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분 같을 우리의 생
열린 창 너머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내 작은 아기의 것은 아니다. 아가는 방금 전 좋아하는 민트색 애착 이불을 쫍쫍빨며 '꿀꿀꿀' 소리를 내다 곤한 단잠에 들었다.(아이는 잠에 들 때마다 말 그대로 꿀꿀꿀 소리를 부러 낸다. 왜 그럴까.)
보다 높은 음정의 짧은 반복, 아마도 신생아의 울음일 것이다. 터질 듯 붉은 얼굴을 한 아기를 안은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한쪽 팔로 아기의 목을 감싸고 다른 팔로는 전신을 안아 괜찮아, 괜찮아 달래겠지.
작년의 나처럼 어쩔 줄 모르는 조급한 마음일지 경험으로 메워진 여유 깃든 마음일지 알 수 없지만 뒤엉킨 낮밤과 놀랍도록 규칙적인 윤회에 심신이 지쳐있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저 이유 모를 짧고 날카로운 울음의 끝이 하나나 둘의 잠으로 이어질 것 역시.
이른 저녁 바짝 마른빨래를 개다 문득, 딱 내 손바닥 폭만큼 커진 아기 옷을 보고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찹쌀떡 군은 여전히 아기 옷이 작고 귀엽다며 같이 개는 내내 '히유 히유'같은 소리를 냈지만 난 아니다. 어느새 이렇게 다리가 길어졌지, 그새 몸통도 엄청 컸구나. 일 년 사이에 종種이 바뀐 것처럼. 분홍 노랑 파랑의 면을 개며 가슴이 괜히 저릿했다. 아기가 크는 동안 옷도 함께 자랐구나. 옷장 한구석, 계절마다 작아진 옷들이 단층처럼 쌓여가고 그 가장 아래엔 아윤이가 처음 입은 배냇저고리가 있다.
벌써 일 년 전이다.
제 손발이 꼬물이는 움직임에 놀라 울음이 터지고 침대에 뉘면 누운 자세 그대로 하루를 보내던 날로부터 딱 일 년이 흘렀다. 그 일 년은 내가 보낸 어느 해보다 많은 감정과 사진과 기억을 남긴 열두 달이자 하루가 다르게 사정거리를 늘이며 손을 뻗는 아이를 부지런히 따라다닌 시간이다.
이제 아윤이는 두 발바닥에 힘을 균등하게 주어 한참을 안정적으로 걷는다. 2미터도 넘는 미끄럼틀 위에서 능숙하게 몸을 돌려 엎드린 자세로 미끄러진다. 아기 인형을 들고 와 자장자장을 시키고는 어디선가 인형 쪽쪽이를 찾아와서 인형 얼굴에 갖다 대기도 한다. 빠빠라고 하면서 손목을 앞뒤로 사정없이 휘두르고(?), 집 밖을 나갈 때마다 신는 은빛 때때신을 시시로 들고 와서는 흔들어 대는 것 역시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작은 뇌 속에서 사물에 대한 인식과 기억이 쌓여 의미화 작업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안돼'라는 나의 말에 고양이 웃음을 빼꼼 짓는 걸 보면 상황을 모면하려는 꾀까지 생긴 게 아닐까 싶다. 아니, 어쩌면 그게 본능이려나.
아이를 기다리는 오 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 살 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가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을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 보겠지.
나희덕의 『그녀에게』에 수록된 '오 분간'중에서
반복해 의식처럼 읽는 시가 있다. 나희덕 시인의「오 분간」이라는 시다. 시가 적힌 엽서를 책갈피로 쓰기 때문에 책을 들 때마다 시도 함께 손안에 놓이는 탓이다. 읽어도 읽어도 시의 아릿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양이 서점에서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나의 오분이 아스라이 벌써 지나간 것만 같아 작은 감자를 닮은 손을 내내 잡았었다. 그러고도 또 말갛고 환한 얼굴이 그리워져 몇 번이나 동그만 얼굴을 바라봤다.
아이의 발걸음을 따라다니는데 지쳐 잠시 쉬다가 그만 오분이 지나가는 건 아닐까, 내 시간의 욕심에 우리의 순간을 온전히 보내지 못하고 그만 오분이 지나가는 건 아닐까.
오분 같은 일 년이 고개를 끄덕인다. 응응. 정말 그럴지도 몰라.
네모진 창밖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는 어느새 그치고 밤은 한가운데에 있다.
이렇게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다 보면 10월도 지나고 올해도 끝날 테지.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이쁜 나의 아가는 그만큼 훌쩍 자랄 거야. 종알종알 말도 하고 '엄마'를 부르며 힘차게 울기도 하겠지. 우린 서로의 시간을 주고받으며 기억과 감정을, 일생을 채워나갈 거야. 오분 같은 일생을 말이지. 생각도 밤도 까만 글씨로 자꾸만 덧입혀진다.
오늘의 것일지 내일의 것일지 모를 밤이 깊었다.
그만 잠든 아이의 얼굴이 보고파 조르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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