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기와 나

배꼽에서 배꼽으로 이어지는 붉은 힘의 역사

엄마에게서 나에게로, 또 아이에게로 전해지는

by 윤신


사람이 생의 의지를 느끼는 순간은 난데없이 온다.

살아야 한다는 감각, 그래서 누군가의 생을 지켜내야 한다는 감각.



얼마 전 잠시 비운 집에서 나의 것이 아닌 습관을 발견하고 과도를 들고선 한 마리 사냥하는 짐승처럼 후각과 청각에 집중했을 때가 그랬다. 누군가의 침입이 분명하다. 머릿속 레이더가 반짝였다. 이내 잠든 아가의 주위를 돌며 타인의 흔적을 찾았다. 서늘해진 뒷목을 견디며 베란다를 확인하고 집안에 있는 닫힌 문은 모조리 열어봤다. 한 손에는 진녹색의 과도를 꼭 쥔 채였다.

그러던 사이 바스락.

미친 듯 쿵쾅거리는 가슴을 붙들고 다가가니 고양이다.

다시 한번 바스락. 또 고양이다.

어두운 밤 유난히 온 집안의 전등을 환히 켜 두고 그렇게 두 마리 고양이와 술래잡기를 했다.



또 신변의 위협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오줌 같은 것. 역시나 그날이었다. 돌아와 본 화장실의 변기에 누군가의 흔적이 자리했다. 보통 볼일을 보고 변기 뚜껑을 먼저 닫고 물을 내리는 습관이 몸에 새겨진 나로서는 물이 안 내려진 채 자리한 그 누군가의 그것은 위협이었다. 찹쌀떡 군은 이미 출근한 상태라 그 상황에서 아기를 지킬 사람은 나뿐이라 판단했다. 내 속에 흐르는 엄마의 피가 요동친다.

그렇다. 그래서 그렇게 오밤중 어디선가 들었던 방법으로 칼자루를 잡고 집안을 돌아다녔다. 칼날을 위로 가라 했던가 아래로 가라 했던가 헷갈렸다. 고양이들과의 술래잡기, 그러니까 샅샅이 둘러본 집안의 방범이 끝나고 그에게 문자를 했다. 집에 누군가가 들어왔다가 나간 흔적이 있어. 나의 무용담을 펼치려는데 그가 말한다.

그거 나야.



지칠 때면 스스로 외는 주문이 있다.

'그럼, 나에겐 엄마의 피가 있는데.'

머리끝이 쭈뼛 서도록 긴장한 그날 역시 한때 내 배꼽에서 이어졌던 배배 꼬인 줄을 떠올렸다. 호랑이 엄마(나의 엄마를 아는 이들은 이 비유에 끄덕거릴 것이다)의 피가 울컥이며 쏟아져 들어왔던 힘을 기억해 냈다. 베란다 혹은 방문 너머에 서있는 상상의 침입자를 쫓으려 문을 열던 힘. 닫고 버티지 않고 그 문을 먼저 열어젖힐 수 있던 힘이다. 이십 대 푸르른 시절을 꼬박 어린 두 아이와 생계로 보내고 홀로 삼십 년을 무사히 지켜낸 그 힘. 무심한 듯 유쾌하고 터프한 호랑이에게서 온 내 핏속의 힘. 여전히 생생하고 붉게 온몸을 타고 흐르는 힘.



허무하고도 시시하게 끝난 해프닝이지만 그날의 십여 분간은 내가 수백의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몇십의 가설과 몇십의 각오, 몇십의 다짐과 몇십의 기억.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1초에 24 프레임이 지나가듯 돌아갔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아윤이를 지켜야지. 곤두선 말단 신경까지도 이야기했다. 저 작은 생명을 지키는 건 온전한 내 몫이야. 그리고 손에 쥐어진 과도가 우습다는 걸 깨달았을 땐 생각했다. 엄마도 그랬겠지. 폭행과 폭언으로부터 도망친 집을 다시 찾아와야 했던 건 동생과 나라는 작은 생명 때문이었겠지. 지켜내야 할 생들이 있어서였겠지. 손이 트고 발이 트도록 엄마의 몸을 바치며 우리의 몸을 지켜온 거겠지.

배꼽에서 배꼽으로 이어지는 붉은 힘의 역사.



어느새 누군가의 웃음을 닮은 달이 떠오른다. 다시금 밤이다.

오늘도 수많은 삶이 무언가를 버티고 지켜내는 하루였을 것이다.

그들의 밤이 안녕하고 평안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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