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우울

괜찮아, 괜찮아

by 윤신

우울이나 슬픔이 힘이던 시기가 있다.

나를 만들고 버티게 하고 의지가 되던 때가 말이다. 하지만 그 저변엔 알 수 없는 생동감이 있었다. 바싹 바른 식물의 간절함보다 햇빛을 가득 받은 식물의 노곤함에 가까운 모양이랄까.



하지만 오늘의 것은 다르다. 아기를 낳고서 간혹 느끼는 우울은 마치 의지의 혼수상태와도 같다. 이유는 모른다. 왜 가만히 있다 눈이 붉어지고 물에 잠긴 공책만 같은지, 왜 아무 일 없는데도 명치께가 먹먹해 숨을 쉬기 힘든지. 분명 즐거울 이유가 많을 하루인데 종일 눈물이 오간다. 이방인처럼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이해 없이 하루를 보냈다.

이제 와 우울의 이유를 추적해 보지만 아무래도 단서가 없다. 플라스틱 뚜껑을 재활용 가방에 던져 넣길 실패하고서 '아아, 산다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야.' 하며 슬픈 눈으로 떨어진 뚜껑을 볼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오늘 하루 중 앞으로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할 호흡을 버거워할 정도의 일이 정말 있었단 말인가.



배냇짓을 하던 아기는 이제 내 손을 잡고 길을 걷는다. 유모차에 누워 하늘만 바라보던 아기가 나와 같은 곳을 보고 기뻐하고 실망한다. 감격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쩐지 그 사실도 지나치게 벅차다. 설레이는 감정이 아니다. 골인 지점이 보이지 않는 무한의 달리기에 벌써 숨이 가쁘다. 왜 이럴까. 엄마로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이제 일 년인데 지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그럼에도 난 정말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힘겹게 밥을 먹이는 둥 버리는 둥하고 흩어 뭉개진 밥알을 줍고 아무 데나 펼쳐진 책을 책장으로 꽂는 일에, 엄마로서 미숙한 나를 자책하는 일에 지친 걸지도 모르겠다. 도화지로 태어난 아기에게 갖가지 꽃과 나무를 그려 넣고 싶은데도 결국 어설픈 줄만 직직 긋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자꾸만 나를 괴롭히는지도 모르겠다. 벚나무에선 벚꽃이 피고 살구나무에선 살구꽃이 필 것을 알지만 그 꽃이 소담하길 바라는 욕심이 버거운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모든 엄마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난 뒤 망망한 벌판에서 아이 손을 잡고 길을 잃은 엄마의 마음,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감정이 한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에 눈치챈 것은 늦은 저녁쯤 되어서다. 아이의 기색을 살피다가 나의 기색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늦은 오후 만난 가까운 언니가 '안 좋아 보인다'고 언질 해주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 그냥 지나쳤을 거다. 울다가 애써 웃는 나를 토닥여주지도 않은 채 말이다. 뭉쳐진 마음을 알아봐 주지도 않고 감싸 안지도 않고 날이 선채로 아기를 돌보다 재웠겠지. 그 아슬한 마음을 아윤이는 그대로 안고 잠이 들었겠지.

그러니 두서없고 의미 없는 이 글을 토하는 이유는 오로지 날 위해서다. 그래도 괜찮아하고, 힘들면 더 쉬어도 괜찮아하고 나를 안아주기 위해서다. 아이에게 습관처럼 하는 말을 나에게 하기 위해서다.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그리고 조금은 아이에게 나의 감정이 스며들까 얼른 털고 싶은 마음이다.



물먹은 종이 같은 우울은 더 이상 내게 힘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뭐 어때. 이 감정도 내가 감싸 안아야 할 나의 것인걸. 툭 불거진 상처를 외면하지 말고 알아본다. 너 거기 있구나. 네가 거기에 있었구나.

그러면 지나가겠지. 이 또한 지나가겠지. 그러니 햇빛에 천천히 종이가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해. 감정을 휘젓는 돌들이 가라앉길 기다려야 해.

별일 없으니 별일 없이 보내자는 마음으로 오늘도 잠들어야겠다. 올리브 오일을 손바닥으로 달구고 나를 쓰다듬고는 지친 몸을 풀고 무기력을 잠재워야지.


괜찮아. 괜찮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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