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야 하는 걸까, 다만 무엇을

20200813, 아프고 나서 훌쩍 크는 아이와 엄마

by 윤신

며칠째 봉선화 씨앗처럼 터지는 아가의 웃음을 보기가 힘들다. 눕거나 종종 앉았다가 내 옷자락에 얼굴을 폭 파묻고는 그대로 잠에 빠지기 일쑤다.

오늘로 체온 40도를 넘나든지 사 일째다.



월요일 저녁부터 고열은 시작되었다. 38도를 웃돌더니 이내 40도를 넘어섰다. 가끔씩 기침만 하다가 돌연 눈도 못 뜬 채 거친 숨만 쌕쌕거리더니 결국 분유 토를 했다. 나의 머리는 허둥댔고 손은 떨렸다. 일단 회사에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더듬거리며 상황을 말했다. 늘 이런 상황에서 나보다 침착한 그다. (그는 지금 지혜롭게 가상의 세계- play station에서 적들과 싸우고 있다. 이렇게 매일 긴장된 상황에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119에 전화해 응급처치를 먼저 해보기로 결정한 뒤 그곳에서 알려주는 대로 가제수건에 미온수를 묻혀 몸을 닦았다. 희미한 저항이 있지만 몸은 여전히 축 늘어져 있다. 눈물이 왈칵, 치솟지만 꾹 참았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야. 상비약으로 지니던, 이걸 언제 쓸 일이 있을까 싶던 해열제를 먹이고 아기를 재우려는 사이 그가 잠시 집에 들렀다. 아기가 걱정이 되어 틈을 만들어 집에 온 것이다. 양수가 터진 날과 겹친다. 선홍빛 피를 보고 당황하던 나와 무서운 속도로 집으로 달려온 그.

다만 차이라고는 그 사이에 작고 열이 나는 아기가 있을 뿐이다.



그날 우린 두 시간 남짓 잠에 들었고 다음날은 세 시간이다. 그것도 쪽잠을 모았을 때 얘기다. '아기가 아프면 부모가 아프다'는 말의 시작은 분명 누군가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먹을 것을 입에 대지 않는 아기에게 자꾸만 이것저것 들이대고 뜨거운 머리를 쓸어내리면서도 정작 자신은 헝클어진 머리에 밥 한 끼 제대로 못 챙겼을 어느 부모, 아니 아픈 아기를 안쓰러워하는 모든 부모의 경험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프고 지치는 건 몸보다 마음이다. 흥이 많던 아기가 더 이상 엉덩이를 씰룩대지 않고 조그만 자극에도 울고 짜증을 내는 24시간의 연속을 보내는 건 힘겹다.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진 아기를 보노라면 잔파도처럼 서서히 밀려드는 애잔함과 자책을 달랠 길이 없다.



단 몇 시간이라도 빨리 낫고자 매일 병원에 찾아갔지만 의사 선생님 말로는 편도염 열감기엔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겨내는 것이 아니다. 꺾는 것도 아니다. 단지 버티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선생님은 나를 향해 말했다.


"목요일까지만 버티세요. 그러면 아이는 나을 겁니다."


버텨야 하는 걸까. 다만 무엇을.

갓 지은 쌀밥처럼 따끈해진 아가를 안고 마음을 졸이며

젖은 수건으로 머리와 목덜미, 등을 쓸어내리고

기저귀를 입히려는 찰나 후드득 새똥처럼 떨어지는 설사를 닦아내고

연신 짜증 섞인 울음을 방법 없이 달래 가며

싫어하는 것을 시키는 건 하나의 폭력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먹기 싫다고 입을 꼭 다물고 울어대는 아기에게 억지로 약을 먹이고

콜록이는 아기를 보며 무엇도 해줄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끼고

끙끙 앓는 아기에게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만을 되뇌고

어쩌면 그 말은 자신에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하고

내일은 나을 거야, 내일은 나을 거야 주문처럼 외는 것.

아, 그것인가.



해열제 주사를 맞는 아기를 위해 아기의 몸통과 손을 있는 힘껏 꽉 잡으며 다짐했다. 강해져야지. 그리고 또 생각한다. 엄마는 강하다는 말, 그 말은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구나. 엄마의 힘은 나무들을 한 번에 부러트리는 거센 폭풍이 아니라 열 손가락으로도 셀 수 없는 일들을 하나씩 겪고 안에서 차오르는 강함이구나. 이번 열감기가 지나고 나면 아가도 나도 한 뼘 쑥 자라겠구나.



정말이다.

아프고 나면 아이들은 큰다. 아가 역시 열이 내리고 열꽃이 피기 시작하면 아장거리며 걸을지도 모르고 몇 가지 단어를 말할지도 모른다. 며칠의 상흔에 성장이 자리할 것이다. 하지만 엄마도 그렇다. 작고 뜨거운 몸덩이를 가슴에 안고 밤새 마음 졸이며 새벽을 맞이하는 엄마도 아빠도 성장할 것이다. 짧고도 치열한 전쟁 같은 시간을 지나며 마음 어딘가가 단단해지고 여물어진다. 전에는 할 수 없던 일을 씨익 웃으며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기와 엄마, 아빠는 함께 성장하고 있다.

아프고 넘어지고 웃고 울면서.



부디 내일은 요 며칠이 거짓말처럼 열이 말끔히 사라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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