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조금 더 머물러도 괜찮아

작년 어느 여름의 끝에서

by 윤신


요즘 비는 물조리개로 화분에 물을 주는 것 같다. 시원하고 짧게 그치는 빗방울들이 간헐적으로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바람은 세고 구름은 빠르다.

아이와 산책을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전거 거치대 지붕 아래 서서 비가 그치기 기다리며 생각한다.

아가, 물방울을 잔뜩 머금은 구름은 왜 까만색일까. 비를 닮아 투명해야 하지 않을까.

공상력은 세포처럼 몸의 일부인지 아기가 태어나도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한다. 아윤이는 대답 없이 구멍 난 지붕 사이로 먹구름이 토해낸 비가 만든 투명한 직선을 가만히 바라본다.



정말이지 올여름은 비로 시작했다가 비로 끝날 것 같다. 인사도 없이 여름은 가고 비가 갠 늦은 오후엔 가을을 닮은 바람이 분다. 아가, 이제 가을인 것만 같아. 긍정의 대답인지 아윤이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오른쪽 45도로 뉘인다. 요즘 새로 배운 예쁜 짓이다. 눈을 손톱 달로 하며 살그마니 웃는다. 그 모습을 보면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지. 어스름한 빛 사이로 모녀는 몇 번이나 삐뚜름히 고개를 기울였다.



아기의 식사와 목욕을 마치고 다시 산책에 나섰다. 산책이라 부르지만 아윤이를 재우기 위한 자장가에 가깝다. 노래의 형식이 아닌 몸의 리듬일 뿐이다. 아기의 귀를 내 심장 가까이에 대고 노래를 부른다. 이게 진짜 자장가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선인장. 아윤이가 내 품에 안긴 첫 순간부터 불러주던 노래다.


〈언젠가 마음이 다치는 날 있다거나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를 때면 나를 기억해

그대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줄게〉


이 찰나 같은 우리의 시간이 언젠가의 너에게 위로가 되기를.

아가의 등을 도닥이며 초록으로 둘러싸인 길을 걷는데 투둑, 하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또다시 비다. 빛과 함께 잠든 줄 알았던 비가 다시 기지개를 켜는 모양이다. 곧 소나기가 되어 몸을 적신다. 한껏 아윤이를 감싸 안고 지붕을 찾아 뛰었다. 아기는 내 마음도 모르고 자꾸만 자꾸만 하늘을 본다. 하얀 얼굴에 물방울이 맺힌다.

간신히 찾은 지붕 아래 몸을 쉬는데 엄마의 숨은 가쁘고 비는 거세고 아기는 신이 났다. 자장가 리듬이 롤러코스터로 변한 탓이다.

부채꼴로 퍼지는 가로등 빛 아래 빗줄기는 곧고 천장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쾌활하다. 비는 금방 그칠 테니 잠시 쉬다 가자, 아윤아. 나뭇잎 위에 맺힌 빗방울을 떨어트리던 아가가 고개를 기울이고 웃는다. 나도 함께 갸웃하며 싱긋.



아마 이 비가 그치면 더 이상 여름이 아닐 것이다.

여름옷을 집어넣고 가을 옷을 꺼내야 하겠지. 그 사이 작아져 입지 못하는 옷들은 정리하고.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조금은 더 이렇게 비가 와도 좋을 것 같다고, 비를 닮지 않은 구름이 더 머물러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아가? 내가 먼저 고개를 기울이며 웃는다.



_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언어의 온도와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