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생각을
난 기본적으로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타입이다. 전래동화로 예를 들자면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토끼와 달리기를 하다가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더니 결국 실패하여 흥부의 열두명의 자식의 보모로 살아간다로 되어버린달까. 사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엇비슷하긴 하다. 어느 내용이 누구의 책에서 나왔던가 헷갈리기 일쑤인 데다 서로 다른 책의 주인공이 만났던가, 하는 식이다. 하지만 웬만해선 헷갈리지 않는 책이 한 권 있다. 메리 올리버의「완벽한 날들」이다. ‘시인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바치는 찬사’라는 표현이 딱인, 월든과 비슷하다지만 월든을 읽지 않아 헷갈릴 필요가 없는 책, 완벽한 날들.
그녀의 글을 읽으면 책의 서사보다도 그저 자연스레 숲 한가운데를 걷는 기분이 들어 좋다. 육아에 지친 하루의 마지막, 잠깐이라도 자연에 대한 통찰에 머리를 식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긴 수염 고래, 혹등고래, 황새치, 골드 아이, 황금 방울새, 제비고깔, 개똥지바귀가 늘 곁에 있었던 듯 익숙하다.
그러다 혼자 곰곰이 책의 제목을 생각해본다. 완벽한 날들이라. 아주 평범한 순간, 친숙한 일상에 대한 경의를 표한 거겠지? '세계지도에서 파란 쉼표 하나에 불과하지만 내겐 모든 것의 상징'인 숲과 연못, 햇살 가득한 항구에서의 시간을 최대의 찬사로 말이야. 아니, 애초에 원제는 'long life'이니 저자가 붙인 제목도 아니잖아. 기나긴 삶은 어떻게 완벽한 날들로 이어진 걸까.
무료한 오후 생각의 꼬리는 점점 길어져 결국 완벽에 대한 정의로까지 이어진다.
흠 하나 없는 PERFECT, 完璧한 날이 존재할 수 있을까. 완벽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건 분명하다. 나의 완벽이 타자에겐 허점투성이 일 수 있고 미비가 완벽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완벽과 완벽해 '보이는'건 다른 데다 타인의 인생의 진실은 알 수 없는 일이니 타자의 완벽은 논외다.
아가가 태어난 날, 멜버른에 사는 친구가 축하와 조언을 보내왔다. 이미 중고등학생 딸이 있는 친구다. 그날은 출산과 탄생에 대한 축하로 도배된 데다 마취 탓에 기억이 흐릿한데도 그의 말은 아직도 가끔 머릿속에 또렷이 맴돌 때가 있다.
'아이가 성공과 실수를 똑같이 경험하도록 해야 해. 그래야 건강히 자랄 수 있어.'
'세상은 완벽한 곳이 아니란 걸 알고 삶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중요해.'
그는 또 짧게 덧붙인다.
'자고로 삶은 디즈니랜드가 아니란 거지.'
옳은 말이다. 갓 태어난 아기에겐 가혹하지만 엄마는 영원히 함께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 발로 딛고 설 힘, 몸과 마음의 건강함을 길러주라는 뜻이었을 거다. 인생에서 배운 저만의 철학을 친구의 딸에게까지 물려주고픈 어른의 마음이겠지.
하지만 난 무엇보다도 세상은 디즈니, 즉 완벽한 곳이 아니란 얘기가 빙- 머릿속에 돈다. 완벽한 곳, 이란 어떤 곳일까. 그걸 알기 위해선 우선 무엇이 완벽인지 알아야 했다. 완벽이 뭘까. 아니다. 질문이 잘못됐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관적인 정의와 의미를 지니니 나의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내 완벽의 척도는 뭘까. 찬찬히 나의 완벽을 꿈꾸다 떠오르는 생각을 잡아본다; 흔들림 없이 평온한 마음 상태가 유지되는 것,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상태,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것. 이 기준은 나의 것이다. 나의 아이는 제 삶을 살아가며 저의 것을 찾아 나갈 테고 난 그 여정에 얼마간 동행하며 가끔 나의 삶의 태도를 말해줄 뿐이다.
무언갈 쥐기 위해 꼭 쥔 손보다 놓아버릴 때도 필요하다고
있는 힘껏 달리는 즐거움은 겪어본 자만이 안다고
하지만 넘어지면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오늘의 이루지 못한 일은 내일 하면 된다고, 그렇게 내일을 기다리는 거라고
세상은 다른 것이 많아 더 재밌는 거라고
그러고 보니 내가 해주고픈 말들은 완벽과는 영 거리가 멀다. 심지어 내 완벽의 정의도 내 인생에서 실현된 적 없다. 우린 그저 저마다의 완벽한 무언가를 상상할 뿐일지도 모르고 모두의 완벽의 기준에 적합한 세상은 저마다의 머릿속에나 있을 일이다. 또한 삶에서 ‘완벽’을 찾는 이는 잘 없다. 그저 사소한 일들로 '이걸로 됐다'며 (완벽 아닌) 완성을 느끼는 보통의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에 속한다.
완벽한 날들, 더없이 완벽한 하루들.
줄줄 이어지던 생각 꼬리의 끝엔 굳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난다. 애초에 자연조차 완벽하지 않다. 완벽이란 단어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준에 불과할 뿐이다. 친구가 말한 완벽의 상징인 디즈니랜드의 공주들에게도 영화의 크레딧 뒤엔 어떤 인생이 기다릴지 모를 일이다. 인생은 미지 투성이, 빈틈 투성이라 더 재밌는 것 아닐까.
언젠가 찰떡이가 책꽂이에 꽂힌 제목을 읽게 되면 이렇게 말해줄까 한다.
"세상에 완벽한 날들은 없어, 아가.
날들을 대하는 완벽한 자세만 있을 뿐이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