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의 동그만 등을 보다가 문득
난 손이 작은 편이다.
야무진 노동의 손이라기보다 손톱이 크고 손가락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전형적인 일 잘 못하는 손, 보드랍지만 손마디가 굵고 살집이 있어 어린아이의 것을 더 닮은 손이다. 발은 또 어떤가. 역시나 살집이 있는 데다 키에 비해서도 작기만 하다. 언젠가 독립 영화에서 토끼 배역을 맡아 몸 사이즈를 재야 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나(당시의 배역)를 토끼로 보는 데 주인공 남자의 시선에서만 사람으로 보이는 역할이었다. 그때의 나(역시나 배역)는 토끼였을까 사람이었을까. 지금도 알지 못한다. 존재의 정의는 결국 내가 내리는 건지 타인이 내리는 건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아마 적절히 섞여 있지 않을까 하고 예의 우유부단한 내가 고개를 내민다. 하지만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게 아니다.
작은 손과 작은 발.
이것도 아닐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때 자로 잰 내 발은 이백십 몇 센티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백이십도 넘지 않았다. 손과 발, 키, 허리둘레 따위를 재며 미술팀은 놀랐다. 아니 무슨 손과 발이 이렇게 작아, 하면서.
손바닥 대볼래? 호감 가는 남자아이가 내 손을 의식할 때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살면서 몇 번은 작은 손을 세로로 쭈욱 펴서 손바닥 키재기를 한 것 같다. 보통 마디 하나는 기본으로 훌쩍 차이 나던 그들의 손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부디 잘 지내고 있길 하고 쉬운 바람을 한다. 어쨌든 한 번쯤 손바닥과 손바닥이 스친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것 역시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아니다.
소록소록 잠든 아가의 좁은 등을 보다 무심결에 내 작은 손을 갖다 댔다. 빠르고 고른 숨은 일정했고 따뜻하다. 아침부터 긴장된 어깨에 힘이 빠졌다. 유일히 쉴 수 있는 시간이라서가 아닌 유약한 신체의 방심이 나에게도 옮겨오는 느낌,이랄까.
괜찮아, 하고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랄까.
아기는 순간으로 자란다.
하루 새에 훌쩍, 일주일 새에 훌쩍, 한 달이면 후우울쩍.
잊기 전에 지금을 눈으로 몸으로 기억한다. 아기가 잠든 시간은 그러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손빗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 가지런히 내뻗은 속눈썹과 눈썹의 아치형을 눈에 담고 둥근 뺨에 뽀뽀한다. 가끔 입을 오물이거나 뽀얀 미간에 힘이 들어가면 등을 토닥이고 아주 낮은 자장가를 부른다.
자장 자장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잘도 잔다.
나의 아기의 등.
완만하고 작은 네모는 끝부분마저 동그마하다.
그러다 문득 내 안에서 묻는다.
이 작은 어깨의 끝과 끝은 과연 몇 센티일까. 한때 나의 숨겨둔(딱히 숨기지 않은) 필살기(또 딱히 필살기이지도 않은) 손바닥을 갖다 댄다. 공작의 날개처럼 차르륵, 손가락 끝이 벌어진다. 엄지에서 새끼까지의 한 뼘. 이게 과연 몇 센티 일지는 모르겠지만 아가의 등은 이 한 뼘보다도 작았다. 닿을 듯 말 듯 손가락 끝 안에서 등은 고르게 오르내렸다.
아마도 금방이면 아이의 등은 내 작은 손의 한 뼘을 넘어 자랄 것이다.
훌쩍 후울쩍 후우울쩍.
그리고 곧 두 뼘을 모두 펼쳐야 할 것이다.
어깨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나보다도 훨씬 넓고 단단하고 곧을 그 등을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게 오늘 내가 하고픈 말이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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