빠르게(물론 불가능합니다만 마음만은) 그곳을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생각하지요.

역시 전문가는 달라.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었겠어.


방울토마토, 물 또는 차, 과자 몇 개, 바나나, 아윤이 쌀 과자, 아기 치즈, 떡.
그때그때마다 가짓수나 차림은 다르지만 무조건 먹기 간편한 것으로 합니다. 흐르거나 번거로운 음식은 피하지요. 먹기 쉽고 정리하기 쉬운 다과류가 제격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나무 의자에 앉아 산들바람을 쐬며 먹는 둘만의 짧은 휴식 시간. 나날이 우린 작은 소풍을 하는 셈입니다.


어느 날, 벤치에 앉아 아기 치즈를 조그맣게 잘라 준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겁니다. 작은 입을 앙- 벌려 뭔지도 모르고 받아먹는 아기 새 같은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정말 순간적으로 밀려든 감정이었지요.
이 초극강의 사랑스런 생명체는 뭐지. 날 뭘 믿고, 내가 뭘 줄줄 알고 이렇게 쪼꼬미 입을 앙- 벌리는 거야. 내가 누구라고. 저 눈빛 좀 봐. 아무것도 모르는 샛말간 눈빛.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덥석덥석 잘 받아먹는 거야. 우주만큼 귀엽게.

그리고 그 생각들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여태껏 누군가가 이토록 티 없는 마음으로 날 믿어준 적이 있었을까. 모든 순간 내가 하는 일을 믿고, 주는 것을 믿고 제 몸을 그대로 안긴 이가 있었을까. 아기를 키우며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처음'은 사소한 데서도 변함없습니다. 아가의 보드라운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눈을 맞추곤 속삭입니다.
나의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 잊을 수 없는 어미새의 경험을 겪고 글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내 짧은 문장으론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스다 미리의 책,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를 읽다 '아, 이거야!'하고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읽어내렸죠.

사람을 믿는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먹는다는 건 곧 믿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만든 음식도, 이곳에서 만드는 음식도
레스토랑의 음식도 편의점 주먹밥이나 배달 피자도 처음 마시는 우유도
믿지 않으면 먹을 수 없으니까.
아무도 믿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태어날 때부터 믿는 기능이 장착된 우리……뭔가 굉장해.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마스다 미리



책의 주인공 수짱은 어린이집 조리사로 일해요. 이 글 토막은 아이들이 별님 모양으로 만든 당근을 먹는 모습을 보며 수짱이 생각하는 글이지요. 그리고 내가 아하! 했던 문장은 이겁니다.

'먹는다는 것은 곧 믿는다는 것이다.'

세상을 믿고 살아갈 그 시작에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를 믿고 부모가 주는 음식을 믿고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는 것. 우리 아윤이는 그 여정의 시작에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어딘가 뭉클해지고 맙니다. 나와 그에 대한 믿음이 단단한 밑거름이 되어 한발 한발 세상으로 걷겠구나, 싶어서요.
한편 최근 안타까운 뉴스를 접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가짜 분유로 인해 아기의 머리가 커지는 구루병이 생기고 목소리가 쉬었다는 기사였지요. 어쩌면 어린아이가 먹을 것에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분개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아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첫 믿음을 앗아갈 수 있을까요. 엄마가 넘겨주는 분유가 저를 아프게 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을 아가와 엄마의 소식에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모두가 알아주면 좋겠어요. 먹는다는 것은 곧 믿는다는 것이라고요.


오늘 아윤이는 산책을 하다 처음으로 방울토마토를 먹었습니다. 거봉 한 알만 한 토마토를 야무지게 두 손에 쥐고 여덟 개의 이로 깨물고 씹어봅니다. 응? 이게 무슨 맛이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뭅니다. 그리곤 나를 바라보지요. 찡그린 얼굴이 귀엽습니다. 그건 방울토마토라는 거야. 내 말에 아가는 더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아마 내일도 내일의 내일도 산책을 나갈 겁니다.
멀지 않은 거리를 거닐 우린 바다 냄새가 살짝 섞인 바람을 맞으며 간식을 먹으며 나무와 하늘을 보겠지요.
어쩌면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나란히 둘이 앉아 천천히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거고요.
그리고 오늘처럼 우리의 소화기관은 음식을, 그것을 건네는 손을 믿을 것입니다. 꼭꼭 씹어서 꿀꺽, 삼키곤 믿음을 흡수시키겠지요. 또 그렇게 아윤이는 사람을 믿는 법을 하루하루 배워나갈 것입니다.
한걸음 한 걸음씩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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