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말에는 힘이 있다

어떤 말에 힘을 주어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지

by 윤신

말을 쉽사리 뱉지 않는다.

혀의 뿌리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고 손가락 끝으로 적어 놓은 글을 지운다. 소리로 내고 나면, 글자로 쓰고 나면 언어에 힘이 생기는 이유다. 스쳐 지나가던 의미가 글자와 소리에 묶여 더 이상 지나칠 수 없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단정 짓지 않는다. 사물을, 사람을, 기억을, 오늘을 한 가지로 해석하지 않는다. 쉬이 던지고 쓴 말이 '다만 그것' 혹은 '그것이다'로 박혀버리는 게 두렵고 안타깝다.

그런 이유로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할 때보다 문자로 쓸 때 더 조심스럽다. 손가락이 입보다 더 신중하다기보다 눈目의 검열을 거치기 때문이다. 타다닥 적어 내려 가던 글은 눈과 마음을 거쳐 지워지거나 교정되기 일쑤다.



조금 전만 해도 그렇다.

아윤이와 오늘 하루 어땠냐는 그의 문자에 엄지손가락으로 「아윤이는 욕심쟁」까지 치다가 멈췄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곰곰이 생각한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만지고 먹고 싶은 욕구를 가진 아이를 '욕심쟁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단지 아이를 돌보다 지친 나의 무게를 갓 돌 지난 아이에게 지운 것은 아닐까. 오히려 그 말이 내 문자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와 아무것도 모르는 아윤이를 욕심 많은 아기로 만들어 버리는 건 아닐까.

말에 힘을 주지 말자. 삭제키로 적힌 글을 다 지워낸다.


늦은 저녁, 아윤이와 재윤이(아윤이의 동네 친구)에게 아기치즈를 하나씩 동글게 말아주었다. 어른이 먹기엔 맹맹하지만 아기들에겐 고소한 간식이다. 둘 다 보물처럼 손에 꼭 쥐고 야금야금 먹는다. 그러다 아윤이의 시선이 재윤이의 손에 쥐어진 돌돌 말린 치즈에 닿았다. 그 시선을 눈치채자마자 아윤이를 멀리 떨어트려 놨으나 소용없다. 갑자기 칭얼거리며 재윤이의 치즈를 뺏으려 한 것이다.

"안돼. 아윤이 손에 치즈 있잖아. 저건 재윤이 꺼야."

이 말 역시 소용 있을 리 없다. 칭얼은 이내 울음으로 번졌다. 어느새 얼굴까지 빨개져서 울고 있는 아윤이를 달래는 사이 재윤이는 커다란 치즈를 한입에 쏙 넣었다. 돌돌 말린 치즈로 다람쥐처럼 양 볼이 가득해졌다. 그 옆엔 조심히 염려하는 엄마가 있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아윤이는 이제야 14개월을 살았다. 걷게 된 지는 한두 달 남짓이고 쌀 밥을 먹게 된 지도 몇 달 되지 않은 어린 아기다. 하지만 그에 반해 나는 몇십 년을 사회화된 채 살아온 어른이지 않은가. 아기의 행동을 내 식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선 안 되는 게 당연하다. 기질이야 있겠지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내가 어찌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내 삐뚤어진 눈이 아이의 삐뚤어진 마음을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무심코 뱉은 말이 아기의 자유로운 걸음 앞 미리 그어져 버린 선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힘껏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그래선 안돼.



법정 스님은 '그동안 풀어놓은 말 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말씀을 남겼다. 그동안 하고 적은 언어가 말 빚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엄마의 말은 어떤가. 엄마의 말은 다음 생까지 갈 필요도 없다.

오늘의 나, 당장의 가족, 자식의 이번 생으로 쾌속으로 이어진다. 말에는 힘이 있다. 내가 한 말이 결국은 나를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어떤 말에 힘을 주고 어떤 자세로 살아갈지, 그보다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쉬이 던지듯 말하지 말자. 말에는 힘이 있으니까.

아기의 두 손에 꼭 쥐어진 치즈가 내게 건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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